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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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滄洲亭記 [역문]亭子(정자)는 곧 先朝(선조)인 滄洲先生(창주선생)께서 講學(강학)하든 곳이다. 先生(선생)이 明宗(명종)과 宣祖時代(선조시대)에 태어나시니 가히 때를 만났다고 할 것이다. 行(행)하시고 그치시기를 때에 맞추어 하시니 늦게야 때 묻지 않는 처음 옷을 찾아서 諸賢(제현)들과 道理(도리)를 論(논)하고 正義(정의)를 講(강)하여 여기서 숨어 닦으시니 무릇 다른 江湖(강호)의 烟景(연경)과 泉石(천석)의 佳麗(가려)함은 진실로 이 亭子(정자)의 重(중)하고 가벼운 것이 아니다. 다만 榮山江(영산강)의 一帶(일대)가 근원이 멀어 일직 밝은 모래와 흰 자갈은 없으나 그러나 얽히어 錦城(금성)을 돌아드니 雪齋先生(설재선생) 손수 심은 桃柳(도유)가 봄이면 紅白(홍백)으로 江(강)물에 漢水(한수)와 같이 흘러 아래서 合(합)하여 이 亭子(정자)에 맑게 비치니 그윽이 생각건대 滄洲亭(창주정) 八景(팔경)이 정히 鞍洞(안동)의 溪亭八景(계정팔경)으로 조금 符合(부합)된 데가 있는지라 하물며 또 밤에 달이 밝으면 넓고 넓어 澹泊(담박)하여 거울 같으나 이 澄淸(징청)하여 하늘과 一色(일색)으로 天心(천심)과 水心(수심)의 一輪(일륜)이 이 亭子(정자)를 밝게 비춤에 있어서랴. 옛날 先生(선생)이 살아 계실 때에 德業文章(덕업문장)과 詩禮典型(시례전형)을 생각하면 진실로 가히 볼만 했을 것이오. 특히 경치가 좋아서 州縣(주현)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인 즉 亭子(정자)가 이미 터만 남았으니 지금의 後孫(후손)이 누군들 원망하지 아니하랴. 원망하는 마음이 마땅히 이 亭子(정자)의 터를 버리지 않은 마음이다. 터를 버리지 아니함으로 정성과 힘이 千百(천백)사람의 마음속에 붙어있어 各自(각자)가 힘을 내서 그 정성을 奮發(분발)하니 무릇 지금의 정성인 즉 넉넉하나 힘이 이미 위축되었다. 경영한지 一年(일년)이 되었는데 草洞(초동)이 특별한 노력으로 도모하고 鞍洞(안동)이 힘을 아울러 多幸(다행)히 今春(금춘)에 며칠 안되어 竣工(준공)하니 활홀한 옛 모습이 七分(칠분)같아 寶山(보산)의 陽地(양지)에 우뚝 솟아있다. 아! 亭子(정자)가 옛날같지 아니하니 혹시 섭섭한 이도 있기는 있을 것이다. 軒窓(헌창)이 크고 넓어 先生(선생)의 기침 소리가 어슴푸래 들리는 것 같고 室堂(실당)이 靜肅(정숙)함에 先生(선생)의 書冊(서책)과 琴瑟(금슬)이 彷佛(방불)히 存(존)한듯하니 亭子(정자)의 新舊(신구)를 누가 가히 생각하리오. 경계할 것이로다. 後孫(후손)들은 딴 마음을 먹지 말고 다만 오늘의 誠心(성심)으로 마음을 담아 오래도록 이 법을 따라 先生(선생)의 남긴 말씀의 향기가 지워지지 않고 여기에 있다면 진실로 이 亭子(정자)의 크게 가행함이다. 門中(문중)에서 不肖(불초)에게 記(기)를 쓰라 命(명)함으로 외람됨을 잊고 삼가 기술하노라.
昭陽大荒落仲春日
十世孫 畿埰 謹記 ( 아래와 같이 계보 파악 및 참고자료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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