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1 辛未譜 |
|
|||||||||||||||||||||||||||||||||||||
慕廬公行狀 葛洞之細洞(갈동지세동)에 有居廬幕(유거여막)하니 田父老樵牧(전부노초목)이 往往指點曰(왕왕지점왈) 此鄭孝子所曾居廬幕處(차정효자소증거여막처)라. 鄭生遇玹(정생우현)이 䄂鄭氏三綱錄(유정씨삼강록)하야 請其先慕廬公狀(청기선모여공장)하니 居廬幕( 거여막)이 卽其人(즉기인)이라. 按東榰(안동지)는 其諱(기휘)요 柱世(주세)는 其字(기자)며 慕廬(모려)는 以其終身慕父父母(이기종신모부부모)하야 揭諸廬常目者也(게제여상목자야)라. 其生(기생)은 宣廟戊辰(선묘무진)하야 早志學專心性理(조지학전심성리)하니 ─ 皆當時聞人(개당시문인)이라. 抛棄擧業(포기거업)하고 一意色養(일의색양)하야 問所嗜(문소기)에 盡力求得(진력구득)하니 二親(이친)이 常怡悅(상이열)하고 母病瘧(모병학)이 沉綿(침면)에 尋百里醫(심백리의)하야 極萬放治(극만방치)러니 客症(객증)이 忽添(홀첨)하야 垂奄奄(수엄엄)하니 公(공)이 斫指(작지)하야 甦七日(소칠일)하고 及喪(급상)에 號慟幾絶(호통기절)하며 葬(장)에 結廬幕側(결여막측)하야 泣血(읍혈) 粥(죽)하고 每朔望(매삭망)에 歸拜凡筵(귀배범연)하야 審父啓居(심부계거)라. 父七旬(부칠순)에 公(공)이 奉養(봉양)에 靡誠不殫(미성불탄)하고 疾革(질혁)에 又斫指(우작지)하며 喪葬(상장)에 結盧(결로)하야 泣血(읍혈)을 不異母制(불이모제)라. 事兄以禮(사형이례)하고 兄喪(형상)에 期年食素(기년식소)하니 章甫(장보) ─ 屢薦(누천)이나 竟湮海而終(경인해이종)하니 五水山遮日峯西麓(오수산차일봉서록)은 其竁(기취)也라. 鄭系羅州(정계나주)하니 遠祖(원조)는 於雪齋可臣(어설재가신)이요 曾祖縉(증조진)은 贈參議(증참의)니 丁酉亂(정유란)에 殉節(순절)하고 祖舜卿( 조순경)은 戶曹參判(호조참판)이요 考(고)는 有楚(유초)니 妣濟州梁氏禹章(비제주양씨우장)은 其考(기고)라. 娶海南尹氏壽厚女(취해남윤씨수후여)라. 擧一男甲垕(거일남갑후) ─ 亦兩艱(역양간)에 居廬(거려)하니 今(금) 遇玹(우현)은 祖慕廬六世(조모려육세)를 敬親枝(경친지)하야 出言制行(출언제행)이 有聞人(유문인)하야 謂慕廬有孫(위모려유손)이라. 噫(희)라 以公如許卓絶(이공여허탁절)노 置諸澌泯之域(치제시민지역)하니 彼蒼者(피창자) ─ 理難易詰(이난이힐)이라. 更思之(갱사지)컨대 三綱錄見刊(삼강록견간)에 脫有未諶(탈유미심)하야 若鄭孝子居廬幕六字則(약정효자거여막육자칙) 耳耳焉鐺之(이이언당지)하고 口口焉碑之(구구언비지)하야 迄至陵谷夷遷(흘지능곡이천)에 前長存如于貤之榮(전장존여우이지영)과 綽楔之褒(작설지포) ─ 執與其多(집여기다)리요 嗚呼(오호)라 公之傳이 其無窮歟(기무궁여)인저 高宗庚子秋鄕井人 아래와 같이 계보 파악 및 참고자료 붙임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