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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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坡州廉氏旌閭記 烈婦(열부)는 十八歲(18세)에 鄭氏家門(정씨가문)에 들어와서 二十一歲(21세)에 남편을 잃으니 그때 시부모가 계시는데 늙었고 동생 한 분이 있는데 아직 어리니 ①初終(초종)때 烈婦(열부)는 심히 슬퍼하지 않은듯하여 ②送終凡百(송종범백)을 친히 마련하고 몸소 三年喪(삼년상)을 지내면서 그 시부모에게 너그럽게 보이고 慰安(위안)하며 供養(공양)을 남편 있을 때 보다 더욱 부지런히 하였고 喪(상)을 마칠 저녁에 물건을 장만하여 일을 마치고 새벽에 寢房(침방)으로 들어가 蓋然(개연)히 죽으니 家人(가인)이 그의 상자를 살펴보니 자기의 죽음 옷을 만들어 둔지 이미 오래되었었다.
州人(주인)이 그 행실을 써서 牧伯(목백)에게 告(고)하고 이어 監營(감영)과 禮曹(예조)에 한두 번 알리고 그쳤다. 今年(금년) 봄에 上(상)께서 特命(특명)하여 그 旌閭(정려)를 烈女廉氏(열녀염씨)의 門(문)이라 하였다.
아! 사람이 한번 죽기로 진실로 어려운 것이어 늘 죽기를 自然(자연)스럽게 하기는 더욱 어려우니 烈婦(열부)같은 분은 한번 죽기를 이미 남편 죽는 날에 決心(결심)하였으나 은근히 참아 三年(3년)까지 이른것을 그 시부모가 哀痛(애통)해 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너그럽게 하고자 한 것 이오 그 남편동생이 조금 크기를 기다린 것이다. 그러니 三年(3년) 동안 烈婦(열부)의 마음이 어찌 하룬들 그죽음을 잊었으리오.
夫弟(부제)가 조금 자라서 老人奉養(노인봉양)을 依托(의탁)할 수 있고 祥事(상사)도 끝나 다시 延命(연명)코자 아니하여 畿微(기미)를 들어내지 않고 틈을 타서 남편 뒤를 따르니 그 處事(처사)의 周密(주밀)하고 義理(의리)의 精到(정도)함을 볼 때 진실로 글 읽는 士君子(사군자)도 능히 어려운 바니 누가 婦人(부인)이 능히 한다고 하리오. 죽음이란 본래 똑같은 것이다. ③攀擗蒼黃(반벽창황)할 때칼로 찌르고 물에 빠진 것을 보는데 그것보다 더욱 어렵지 않으리오. 아! 烈(열)하도다. 비록 시부모를 終養(종양)치 못했으니 孝(효)라고 하지 못할것이로되 그러나 바다를 등지고 있는 궁한 마을에 至行(지행)이 쉽게 없어지는데 公議(공의)가 一方(일방)에 菀然(완연)하여 글을 올려 九重宮闕(구중궁궐)까지 到達(도달)하였으니 얼마나 多幸(다행)한가 天日(천일)이 孔昭(공소)하여 먼데까지 비치지 않은대가 없고 旌閭(정려)의 恩典(은전)이 하늘로부터 떨어져 마을이 빛나고 있다. 사람들의 耳目(이목)에 照暎(조영)하니 비록 下女(하녀)나 賤婦(천부)라도 感發(감발)하여 興起(흥기)치 않을 수 없으며 착한 일을 한사람을 勸(권)할 줄을 알 것이다.
아! 아름답구나. 우리 聖朝(성조) ④樹風勵俗(수풍려속)의 敎化(교화)가 이에 이르러 遺憾(유감)이 없다. 아! 아름답구나. 아무거나 揄揚(유양)하고 張大(장대)하여 後世(후세)에 徵信(징신)케 하여 史筆(사필)을 잡은 자 있을 것이니 이에 대략 烈婦(열부)의 立節(입절)한 顚末(전말)과 朝廷(조정)의 獎勵(장려)를 숭상하는 至意(지의)를 人間世上(인간세상)에 머물게 한다. [註] ①初終(초종):初喪(초상)을 말함 ②送終凡百(송종범백):초상에 관한 일체의 절차 ③攀擗蒼黃(반벽창황):喪(상)을 당하여 매우 슬피울며 더우잡고 가슴을 두드리며 경황이 없을 때 ④樹風勵俗(수풍려속):교육과 정치의 힘으로 백성을 善導(선도)하는 것 興城 張憲周 記 아래와 같이 계보 파악 및 참고자료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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