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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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愼默齋鄭公孝閭上樑文 [역문]기술하노니 百行(백행)의 근원으로 誠心(성심)이 克純(극순)하니 이어받을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三世(3세)를 지나 遺蹟(유적)이 비로소 들어나고 다행이 은혜를 입어 旌閭(정려)를 表(표)하니 遺址(유지)가 아직도 있어 새로운 들보가 처음으로 걸었다.
곰곰이 생각건대 愼默齋鄭公(신묵재정공)은 錦北(금북)의 分派(분파)로 箕東(기동)에 있을 곳을 정했으며 文靖公(문정공)의 餘蔭(여음)을 世世(세세) 襲美(습미)하여 떨어뜨림이 없었고 棄齋公(기재공)의 遺澤(유택)이 집의 傳業(전업)으로 相繼(상계)하였네.
當日(당일)의 事親(사친)하는 誠孝(성효)를 생각해서 말하니 진실로 화협하여 淸朝(청조)의 尙賢(상현)으로 襃揚(포양)했네. 愉色(유색)과 婉容(완용)은 平生(평생)에 떳떳이 사는 아름다운 德(덕)이요 割指(할지)하여 注血(주혈)함은 倉猝(창졸)한 變(변)에 對處(대처)한 卓行(탁행)이다. 三年(3년)동안 泣血(읍혈)함은 이웃 사람들이 같이 감동할 뿐만 아니오 七日(7일)동안 回甦(회소)함은 兎神(토신)도 가만히 믿은데가 있었다. 實行(실행)이 있되 마침내 泯沒(민몰)로 돌아갈 것인데 이에 思命(사명)을 받들어 快(쾌)히 獎詡(장후)함을 보았네.
邑報(읍보)와 道啓(도계)에 같이 大孝(대효)라고 일컬을 뿐만 아니라 아니 또한 天意(천의)와 人心(인심)도 至誠(지성)밖에 없구나. 子息(자식)으로 어버이께 順從(순종)함은 이 진실로 秉彛(병이)를 얻은 것이오. 孫子(손자)가 또 할아버지를 들처 냄은 누가 그 집 이어감을 鈍嘆(둔탄)치 않으리오. 이내 容駟(용마)의 舊墟(구허)에 나아가 荷龍(하룡)의 높은 기둥 세워 일으켰네.
鰲山(오산)의 나무 늙어 董生(동생)이 몸소 나무함을 遙想(요상)라고 鯉川(이천)에 어름찾으니 황홀이 王祥(왕상)의 부르짖어 두드림을 보네. 百年(백년)뒤에 議論(의론)하여 定(정)하니 비로소 公道(공도)가 본래 그러함을 알겠구나. 三綱(삼강)에 參與(참여)하여 懸板(현판) 다니 모로에 倫理(윤리)의 빛남을 알겠구나. 깊히 前修(전수)의 勤篤(근독)함을 궁구하니 진실로 後人(후인)으로 하여금 슬프게 하네. 이름이 十室(십실)에 뜨니 地望(지망) 또한 높고 말이 九重宮闕(구중궁궐)에 達(달)하니 天聰(천총)이 심히 가깝네.
옛 어진이 남긴 발자취 이제부터 뒷 좆이고 君子(군자)의 盛(성)한 바가 이에 이르러 더욱 나타나네. 감히 雙律(쌍율)을 빼어 들보드는데 도우네. 어허라 들보를 東(동)으로 던지니 天叙民彛(천서민이)가 우리 東邦(동방)에 빛나구나. 들보를 南(남)으로 던지니 忠孝(충효)가 元來(원래) 指南(지남)을 만드네. 들보를 西(서)로 던지니 崦嵫(엄자)의 햇그늘 山西(산서)쪽에 걸렸구나. 들보를 北(북)으로 던지니 빛나는 한정성 北斗(북두)에 걸렸구나. 들보를 위로 던지니 집 세운데 죽지 않고 가장 높은데 올랐구나.
들보를 아래로 던지니 北門(북문)을 可使(가사)하니 天下(천하)와 같이하네. 엎드려 願(원)하옵건데 上樑(상량)한 뒤에 䂓矩(규구)를 永守(영수)하고 繩墨(승묵)이 비뚤어지지 않고 子子孫孫(자자손손)이 孝思(효사)를 法(법)받으리라. 進士五衛將 靈山 辛裕章 謹撰 아래와 같이 계보 파악 및 참고자료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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