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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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鶴巖齋記 所在地:全羅南道 咸平郡 羅山面 松岩里 飛鶴洞 [역문]箕城(기성 現咸平) 東(동)쪽 大鳳山(대봉산) 南麓(남록)에 飛鶴洞(비학동)이 있으니 그 負辛(부신)의 原(원)은 卽(즉) 我十七世祖(17세조) 禮曹判書公(예조판서공) 및 그 아들 縣監公(현감공) 兩世(양세)의 墓所(묘소)다. 옛날에는 羅州 元井坊(나주 원정방)에 있었는데 宅兆(댁조)가 不利(불리)함으로 이곳으로 移葬(이장)하여 이미 여러해가 지났으되 아직 齋閣(재각)이 없으니 後孫(후손)된 者(자) 어찌 先靈(선령)에게 儉薄(검박)하니 한 罪(죄)를 免(면)하리오, 이에 서로 더불어 論議(논의)하여 얼마안된 財物(재물)을 거두어 모아 四架屋(사가옥) 三間(삼간)을 經營(경영)하니 그 東西(동서)를 나오게 하여 致齊(치제)의 장소로 삼고 가운데는
廳事(청사)로 ①庋閣(기각)의 供給(공급)을 가추고 또 廊舍(낭사)를
세워 齋直(재직)이를 살게하니 그 規模(규모)가 사치하지도 않고 검소하지도 않으니 丙戌年(병술년) 봄에 시작하여 數月(수월)이 지나 竣工(준공)되니 이에 물은 맑고 山(산)은 높아 물고기와 새들이 서식하고 논밭에는 풍년들어 祝賀(축하)하니 이 어찌 孱弱(잔약)한 後孫(후손)들의 힘이 미친바리오. 實(실)은 先祖(선조)의 靈(령)이 黙黙(묵묵)히 도와줌에 힘입은 것이다. 落成式(낙성식)을 擧行(거행)한 날에 一門(일문)이 齊會(제회)하니 여러 長老(장노)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役事(역사)가 일은 크고 힘은 미약하였는데 다행히 竣工(준공)이 되니 처음에는 진실로 後孫(후손)인 昺佑(병우) 外(외) 二三人(이삼인)의 특별한 수고에 의한 것이다. 다만 記錄(기록)이 없으면 누가 한 일인지 모른다 하고 이에 昺夏(병하)에게
命(명)한지라 昺夏(병하) 진실로 不文(불문)으로 사양하였으나
얻지 못하고 이에 淺見(천견)을 略述(약술)하기를 追遠報本(추원보본)은 사람의 大節(대절)이다. 그러나 한갓 灌香(관향)인 것이 禮(예)인줄만 알고 살아계신 듯한 정성을 이루지 아니하면 어찌 가히 죽은 이를 섬기는 道(도)라 하리오. 또 여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반드시 길이 一本(일본)의 뜻을 알아 宗族(종족)에게 능히 敦睦(돈목)을 더하여 성근 者(자)를 親(친)히 하고 먼 者(자)를 가까이하여 祖宗(조종)께서 均視(균시)한 情(정)을 順從(순종)할것이오.
만약 塚宅(총택)이 崩圮(붕비)되면 封築(봉축)할 것이오 齋閣(재각)이 무너지면 修葺(수즙)할 것이오 碑文(비문)이 磨滅(마멸)되면 改新(개신)할 것이오 墓域(묘역) 나무에 있어서도 伐木(벌목)을 하면 禁戒(금계)하여 世世(세세)로 폐함이 없다면 우리 先祖(선조) 陟降(척강)의 靈(령)께 ③享右(향우)할 것이오 또한 줄겨 後孫(후손)이 있다할 것이다.
무릇 우리 後承(후승)은 가히 삼가지 않으리오 謹書(근서)하여 다만 長老(장노)의 命令(명령)에 奉答(봉답)할 뿐입니다. 因(인)하여 詩(시)로 이르노라. 鳳山(봉산)의 南脈(남맥) 氣靈(기령)이 참다우니 落成式(낙성식)을 擧行(거행)함에 마침 좋은 날이네 先祖(선조)께서 繼承(계승)하여 子孫(자손)들에게 끼치니 勳業(훈업)이 오래 되었으며 적은 정성 때로 올리니 苾芬(필분)이 새롭구나. 滿岡(만강)한 松栢(송백)은 風霜(풍상)에 늙었고 百世(백세)의 芝蘭(지란) 兩露 (양로)가 고르구나. ④肯構(긍구)하여 千秋(천추)에 傳(전)하여 폐하지 말라. 삼가 後承人(후승인)에게
告戒(고계)하노라.
<註> ①庋閣(기각):찬장 물건을 貯藏(저장)해 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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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孫 昺夏 謹書 아래와 같이 계보 파악 및 참고자료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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