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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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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省大衍功積碑 公(공)은 天稟(천품)이 英邁(영매)하고 才德兼備(재덕겸비)한 稀代(희대)의 經世家(경세가)로서 三十餘年(삼십여년)의 地方行政長在職中(지방행정장재직중) 民利民福(민리민복)을 至上施政指針(지상시정지침)으로 하여 農士(농사)의 殆半(태반)이 日人(일인)에게 强占(강점)된 가운데도 農地(농지)없는 農民(농민)에게 自作農(자작농) 擴大(확대)에 依(의)한 耕作有田(경작유전)의 實(실)을 거두고 太平洋戰爭末期(태평양전쟁말기) 日帝(일제)의 農民食糧(농민식량) 强徵手段(강징수단)인 所謂供出(소위공출)의 行政命令(행정명령)에 職責上(직책상) 遵守(준수)해야 할 身分(신분)임에도 不拘(불구)하고 갖은 方法(방법)으로 抵抗(저항)과 妨害(방해)를 繼續(계속)했으며 때로는 勤務時間中(근무시간중) 銘酊脫線(명정탈선)한 日人上級官吏(일인상급관리)를 毆打追放(구타추방)한 透徹(투철)한 民族正氣(민족정기)는 나라 잃은 百姓(백성)들의 등불이었으며 每年(매년)의 精誠(정성)어린 高齡者慰勞宴(고령자위로연)은 面民(면민) 德化(덕화)와 道義行政(도의행정)의 龜鑑(귀감)이었다. 歲壬午嘉善大夫 前香山守波澄 尹寗求 謹撰(세임오가선대부 전향산수파징 윤녕구 근찬)) 一九七七年二月無等山麓 文學博士 林敬淳 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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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功積碑 내용에서 號와諱字만 표기되어 있어 系譜를 찾는데 꽤 어려웠지만 "筆者"가 만들어 놓은 인터넷자손록으로 行列字로 2卷-6卷을 다 뒤져 찾게 되었다. 이렇게 훌륭한 先世記錄을 어느 집안의 공적비인지도 모르고 후손들은 살아가고 있어 너무나 안타까워 筆者 혼자만이라도 怡悅을 느낄뿐이다. 逸軒公15世孫 昺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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