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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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滄洲亭記 [역문]先生(선생)이 가만히 自號(자호)로 因(인)하여 亭子(정자)를 이름 부치니 公(공)과 亭(정)이 추호도 사이가 없을 듯 한지라 先生(선생)으로써 滄洲(창주)라 한다면 이는 滄洲先生(창주선생)이오, 亭(정)으로써 滄洲(창주)라고 한다면 이는 滄洲亭(창주정)다. 當時(당시)의 學者(학자)가 先生(선생)이라고 일컬은 다면 亭子(정자) 또한 先生(선생)됨이 可(가)할 것이다. 滄洲(창주)의 字義(자의)를 ①外史(외사)에서 말하기를 讀書(독서)에 經(경)의 뜻을 빛나게 함이 있다면 한지라 亭子(정자)가 어찌 일직 經(경)을 빛나게 하여 讀書(독서)하리오. 이는 讀書(독서)함에 經(경)을 빛나게 하는 亭子(정자)일 것이니 公(공)에게 사이가 없는 것이 明白(명백)하도다. 先生(선생)이 본래 文獻(문헌)이 집안으로 ②穆陵(목능)의 융성한 때에 태어나 넉넉한 學問(학문)으로 벼슬에 올라 벼슬이 正郞(정랑)에 그치니 또한 가히 可(가)할 때에 그쳤다고 할 것이다. 德業(덕업)과 문장을 더하여 여기에 숨어서 닦으면서 後學(후학)을 권장해서 進就(진취)시키는 것으로 나의 소임을 삼으니 責任(책임)이 이같이 莫重(막중)한듯 한지라 그러나 亭子(정자)가 公(공)이 있음으로 인해서 百世(백세)토록 이름이 있는 것은 可(가)하려니와 公(공)이 亭子(정자)가 있음으로 인해서 그 이름이 重(중)한 것은 아니다. 公(공)에게는 마땅이 損益(손익)이 없되 다만 이제 遺墟(유허)가 荒廢(황폐)하니 이것이 後孫(후손)들의 차마 못할바라 千百(천백)의 後孫(후손)들 마음속에 새겨있어 誠力(성력)을 奮出(분출)하고 또한 그 고향을 같이한 異姓(이성)의 士友(사우)들 까지도 또한 各各(각각) 힘을 내어 며칠이 않되어 成就(성취)하니 彷佛(방불)하게 오르고 내리신 것이 살아계신 듯하여 室堂(실당)에 빛이 있는지라 亭子(정자)의 모양이 옛스럽고 새로운 것을 어찌 가히高下(고하)를 論(론)하리오 願(원)하건데 뒤에 오는 後孫(후손)들은 다행히 이 亭子(정자)가 다시 짓게 됨으로써 다행하다고 하지 말고 그윽이 先生(선생)의 德業(덕업)으로써 오래도록 이를 공경하고 지켜 千百後孫(천백후손)의 心法(심법)을 잡아 戶戶(호호)마다 공경하고 집집마다 사모하여 이 亭子(정자)에 ③羹墻(갱장)의 정을 붙인다면 그 후에 생각건대 기둥이 부러지고 들보가 끊어진 근심이 없으리니 힘쓸지어다. 門中(문중)에서 亭記(정기)를 쓰라 命(명)함으로 외람됨을 잊고 대략 기록하노라. <註> ①外史(외사):正史(정사)가 아닌 遺史(유사)같은 것 ②穆陵(목능):李朝 宣祖(이조 선조)의 陵號(능호) ③羹墻(갱장):사람을 우러러 사모한 것. 옛날에 堯(요)임금이 죽은 후 舜(순)임금이 우러러 사모하기를 三年(3년)을 하되 앉으면 堯(요)의 담을 보고 먹으면 堯(요)의 국을 본다는데서 나온 말 十二世孫
遇益 謹記 아래와 같이 계보 파악 및 참고자료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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