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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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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문]鶴巖齋上樑文 記述(기술)하노니 霜露(상로) 時(시)로써 變遷(변천)하니 마음에 春秋(춘추)의 興感(흥감)이 있다. 豺獺(시달)도 오히려 報本(보본)할 줄 알거늘 사람으로 孟冬祭(맹동제)가 없으리오. 先祖(선조)는 德(덕)을 遠追(원추)에 돌려보내는데 先墓(선묘)에 어찌 儉約(검약)하리오, 그윽히 생각건대 鄭氏(정씨)는 麟山古族(인산고족)이오, 錦城華門(금성화문)이다. 雪齋公(설재공)의 文章偉勳(문장위훈)은 일찍 海東夫子(해동부자)란 令譽(영예)가 있고 大護軍(대호군)의 達官崇秩(달관숭질)은 진실로 派中(파중) 各宗(각종)의 別祖(별조)가 된다. 이에 肖孫遙冑(초손요주)에 미치고 능히 乃祖(내조)의 嘉謨(가모)를 이은다. 淸望(청망)은 이미 春曹(춘조)에 나타나니 冰孽志操(빙얼지조)은 治積(치적)은 한 곳에 살지 아니하니 箕城(기성)은 卽(즉) 唐詩人(당시인) 牟州(모주)의 땅이요. 靈輀(영이)는 故里(고리)에 돌아오지 못하니 鶴洞(학동)은 이 吳公子(오공자) 嬴博(영박)의 原(원)이다. 말하노니 精英(정영) 陟降(척강)이 여기에 있음을 생각하고 어찌 歲時(세시)에 齊沐(제목)의 居所(거소)가 없으리오. 이에 先山(선산)곁에 집을 지으니 辛坐乙向(신좌을향)이오. 이에 地官(지관)이 協吉(협길)하니 甲坐庚向(갑자경향)이다. 木石瓦甎(목석와전)이 趍令(추령)치 않음이 없으니 황홀함이 神運(신운)과 鬼輸(귀수)같고 規矩縄尺(규구승척)이 各自售能(각자수능)하니 修然(수연)히 翬飛鳥革(휘비조혁)이다.
山川(산천)은 모두 精采(정채)가 있고 草木(초목)은 빛을 입지 않은 것이 없구나. 周閣重門(주각중문)은 마땅히 原氏(원씨)의 踰制(유제)를 경계할 것이오, 開道署表(개도서표)은 길이 京兆(경조)의 吉阡(길천)을 傳(전)하리라. 騷人(소인) 眺望(조망)한 사이가 아니니 어찌 陰暉(음휘) 千萬狀(천만장)을 論(논)하며 이 衆孫(중손) 崇奉(숭봉)의 곳이니 진실로 散致(산치) 七三日(칠삼일)이 마땅하다. 祖己(조기)의 訓辭(훈사)를 우러러 典祀(전사) 昵(일)에 豐(풍)함이 없고 張老(장노)의 善頌(선송)을 본받아 宗族(종족)이 가히 이곳에 모이네. 저 郖斥(두척)에 머물러 이 巴唱(파창)을 들어보새 들보를 東(동)으로 던지니 屹燃大鳳碧磨空(흘연대봉벽마공)이라
孫峯(손봉)은 南下(남하)하여 飛鶴(비학)이 되니 문득
人生(인생)이 祖宗(조종)이 있는 것 같네. 들보를 西(서)로 던지니 風雨(풍우)가 冥冥(명명)하여 海戌(해술)가 희미하네. 어찌 道川(도천)을 얼어 한줄기를 기우려 腥穢(성예)를 滌除(척제)하고 群黎(군려)가 즐겨하네. 들보를 南(남)으로 던지니 蓮垈峯(연대봉)을 머리에 暮嵐(모람)이 잠겼구나. 멀리 天涯(천애)를 바라고 因(인)하여 痛哭(통곡)하니 누를 위해 壽(수)하고 多男(다남)키를 請祝(청축)하리 들보를 北(북)으로 던지니 구름 끝 五秀(오수) 天極(천극)에 參(참)하네. 巖巖(암암)한 氣象(기상)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니 令公 (영공)의 높은 位德(위덕) 우러러 상상하네. 들보를 위로 던지니 제비가 新成(신성)을 嘉禮(가례)하여 쌍쌍이 날으네. 微物(미물)도 오히려 옛 둥지 찾을 줄을 아는데 사람이 報本(보본)함에 다시 어찌 잊으리오. 들보를 아래로 던지니 墓域(묘역)이 鬱鬱(울울)하여 松檟(송가)가 그늘지네. 樵童牧竪(초동목수)는 서로가 조심하여 斬摧(참최)하지 말지어다. 잘 기른 다른 때에 大廈(대하)를 고이리라. 업드려 願(원)하건데 上樑(상량)한 후에 基業(기업)이 鞏固(공고)하고 門祚(문조)가 熾昌(치창)하여 기린에 趾(지)가 있고 鳳(봉)에 毛(모)있어 萬年(만년)을 같이하여 길이 福(복)을 주리라. 술이 이미 맛있고 매밥이 이미 정결하니 一年(일년)의 한번 祭祀(제사) 더욱 정성 드릴 것이며 기리 孝忠(효충)하여 당기어 바꾸지 말지어다. 彊圍大淵獻淸明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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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와 같이 계보 파악 및 참고자료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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