述先裕后 :조상을 계승하고 자손을 잘되게 함.先世記錄들을 奉讀하십시요. image(gif) 만듬:문정공24세손 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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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실록단어해설
한자 어조사

예기(禮記)

 



대종회장25대-27대
창주공15세손
광훈(光勳)


만든 후손
발전연구위원 간사
25대∼
일헌공15세손
병선(昺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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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第五編 孝烈錄
旌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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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州鄭氏三孝閣刱建事實記
(나주정씨삼효각창건사실기)

[역문]나의 先考(선고) 雪軒府君(설헌부군)께서 장차 운명하시려 할 때 不肖(불초)에게 命(명)하기를 父親 黙隱公(부친 묵은공)과 이어 伯氏(백씨) 竹溪公(죽계공)의 篤孝純行(독효순행)을 너도 들은 바요 보고 알았을 것이다.

그 行蹟(행적)을 撰揚(찬양)한 文字(문자)가 상자속에 감추어져 있으니 너는 그것을 열고 보아라 하시어 不肖(불초)가 조심스럽게 命(명)하신대로 열고 보니 府君(부군)께서 또 한숨 쉬시며 말씀하시기를 우리 兩世(양세)의 純行(순행)이 이와같되 朝廷(조정)의 表彰(표창)이 이미 없고 二公(이공)에 있어 褒章(포장)을 請(청)한 바도 없으니 돌아 보건데 어찌 區區(구구)하게 돌아가신 뒤에 이름이 있으리오.

나같은 後人(후인)이 汲汲(급급)하게 闡揚(천양)하기를 求(구)하여 하여금 後百世(후백세)토록 泯汲(민급)치 않게 함이 마땅한 바거늘 지금 감추어져 있는 것은 다만 鄕道(향도)의 儒林(유림)들 글에 그쳤을 뿐이오 州郡(주군)의 輿誌(여지)에 그쳤을 뿐이니 이 어찌 족히 吾祖(오조)와 吾兄(오형)을 不朽(불후)케 하리오.

나는 이제 다 되었다 능히 吾祖(오조)를 爲(위)하여 일할 수가 없다 비록 그러나 내가 이루지 못한 바를 이제 너에게 부탁하니 너는 힘으로 할 수 있으면 해야 할 것이니 나의 오늘의 말을 잊지 말라 하시고 말씀을 마치며 눈을 감으셨다.

不肖(불초) 그때는 아직 젊어 그 말에 深痛(심통)함이 있는 줄을 알지 못했다. 이윽고 世路(세로)에 奔走(분주)하여 세상살이에 골몰하여 이 일을 생각지 못하고 歲月(세월)이 물같이 흘러 不肖(불초)의 나이도 어느 듯 七十(칠십)이 되었다.

항상 깊은 밤에 잠은 없고 누워서 平生事(평생사)를 생각하면 忽忽(홀홀)히 꿈과 같이 先君(선군)의 말씀이 丁寧(정녕)히 귀에 익어 송구스러워 일어나 앉아도 깨닫지 못하였으며 또한 생각건대 世敎(세교)가 衰敗(쇠패)하여 倫理(윤리)가 땅에 떨어져 없다.

人家(인가)의 後生(후생)이 능히 先世(선세)의 懿行(의행)이 있음을 알아 기술하기를 생각한자 몇 사람이며 先懿(선의)는 無論(무론)하고 바로 그 父母(부모)의 劬勞(구로)하신 罔極(망극)의 은혜를 사랑하고 공경할 줄 아는 자가 또한 다시 몇 사람 이리오 先祖(선조)를 追慕(추모)하여 그 後孫(후손)에게 끼치는 바가 내게는 蓋然(개연)치 못한 날이었으니 吾家(오가) 子姪軰(자질배)로 하여금 先德( 덕)이 가히 사모하고 先訓(선훈)을 가히 받들 줄을 알게 하며 또한 倫理(윤리)가 사람에게 있음으로 古今(고금)의 사람들이 그만두지 아니할 것을 생각게 하여 달리 感發(감발)하여 興起(흥기)함이 있다면 작은 일이 아니다.

이에 綿城(면성)의 沙川(사천) 옛 마을에 兩世紀行(양세기행)의 碑(비)를 治裝(치장)하여 글을 當世作家(당세작가)에게 빌고 돌로 이미 具備(구비)되었다. 그런데 鄕友(향우) 若干人(약간인)이 와서 내게 말하기를 그대가 兩世(양세)의 일을 한것은 좋으나 다만 先親(선친)의 孝道(효도)가 兄(형)과 幷傳(병전)치 못한다면 可(가)하다고 할 것인가 대저 그대의 伯父(백부)와 先親(선친)은 우리들이 보았든 바다.

竹溪公(죽계공)은 그대의 큰집을 이어갔고 또 그 성품이 專一(전일)하여 當時(당시)에 孝(효)로 이름이 났었고 先公(선공)인 즉 文學(문학)이 있었고 또한 支子(지자)였다. 文學(문학)이 있으면 행동이 한가지 節操(절조)에만 專念(전념)하지 못하며 支子(지자)가 된 즉 責任(책임)이 自身(자신)에게만 치우치지 못한다. 그러니 竹溪公(죽계공)의 孝(효)는 진실로 先公(선공)이 계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어찌 이에 竹溪公(죽계공)과 같이 못하리오 하였다. 내가 이에 懼然(구연)히 생각하고 惕然(척연)이 놀래어 그 行蹟(행적)을 기록하여 글을 만든 분에게 碑文(비문)을 보이니 대개 앞서의 先君(선군)을 들지 않는 것은 先君(선군)의 말씀으로 兩世二孝(양세이효)를 爲(위)하여 發(발)한 것이오 이제 先先君(선선군)을 合(합)해서 세분이 된 것은 鄕黨(향당)의 公論(공론)이 있어 不可不(불가불) 그만두지 못한 것이다. 이에 두루 고을 안을 다니면서 사람들의 碑閣(비각)을 보니 몇 년이 못 되어 비바람에 침식되고 往往(왕왕)히 담이 헐어지고 개와가 떨어져 가히 지탱하지 못함을 보았다.

이에 石工(석공)을 모아 기둥을 만들고 주춧돌을 만들고 담장을 만들고 門(문)을 만들어 戊戌年(무술년) 봄에 시작하여 己亥年(기해년) 가을에 工事(공사)가 끝나니 黨親(당친)들이 그 힘을 덜어 總費用(총비용) 七百萬(칠백만)원이나 감히 侈觀(치관)하다고 듣지 않했고 오래도록 維持(유지)하고자 計劃(계획)하였다.

아! 이 어찌 先祖(선조)의 懿蹟(의적)을 더럽히지 않했으리오. 다만 조금 子孫(자손)된 誠意(성의)를 들어냈을 뿐이니 그 능히 嗣守(사수)하고 張大(장대)한 편이리오. 이 五尺(오척)된 數楹(수영)이 頹敗(퇴패)하여 圮覆(비복)치 않는다면 또한 나의 後人(후인)이 있어 할 것이오. 여기까지 나아간다면 詩人(시인)의 이른바 繼序(계서)하기를 생각하고 잊지 않음이 있을 것이오.

이른바 이에 그 德(덕)을 닦음이 있을 것이다. 대저 繼序(계서)할 것을 반드시 생각하면 그 祖德(조덕)을 닦을 것이오. 그 祖德(조덕)을 닦으면 반드시 祖先(조선)의 마음으로서 마음을 삼고 祖先(조선)의 行誼(행의)로서 行(행)함이 있을 것이니 先祖(선조)를 잊는 것도 非孝(비효)요 德(덕)을 닦으지 않는 것도 非孝(비효)요 겨레와 화목치 못한 것도 孝(효)가 아니오.

朋友(붕우)에게 말하지 않은 것도 또한 孝(효)가 아니니 뒷사람들은 각각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己亥季秋之上濣 黙隱公 曾孫 大衍 謹記
                                           기해계추지상한 묵은공증손 대연 근기

                                                  

아래와 같이 계보 파악 및 참고자료 붙임

系  譜  : 6卷617, 6卷712, 6卷712
계보보기

4대파

尙書公諱儼派

중조(中祖)

中樞府事公諱 

 파계(派系)

沙江公諱湊派

  21世

諱德昇

光道

孝邦

고조(高祖)

諱德昇

孝邦

泰垕

증조(曾祖)

諱光道

泰垕

錫河

조(祖)

諱孝邦

錫河

筠成

고(考)

泰垕

筠成

昺益

25世諱錫河

27世諱昺益

28世諱大衍

淸汝

榮彦

大潤

默隱

雪軒

自省

純祖9己巳 1809年9月8

高宗8辛未 1871年6月21

高宗27庚寅 1890年11年25

 

壬午1943年8月11

乙巳1965年2月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