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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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烈婦順天朴氏事實 [역문]英祖朝(영조조) 丁丑年(정축년 英祖33年 西紀1757) 郡守(군수)의 懸板記(현판기)에 이르기를 朴氏(박씨)는 順天(순천)에서 系出(계출)하니 貞齋公(정재공) 宜中(의중)의 後孫(후손)이오 孝子(효자) 昌碩(창석)의 딸이며 羅州鄭公(나주정공) 選中(선중)의 妻(처)다. 性稟(성품)이 端正(단정)하여 한결같이 능히 婦人(부인)의 道理(도리)를 지켰으니 남편이 죽고 小祥(소상)이 되자 남편 뒤를 따르기로 맹서하고 衣裳(의상)을 裝束(장속) 앞 샘에 걸어 나가 돌을 품에 품고 물에 뛰어들어 죽으니 아! 家人(가인)이 급히 달렸으나 미치지 못했으니 어떻다고 이르리오. 朴氏(박씨)의 貞烈(정열)은 남편 집에서 말한다면 대개 받은바가 있으니 忠臣(충신)으로 號 (호)가 月峰(월봉)인 鄭公(정공) 凰壽(황수)의 五世孫婦(오세손부)요 孝子(효자)로 號(호)가 南坡(남파)인 鄭公(정공) 鳳徵(봉징)의 姪婦(질부)다. 忠孝(충효)가 해와 별같이 빛나 고을에서 살았든 마을에다 祠宇(사우)를 설치하였는데 오직 이 烈行(열행)이 旌閭門(정려문) 집안에서 이어 나오니 더욱 先烈(선열)에게 빛이 있다. 남편 鄭氏(정씨)는 한집안에서 三綱(삼강)이 연이어 각각 그 義(의)를 따라 혹은 자기 몸을 희생하여 仁(인)을 成就(성취)하니 또한 風俗(풍속)을 敎化(교화)시키는데 도움이 없다고 이르지 못할 것이다. 뒤에 子孫(자손)의 移居(이거)로 因 (인)하여 嚴多面(엄다면) 松村(송촌)에다 重建(중건)하였다가 뒤에 三綱門(삼강문)에다 旌閭門(정려문)도 같이 세우고 碑(비)도 세우니 옛터인 務安(무안) 城東外(성동외) 月川里(월천리)와의 거리는 겨우 一里(일리)남짓 된다. 務安(무안) 朴淇鍾記(박기종기)에 이르기를 月川(월천)을 바라보니 옛 감정이 더욱 새롭고 竹林(죽림)에 비 뿌리니 忠臣(충신)의 눈물 마르지 않했고 石泉(석천)의 물결 목 메이니 烈婦(열부)의 恨(한)이 끝이 없네 라고 하였고 完山(완산) 李承旭(이승욱)이 기록하기를 三綱(삼강)은 날이 되고 땅은 씨가 되어 백성의 떳떳함이요 事物(사물)의 法則(법칙)이니 宇宙(우주)에 뻗쳐 밝기가 해와 달 같은 것이다. 한사람 한집안의 사사로운 것이 아니요 天下(천하)가 같이 얻은 바다. 鄭氏(정씨)는 누구를 이름 인고. 忠臣(충신) 凰壽(황수)와 孝子(효자) 鳳徵(봉징)과 烈婦(열부) 選中(선중)의 아내 順天朴氏(순천박씨)다. 事實(사실)이 자세히 國朝三綱錄(국조삼강록)에 실렸으니 내가 기록한 것은 저 鄭氏(정씨)를 위한 것이 아니오 天下萬世(천하만세)를 위한 것이다 하였다.
아래와 같이 계보 파악 및 참고자료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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