述先裕后 :조상을 계승하고 자손을 잘되게 함.先世記錄들을 奉讀하십시요. image(gif) 만듬:문정공24세손 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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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실록단어해설
한자 어조사

예기(禮記)

 



대종회장25대-27대
창주공15세손
광훈(光勳)


만든 후손
발전연구위원 간사
25대∼
일헌공15세손
병선(昺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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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第七編 編執後記

 

 

 

 

跋文 辛未譜  1991年

東西古今(동서고금)莫論(막론)하고 國家(국가)마다 建國史話(건국사화)가 있고 歷史(역사)가 있듯이 各宗族(각종족)도 그 系統(계통)을 밝히는 族譜(족보)保有(보유)하고 있다. 國家(국가)에는 歷史(역사)가 있기 때문에 그 나라의 興廢(흥폐)存亡(존망)治亂(치란)安危(안위)世代(세대)長短(장단)등에 관한 事實(사실)後世(후세) 사람들이 보고 알 수 있고 宗族(종족)에게는 族譜(족보)()하여 昭穆世次(소목세차)興隆衰替(흥융쇠체)遠近幾世(원근기세)把握(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國家(국가)宗族(종족)은 크고 작은 差異(차이)는 있을 지라도 그 成長過程(성장과정)은 같은 것이니 나라에 歷史(역사)가 없을 수 없고 宗族(종족)마다 族譜(족보)가 있게 마련이다.

  이와 같이 修身齊家(수신제가)治國平天下(치국평천하)行動基準(행동기준)을 몸소 實踐(실천)하면 祖上(조상)들의 거룩한 行蹟(행적)이며 또 祖上(祖上)偉業(위업)善行(선행)을 이어가는 子孫(자손)들의 記錄(기록)이기도하다. 그러므로 우리 祖上(조상)들은 三十年(삼십년)週期(주기)增譜刊行(증보간행)하였고 譜牒(보첩)漏譜(누보)되는 것을 크나큰 羞恥(수치)로 알았으며 災難(재난)을 만나면 第一(제일)먼저 避難(피난)시킨 것이 族譜(족보)였으며 이와 같이 生命(생명) 다음으로 所重(소중)히 여기고 保存(보존)해 오고 있다.

  우리 鄭氏(정씨)高麗忠烈王(고려충렬왕)僉議中贊(첨의중찬)歷任(역임)하시고 德行(덕행)文章(문장)卓越(탁월)하여 當世(당세)儒宗(유종)으로 世稱(세칭) 海東夫子(해동부자)推仰(추앙)을 받으신 文靖公(문정공)中始祖(중시조)로 하여 지금까지 近千年(근천년)동안 羅州(나주)中心(중심)으로 咸平(함평), 務安(무안), 靈光(영광), 和順(화순), 扶餘(부여), 扶鉢(부발), 서울等地(등지)에서 定着世居(정착세거)하면서 忠勳科甲(충훈과갑)이며 文章孝烈(문장효열)이 끊이지 않은 東方顯族(동방현족)으로 傳統(전통)連綿(연면)해 오고 있다.

  우리 鄭氏(정씨)大同譜(대동보)肅宗三十一年(숙종삼십일년)(1705)刊行(간행)乙酉譜(을유보)를 그 嚆矢(효시)一九七七年(1977)刊行(간행)丁巳譜(정사보)까지 六次(육차)修譜(수보)가 있었으나 過誤(과오)가 많았음은 旣知(기지)事實(사실)이다.

()丁巳譜(정사보) 刊行時(간행시)微力(미력)하나마 末端(말단)에서 譜事(보사)를 도운바 있으나 當時(당시) 諸般事情(제반사정)으로 ()하여 漏落(누락)宗派(종파)가 많았고 編輯內容(편집내용) 亦是(역시) 未洽(미흡)한 채로 舊態依然(구태의연)譜牒(보첩)이 되었기에 이를 補完(보완)하여 名實相符(명실상부)現代的(현대적)族譜刊行(족보간행)要請(요청)되던 () 이번 辛未譜(신미보)發刊(발간)케 되니 個人的(개인적)으로는 勿論(물론) 吾宗(오종) 全體(전체)慶事(경사)가 아닐 수 없다.

  우리 祖上(조상)들이 살아오신 참모습은 禮儀之國(예의지국) 國民(국민)답게 民族(민족)主體意識(주체의식)儒學(유학)에 바탕을 둔 道義(도의)였기에 ()()해서는 生命(생명)까지 아끼지 않으셨다. 이처럼 學文(학문)道德(도덕) 忠義(충의)兼備(겸비)東方顯族(동방현족)名門(명문)임은 自他(자타)公認(공인)하는 바로서 우리 後孫(후손)들은 이러한 先祖(선조)들의 遺業(유업)을 받들어 現代化(현대화)라는 물결 속에 허물어져가는 價値觀(가치관)崇祖精神(숭조정신)을 바르게 定立(정립)해야 할 義務(의무)責任(책임)이 주워져 있으며 나아가 一家(일가)들의 繁榮(번영)自尊(자존)()해서도 愛族敦睦(애족돈목)으로 全宗親(전종친)一致團結(일치단결)하고 相扶相助(상부상조)하는 精神(정신)發揮(발휘)하여 繼承發展(계승발전)해야 할 것이다.

  이제 編輯(편집)을 마치면서 回想(회상)컨대 우리 編輯陣(편집진)은 보다 알차고 現代感(현대감)이 있는 族譜(족보)製作(제작)하고저 많은 家門(가문)族譜(족보)와 그 內容(내용)을 살펴보았고 正書(정서)에서 編輯(편집) 校正(교정)에 이르기까지 心血(심혈)傾注(경주)하였으나 限定(한정)與件下(여건하)에서 作業(작업)을 하다 보니 誤字(오자)도 있을 수 있고 內容面(내용면)에서도 洽足(흡족)치 못한 ()이 있을 것이니 많은 叱責(질책)을 바라며 끝으로 本譜刊行(본보간행)에 많은 支援(지원)을 하여주신 大宗會(대종회) 會長(회장)을 비롯하여 任員陣(임원진) 그리고 各派代表委員(각파대표위원)地域收單委員(지역수단위원) 여러분의 勞苦(노고)深甚(심심)感謝(감사)를 드리면서 拙劣(졸렬)한 글로 삼가 跋文(발문)()하나이다.

 

 

壬申(一九九二)年 正月 日

月灘公十三世孫 編輯委員兼幹事 永春 謹書

임신(1992)년 정월 일
월탄공십삼세손 편집위원겸간사 영춘 근서

아래와 같이 계보 파악 및 참고자료 붙임

系  譜 :   6 卷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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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파

指諭公諱億派

 

중조(中祖)

棄齋公諱薰  

 파계(派系)

海隱公諱以夏

  21世

諱 光元

고조(高祖)

諱 鎭恒

증조(曾祖)

諱 漢彧

조(祖)

諱 寶權

고(考)

諱 祿勉

  

27世諱 昺

영춘(永春)
 

금파(錦波)

 

 

甲戌1934年12月25日

 


사진촬영:일헌공15세손 병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