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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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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隱公事實 [역문]鄭以夏(정이하)의 字(자)는 禹相(우상)이오 號(호)는 海隱(해은)이니 文靖公(문정공) 雪齋(설재) 諱(휘) 可臣(가신)의 九世孫(9세손)이며 監察(감찰)인 棄齋公(기재공) 諱(휘) 勳(훈)의 曾孫(증손)이다. 中宗(중종) 丁卯年(정묘년 1507)正月十五日(1월5일)에 公(공)이 箕城葛洞坊(기성갈동방)에서 出生(출생)하고 中宗(중종) 辛卯年(1531)에 武科(무과)에 올라 訓練院(훈련원) 僉正(첨정)에 例授(예수)되었는데 버리고 歸養(귀양)하였으며 戊戌(무술)에 湖伯(호백)의 參軍(참군)으로 九月十六日(9월16일)에 瑞石山(서석산)에 巡遊(순유)할새 밤 二更(이경)에 문득 心神(심신)이 놀래고 움직여 거듭 請(청)하여 달려 돌아가니 監察公(감찰공)이 이 밤에 病(병)이 危篤(위독)하여 다음날에 돌아가시니 公(공)이겨우 承顔(승안)을 얻어 경계한 말씀을 受命(수명)하니 病(병) 구완을 못 한 것이 恨(한)이 되어 시묘 살이 하면서 죽을 마시고 三年(3년)을 泣血(읍혈)하였다. 乙巳年(을사년 1545) 七月(7월)에 訓練院(훈련원) 副正(부정)으로 固城縣監(고성현감)에 任命(임명)되어 ①謝恩肅拜(사은숙배)한 翌日(익일)에 仁宗(인종)이 昇遐(승하)하니 慟哭(통곡)하고 五日(5일)만에 벼슬을 버림에 臺諫(대간)의 탄핵이 되므로 罷歸(파귀)하고 綿城(면성) 控壽山中(공수산중)에 들어가 設壇(설단)하여 하늘에 부르짖고 ②食素終制(식소종제)하였다. 詩(시)가 있어 이르기를 『임금께서 갑자기 돌아가시니 孤臣(고신)의 눈물 黃泉(황천)을 뚫네 돌아옴에 恨(한)이 없는 뜻은 落日(낙일)에 山巓(산전)을 비기네』하였다. 때때로 慟哭(통곡)하며 山水間(산수간)을 서성거리는데 遊軒丁(유헌정) 舍人熿(사인황)이 上疏(상소)하여 仁宗(인종)을 文昭殿(문소전)에 躋祀(제사)하라고 請(청)하다가 巨濟(거제)로 귀양가게 되자 사이 길에서 맞아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 嗚咽(오인)하다가 돌아왔다. 軍器寺正(군기사정) 都摠經歷(도총경력)으로 불렀으나 병으로 사양하고 赴任(부임)하지 않했다. 庚午年(경오년) 三月六日(3월6일)에 집에서 卒(졸)하니 享年(향년)이 四十四歲(44세)였다. 二子(이자)를 두었으니 砥柱(지주)는 別侍衛(별시위)요 鐵柱(철주)는 主簿(주부)다. 事實(사실)이 海東忠義錄(해동충의록) 三綱錄(삼강록)과 務安郡誌(무안군지) 湖南誌(호남지)에 실려 있다.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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