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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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烈婦利川徐氏褒狀 [역문]우(右) 포장사(褒狀事)를 삼가 살펴 보건데 전남유림(全南儒林)의 천거(薦擧)인즉 나주군(羅州郡) 열녀(烈女) 이천서씨(利川徐氏)로 병조판서(兵曹判書) 휘(諱) 숭노(崇老)의 후손(後孫)이며 순(淳)의 딸이며 나주인(羅州人) 경무공(景武公) 휘(諱) 식(軾)의 십사세손(十四世孫) 선(墠)의 아들 참봉(參奉) 진욱(鎭旭)의 처(妻)로 자성(資性)이 정숙(貞淑)하고 규절(閨節)이 유한(幽閒)하여 시집와서 효도(孝道)하며 공경하여 일문(一門)이 정숙(整肅)하였고 남편이 중병(重病)이 있어 백방(百方)으로 조치(調治)하여 병(病)든 남편을 모시고 울릉도(鬱能島)로 가는데 풍도(風濤)에도 조금도 게을리 않고 일심(一心)으로 정성을 다하였으나 끝까지 효험(效驗)을 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이십여년(二十餘年)을 하루같이 구호(救護)하여 마침내 상(喪)을 만나니 곧 남편의 뒤를 따르고자 하였으나 돌려 생각해보니 남편의 뒤를 이을 이가 없어 이를 머금고 억지로 살아 장례(葬禮)와 제사(祭祀)를 예(禮)로써 하고 조카를 입양(入養)하여 제사(祭祀)를 받들게 하고 묘비(墓碑)를 세웠으며 돈을 희사(喜捨)하여 일가를 보호(保護)하였으며 묘각(墓閣)을 건축(建築)하였으니 평생(平生) 행사(行事)를 열(烈)로써 근본을 삼고 육행(六行)이 극비(極備)하였다.
아 ! 씨(氏)의 열행(烈行)이 종시(終始) 흠이 없되 시제(時制)의 다름이 있어 아직도 천양(闡揚)치 못했다 함으로 본소(本所)에서 비각(碑閣) 세울뜻을 부쳐 경고(敬告)하오니 첨언(僉彦)은 조량(照亮)하시면 다행(多幸)하겠습니다. 孔子誕降二四七三年壬戌十一月 日 孔夫子聖蹟圓五倫行實重刊所
아래와 같이 계보 파악 및 참고자료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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