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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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鰲山祠 慕賢堂記 [역문]堂(당)은 講古(강고)한데다 講(강)에 二義(이의)가 있으니 君子(군자)가 講習(강습)하는 講(강)이요, 宗族(종족)이 敦睦(돈목)을 講(강)한 것이다. 鰲山祠(오산사)를 세우기 前(전)부터 鄭氏(정씨)가 진실로 이미 講習(강습)했으며 講睦(강목)했다. 그렇지 않다면 祠宇(사우)가 어찌 創建(창건)되었으며 堂(당)이 또한 이루어 졌으리오. 講(강)의 뜻이 크도다. 鄭氏(정씨)는 羅州(나주)의 巨族(거족)으로 그 先世(선세)에 文靖公(문정공) 雪齋先生(설재선생)이 있어 道學(도학)으로서 高麗朝(고려조)에 비롯되어 李朝(이조)에 들어와 棄齋公(기재공)이 있어 忠義(충의)로서 울렸으니 後孫(후손)들의 그 業(업)을 世守(세수)하고 서로 講(강)함이 마땅하다. 棄齋(기재)의 뒤에 愛竹(애죽)과 愛松(애송)과 高亭(고정)과 松溪(송계)와 月菴(월암) 諸公(제공)이 있으니 壬辰亂(임진란)때 重峯(중봉)과 霽峯(제봉)과 忠武公(충무공)을 조차 王室(왕실)에 忠誠(충성)하였으니 邑報(읍보)와 道狀(도장)이 서로 이어 禮曹(예조)에 이르고 上(상)으로부터 贈秩(증질)의 恩典(은전)이 있었으니 이에 八道(팔도)의 선비들이 소리를 가지런히 하여 祠宇(사우) 짓기를 請(청)하여 임금의 允許(윤허)가 내리니 그 卽時(즉시) 俎豆(조두)의 儀式(의식)을 行(행)함이 마땅할 것이로되 다만 後孫(후손)이 零潛(영잠)하여 여기에 겨를이 없어 五忠(오충)의 行蹟(행적)이 泯沒(민몰)하여 들림이 없으니 어찌 漑然(개연)치 않으리오 多幸(다행)이 公議(공의)가 이루어져 뒤에 祠宇(사우)가 建立(건립)되고 講堂(강당)이 竝起(병기)하니 이는 가히 百世(백세)를 傳(전)하여 ①回泰(회태)한 消息(소식)이라 일을 것이로다. 내가 듣건데 遇植(우식)과 榮兌(영태)가 그 堂(당)이 본래 있는 것을 主管(주관)하였음을 알뿐이다. 아무거나 한 가지 轉語(전어)가 있으니 鄭氏(정씨)의 이 일을 한 者(자) 雪齋(설재)와 棄齋(기재)의 天地(천지)에 軒軒(헌헌)하고 日月(일월)과 빛을 다투는 것으로서 祠宇(사우)의 棟樑(동량)을 삼고 五忠(오충)의 人紀(인기)를 심고 世敎(세교)를 붙든 것으로서 講堂(강당)의 서끌을 삼은 즉 어찌 다만 鄭氏(정씨)一家(일가)에만 보탬이 있으리오 鰲山(오산)이 永遠(영원)토록 허무러지지 않고 거의 講誦(강송)하는 風習(풍습)이 날로 四方(사방)에 들리리라. <註> ⓘ回泰(회태):태평한 운수가 돌아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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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와 같이 계보 파악 및 참고자료 붙임
主壁 : 文靖公雪齋鄭可臣先生 / 端宗節臣 棄齋公鄭薰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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