述先裕后 :조상을 계승하고 자손을 잘되게 함.先世記錄들을 奉讀하십시요. image(gif) 만듬:문정공24세손 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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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실록단어해설
한자 어조사

예기(禮記)

 



대종회장25대-27대
창주공15세손
광훈(光勳)


만든 후손
발전연구위원 간사
25대∼
일헌공15세손
병선(昺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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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第四編 先世遺稿
亭齋閣堂軒記

 

 

 

 

滄洲亭記
(창주정기)

[역문]亭子(정자)는 곧 先朝(선조)인 滄洲先生(창주선생)께서 講學(강학)하든 곳이다. 先生(선생)이 明宗(명종)과 宣祖時代(선조시대)에 태어나시니 가히 때를 만났다고 할 것이다.

行(행)하시고 그치시기를 때에 맞추어 하시니 늦게야 때 묻지 않는 처음 옷을 찾아서 諸賢(제현)들과 道理(도리)를 論(논)하고 正義(정의)를 講(강)하여 여기서 숨어 닦으시니 무릇 다른 江湖(강호)의 烟景(연경)과 泉石(천석)의 佳麗(가려)함은 진실로 이 亭子(정자)의 重(중)하고 가벼운 것이 아니다.

다만 榮山江(영산강)의 一帶(일대)가 근원이 멀어 일직 밝은 모래와 흰 자갈은 없으나 그러나 얽히어 錦城(금성)을 돌아드니 雪齋先生(설재선생) 손수 심은 桃柳(도유)가 봄이면 紅白(홍백)으로 江(강)물에 漢水(한수)와 같이 흘러 아래서 合(합)하여 이 亭子(정자)에 맑게 비치니 그윽이 생각건대 滄洲亭(창주정) 八景(팔경)이 정히 鞍洞(안동)의 溪亭八景(계정팔경)으로 조금 符合(부합)된 데가 있는지라 하물며 또 밤에 달이 밝으면 넓고 넓어 澹泊(담박)하여 거울 같으나 이 澄淸(징청)하여 하늘과 一色(일색)으로 天心(천심)과 水心(수심)의 一輪(일륜)이 이 亭子(정자)를 밝게 비춤에 있어서랴.

옛날 先生(선생)이 살아 계실 때에 德業文章(덕업문장)과 詩禮典型(시례전형)을 생각하면 진실로 가히 볼만 했을 것이오. 특히 경치가 좋아서 州縣(주현)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인 즉 亭子(정자)가 이미 터만 남았으니 지금의 後孫(후손)이 누군들 원망하지 아니하랴. 원망하는 마음이 마땅히 이 亭子(정자)의 터를 버리지 않은 마음이다.

터를 버리지 아니함으로 정성과 힘이 千百(천백)사람의 마음속에 붙어있어 各自(각자)가 힘을 내서 그 정성을 奮發(분발)하니 무릇 지금의 정성인 즉 넉넉하나 힘이 이미 위축되었다. 경영한지 一年(일년)이 되었는데 草洞(초동)이 특별한 노력으로 도모하고 鞍洞(안동)이 힘을 아울러 多幸(다행)히 今春(금춘)에 며칠 안되어 竣工(준공)하니 활홀한 옛 모습이 七分(칠분)같아 寶山(보산)의 陽地(양지)에 우뚝 솟아있다.

아! 亭子(정자)가 옛날같지 아니하니 혹시 섭섭한 이도 있기는 있을 것이다. 軒窓(헌창)이 크고 넓어 先生(선생)의 기침 소리가 어슴푸래 들리는 것 같고 室堂(실당)이 靜肅(정숙)함에 先生(선생)의 書冊(서책)과 琴瑟(금슬)이 彷佛(방불)히 存(존)한듯하니 亭子(정자)의 新舊(신구)를 누가 가히 생각하리오. 경계할 것이로다.

後孫(후손)들은 딴 마음을 먹지 말고 다만 오늘의 誠心(성심)으로 마음을 담아 오래도록 이 법을 따라 先生(선생)의 남긴 말씀의 향기가 지워지지 않고 여기에 있다면 진실로 이 亭子(정자)의 크게 가행함이다. 門中(문중)에서 不肖(불초)에게 記(기)를 쓰라 命(명)함으로 외람됨을 잊고 삼가 기술하노라.

                              昭陽大荒落仲春日                    十世孫 畿埰 謹記 (
                                             (소양대황락중춘일                                                십세손 기채 근기)

아래와 같이 계보 파악 및 참고자료 붙임

系  譜 :    2卷707   /   계보보기

4대파

少尹公諱佶派

 

중조(中祖)

 파계(派系)

  21世

고조(高祖)

諱軾

증조(曾祖)

諱承賢

조(祖)

直長公諱觀

고(考)

思禮堂公諱念祖

  

13世

仲愼 중신
 

滄洲 창주

 

 

中宗28癸巳 1533

宣祖己酉 1609年六月四日

 

字仲愼 號滄洲
•中宗癸巳生
•宣祖甲戌에別科壯表上之中하여通訓大夫戶曹正郞과弘文典籍兼春秋館記注官東學敎授로除丹城縣監하되辭不赴하고後守舒川磨崖에頌德이라歷守南平昌平茂朱鐵原에大有聲蹟이라丁未에抗疎辯己丑諸賢之誣라가朋比所沮하여落拓還鄕하고無意仕進하여遯跡江湖에以奬進後學으로爲己任이라當時名碩이多出其門이라龍蛇之變에公年方老라憂憤不食曰吾本世受國恩之家로當此板蕩하여豈敢坐視乎아遂扶疾하고赴李忠武幕하여與鹿戶鄭運과慶尙右水使元均과金甲萬戶宋希立으로警以同死하다贊晝方
하여遂大破陳하고斬首數十級이라李忠武曰今日之捷는實鄭公之力也라時에彼兵이大熾于湖南하니公이謂忠武曰湖南은國家之根本이요用兵之要塞處라守此然後에可爲興復之計라하고仍謝하나李公이自閒山으로直向晉州하여與兵使崔慶會로以爲嶺湖相援之計하고到于南原하여與梁大樸으로方圖發檄召幕하다가中道에疾劇하여未果而歸하고卽召第二子如麟하여戒之曰汝當替父之行하여以効報君之誠하라命送李公幕하여輸軍餉하고仍付以書하曰一身이辭退니略於壇席에衰病日甚하니今敵慨之日에更不能奮身於牙纛之下라負國之罪를其何逭가命此豚兒하여替赴麾下라李公이答曰疾風草非令公之謂耶아事載三綱錄하다及聞李公이死於露梁하고驚悼不巳하여仍作文往哭之라
宣祖己酉六月四日卒壽七十七睡隱姜沆과谿谷張維咸以詩悼之하다
正宗己未에建祠于莎洞寶山하다庚申에道儒以公之兄弟와及子如麟忠節로上言請褒라
•配淑夫人固城李氏習讀懿女監司節玄孫
•中宗辛未生
•光海壬子十一月十日卒壽八十二墓多侍面白龍山案山巳坐雙兆有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