述先裕后 :조상을 계승하고 자손을 잘되게 함.先世記錄들을 奉讀하십시요. image(gif) 만듬:문정공24세손 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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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실록단어해설
한자 어조사

예기(禮記)

 



대종회장25대-27대
창주공15세손
광훈(光勳)


만든 후손
발전연구위원 간사
25대∼
일헌공15세손
병선(昺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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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 始祖및 本貫由來(시조및 본관유래)

우리 羅州鄭氏(나주정씨)는 高麗十五大姓家(고려15대성가)로 始祖(시조)는 鄭諧(정해)이고 高麗中葉(고려중엽)때 人物(인물)이다. 여러 차례의 兵燹(병선)으로 族譜(족보)와 文獻(문헌)이 燒失(소실)되어 上系(상계)를 詳考(상고)할 수가 없다. 우리 鄭氏(정씨)의 流傳先牒(유전선첩)에 麟山(인산)이란 二字(2자)가 있으나 어떠한 事由(사유)에서 인지 正確(정확)한 考證(고증)은 없다.

高麗地理誌(고려지리지)를 살펴보면 옛날에 麟山(인산)이란 郡(군)과 縣(현)이 된데가 없고 高麗(고려)때에 麟州(인주)가 義州(의주)의 境界(경계)에 있었는데 李朝世宗(이조세종)때 義州(의주)에 合(합)하여 麟山鎭(인산진)이 되었으니 生覺(생각)컨대 麟州(인주)의 古號(고호)가 麟山(인산)인것 같다.

우리 中始祖(중시조)인 文靖公(문정공)께서 羅州(나주)의 州南(주남) 侍中洞(시중동)에서 出生(출생)하여 洞名(동명)이 스스로 緣由(연유)하여 나타났고 그 뒤에 州北(주북) 金鞍洞(금안동)에서 살아 洞名(동명)이 또한 公(공)으로 부터 由來(유래)되었으며 文靖公(문정공)께서 中國(중국)에 가 계실 때 읊으신 思鄕詩(사향시)가 있으니 이르기를 海東南有錦城山(해동남유금성산)하니 山下吾廬草數間(산하오려초수간)이라 하였으니 어찌 羅州(나주)가 아니겠는가.

우리 鄭氏(정씨)가 羅州(나주)에 定着世居(정착세거)한지가 이미 오래 되었고 文靖公(문정공) 以上(이상)은 考證(고증)이 없어 詳考(상고)할 수가 없고 文靖公(문정공) 以下(이하)의 狀錄(수록)이나 帳籍(장적)과 史記(사기)에 모두 羅州(나주)로 記錄(기록)이 되어 있어 마땅히 本貫(본관)은 羅州(나주)이다. 混同(혼동)없이 바란다.

『參考』高麗地理誌및 東國輿地勝覽

一, 國內城(국내성)

高麗地理誌(고려지리지)에는 麟州(인주)에 긴 城(성)터가 있으니 德宗朝(덕종조)때 柳韶(유소)가 築造(축조)한 것이다.

鴨綠江(압록강)이 바다에 흘러 들어간 곳을 起點(기점)으로 하고 있다고 하였다. 또 丙誌(병지)에는 西海濱(서해빈)의 옛날 國內城(국내성)의 境界(경계)인 압록강이 바다에 들어간 곳을 기점으로 하였다 하니 國內城(국내성)은 당연히 옛날 麟州(인주)의 境內(경내)에 있는 것이다.

金富軾(김부식)의 高句麗地理誌(고구려지리지)에는 국내성은 어디에 있었는지 的實(적실)하게 알 수는 없으나 마땅히 압록강 이북의 漢(한)나라 玄莬郡(현면군)의 境界(경계)인 遼東京(요동경)으로 遼陽(요양)의 동쪽에 있을 것이다고 하였다. 어느 說(설)이 옳은지 상세히 알 수 없다.

二, 古麟州(고인주)

本來(본래) 高麗(고려)의 靈蹄縣(영제현)인데 顯宗(현종)때 麟州(인주)라고 일컬으고 土城(토성)을 쌓았다.

世上(세상)에서는 鳥餘(조여)라고 불렀다. 뒤에 含仁郡(함인군)이라 낮추어 불렀고 李朝(이조)에서는 義州(의주)에 예속 시켰다가 世宗(세종)때 麟山鎭(인산진)을 두었다.[州(주)의 西南(서남)쪽 三八里(삼팔리)에 있으며 石城(석성)이다. 僉使(첨사)를 두고 다스렸다.]

麟山(인산)에 대하여 더 연구하여야 할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