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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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烈婦贈淑夫人薛氏殉節碑幷書 [역문]天地間(천지간)에 純綱至正(순강지정)의 기운이 사람에게 모아서 忠臣(충신)이 되고 烈婦(열부)가 되니 지나간 문서를 상고할 것 같으면 顯忠貞烈(현충정열)이 ①板蕩(판탕)한 세상에 기필하니 우리나라 壬辰(임진)난리 같은 것은 또한 忠臣(충신)과 烈婦(열부)가 절개를 세워 목숨을 버릴 때다. 當時(당시) 士大夫(사대부) 집에 忠烈(충렬)이 炳炳(병병)하여 앞서거니 뒷 서거니 서로 이어져 바라보니 羅州鄭氏(나주정씨)도 또한 그 하나다. 五忠(오충)과 三烈(삼열)이 한집에 모였으니 어떻게 그렇게 盛(성)할 것인가 삼가 烈婦(열부) 薛氏傳(설씨전)을 살펴 보건데 薛氏(설씨)는 바로 僉正 鄭縉(정진)의 妻(처)다. 壬辰(임진)난리에 僉正公(첨정공)이 再從叔(재종숙) 鷹(응)과 鴻(홍) 二公(이공)으로 義兵(의병)을 일으켜 高忠烈公(고충열공) 軍中(군중)에 달려갔는데 錦山(금산)의 敗報(패보)가 이르자 薛氏(설씨) 말하기를 남편이 반드시 살리가 없다하고 바로 自處(자처)코자 하니 시어머님 金氏(김씨)가 懇切(간절)히 타일러 목을 풀어 救(구)하고 말하기를 너의 남편의 生死(생사)가 아직 확실히 알지 못하니 안 후에 죽어도 늦지 않다 하였다. 數日(수일)을 사는데 僉正公(첨정공)이 果然(과연) 이르니 戰敗時(전패시)에 마침 軍務(군무)로 밖에 있었으니 구차스럽게 免(면)한 것이 아니다. 丁酉年(정유년)에 다시 시끄럽자 僉正公(첨정공)이 金億秋(김억추) 諸賢(제현)과 같이 다시 起義(기의)하여 大同江(대동강) 防守時(방수시)에 賊(적)이 湖南(호남)에 侵犯(침범)하여 있는 곳 마다 屠戮(도륙)하니 薛氏(설씨)가 늙은 시어머님과 再從叔母(재종숙모) 鄭氏(정씨) 金氏(김씨)를 모시고 종 夢蘭(몽란)과 竹寺洞(죽사동)으로 避亂(피란)하였는데 賊(적)이 갑자기 들어 닥쳐 禍(화)가 시어머님에게 미치니 薛氏(설씨)가 免(면)치 못할 것을 알고 바위 아래로 몸을 던져 죽으니 鄭(정)과 金(김) 二氏(이씨)도 따라서 投死(투사)하니 夢蘭(몽란)이도 屍體(시체)를 붙들고 죽으니 그때 僉正公(첨정공)은 여기저기서 싸우다가 南(남)쪽으로 내려와 李忠武公(공) 陣營(진영)으로 달려가 露梁(노량)의 싸움에서 二叔(이숙)과 더불어 殉節(순절)하였다. 事實(사실)이 朝廷(조정)에 알려져 兵曹參議(병조참의)에 追贈(추증)되고 薛氏(설씨)도 淑夫人(숙부인)에 追增(추증)되었다. 僉正公(첨정공)은 招魂(초혼)하여 돌아와서 夫人(부인)과 같이 合窆(합폄)하였는데 장사한 이틑날 風雪(풍설)이 일어나고 彩虹(채홍)이 하늘을 날으니 이것이 어찌 忠臣烈婦(충신열부)의 精靈(정령)의 氣(기)가 울적해서 흩어지지 않고 그런 것이 아니랴. 鄭氏(정씨)는 文靖公(문정공) 諱(휘) 可臣(가신)이 그의 顯祖(현조)요 薛氏(설씨)의 貫(관)은 玉川(옥천)이니 參判(참판) 勳(훈)의 玄孫(현손)이니 그 鍾美世分(종미세분)이 따름이 있다. 鄭氏(정씨)의 後裔(후예)가 장차 碑(비)를 세워 永久(영구)히 保存(보존)코자 謹兌(근태)와 炳琳(병림)이 와서 글을 請(청)하니 희미한 사람이 감히 당하지 못하되 私心(사심)에 興感(흥감)함이 오늘날에 있어 더욱 깊으니 또한 어찌 참이 끝까지 사양하리오 銘(명)하노니, 夫(부)의 忠誠(충성)과 婦(부)의 烈行(열행)은 죽어도 밝은 빛이 있도다. 꽃다운 바람과 상쾌한 기운은 죽었어도 더욱 기네. <註> ①板蕩(판탕):나라가 어지러워 흔들림 己未年 十月 錦城 吳駿善謹撰 아래와 같이 계보 파악 및 참고자료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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