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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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習靜齋鄭先生紀蹟碑 羅州錦城山下金鞍洞永安村(나주금성산하금안동영안촌)은 羅州鄭氏(나주정씨) 世居地(세거지)로 名人碩士(명인석사)가 不絶(부절)하였으니 近古習靜齋先生(근고습정재선생)이 또한 그 一人(일인)이다. 先生(선생)의 諱(휘)는 國豐(국풍)이요 字(자)는
乃綏(내수)이며 習靜齋(습정재)는
號(호)이다. 高麗軍器監判事(고려군기감판사) 諱(휘)는 諧(해)를 始祖(시조)로 하고 三世(삼세)를 傳(전)하여 文靖公雪齋先生(문정공설재선생) 諱(휘) 可臣(가신)은 道學文章(도학문장)이 著世(저세)하여 벼슬이 僉議中贊壁上三韓三重大匡金紫光祿大夫(첨의중찬벽상삼한삼중대광금자광록대부)에 이르고 朝鮮朝(조선조)에 諱(휘) 軾(식)은 兵曹判書諡號景武公(병조판서시호경무공)이요, 數世(수세)를 傳(전)하여 諱(휘) 詳은 號滄洲官刑曹正郞(호창주관형조정랑)이니 先生(선생)의 八世祖(팔세조)가 된다. 曾祖(증조)의 諱(휘)는 彦甲(언갑)이니 通德郞(통덕랑)이요, 祖(조)의 諱(휘)는 訔(은)이니 嘉善大夫中樞府事(가선대부중추부사)요, 考(고)의 諱(휘)는 達喆(달철)이니 號(호)는 愼獨菴(신독암)이며 孝行(효행)으로 鄕道薦(향도천)이 있고 二妣(이비)는 利川徐氏(이천서씨) 宗親(종친)의 女(여)와 咸平李氏(함평이씨) 儒成(유성)의 女(여)다.
先生(선생)이 純祖壬戌十一月一日(순조임술11월1일) 永安村(영안촌)에서 誕生(탄생)하시니 徐氏(서씨)의 出(출)이다. 어려서부터 天資高邁(천자고매)하고 庭訓(정훈)을 받들어 承順無違(승순무위)하고 晝耕夜讀(주경야독)으로 經史(경사)를 博通(박통)하여 科業(과업)을 不事(불사)하였으나 當時(당시)의 科儒(과유)들이 모두 推詡(추후)하였다.
威儀(위의)가 嚴重(엄중)하면서 言辭(언사)가 溫和(온화)하고 中歲(중세)에 精舍(정사)를 構築(구축)하여 性理學(성리학)을 專攻(전공)하며 聖賢(성현)으로써 規矩(규구)를 삼고 富貴(부귀)와 榮華(영화)에는 淡淡(담담)하였다. 事親(사친)에 더욱 誠敬(성경)을 다하고 居喪三年(거상삼년)에 酒肉(주육)을 不近(불근)하여 血淚(혈루)가 不絶(부절)하니 鄕里(향리)가 矜式(긍식)하였다. 先生(선생)의 在世時(재세시)는 道(도)가 先生(선생)의 身上(신상)에 있고 先生歿後(선생몰후)에는 道(도)가 先生(선생)의 遺集中(유집중)에 있으니 그 德業(덕업)의 全體(전체)를 알고자하면 習靜齋記(습정재기)에 具備(구비)되었고 文章體制(문장체제)는 靈臺重修記(영대중수기)가
있으며 讀書錄述志等篇(독서록술지등편)에는 爲學(위학)의
始終(시종)이 明示(명시)되였고 門案修正序(문안수정서) 族譜序宗契諸序(족보서종계제서) 等(등)에는 敦睦(돈목)의 마음이 油然(유연)히 發生(발생)하고 特(특)히 永慕追感錄先君言行錄(영모추감록선군언행록) 및 遺訓龜鑑錄等(유훈귀감록 等(등)에 公(공)의 純孝(순효)를 알수있으며 또한 習靜齋原韻(습정재원운)이 一心靜處易通神(일심정처이통신) 感應天機互屈伸(감응천기호굴신) 從古淸閒遺逸士(종고청한유일사) 至今名利別般人(지금명리별반인) 黃花晩節無閒友(황화만절무한우) 明月良宵不速賓(명월량소불속빈) 學海孤舟吾孰與(학해고주오숙여) 夕陽洙泗問前津(석양수사문전진)의
句節(구절)에 道學淵源(도학연원)의 純正(순정)함을 엿볼수 있다. 그 事蹟(사적)은 謙山李先生(겸산이선생)의 撰狀(찬장)과 難窩吳先生(난와오선생)의 遺稿序(유고서)와 郡誌道誌(군지도지) 等(등)에 詳載(상재)하였다. 乙亥十月(을해시월)에 享年七十六歲(향년76세)로 別世(별세)하니 鄕隣(향린)이 哀悼(애도)하였다. 墓(묘)는 永安村前白虎嶝巽坐原(영안촌전백호등손좌원)에 있다. 配(배)는 淑夫人陽川許氏暹(숙부인양천허씨섬)의 女(여)요. 繼配(계배)는 淑夫人昌寧曺氏佑振(창년조씨우진)의 女(여)다. 一男(일남) 一女(일여)가 있으니 男文浩(남문호)는 壽嘉善(수가선)이요. 女(여)는 文化柳氏漢淵(문화유씨한연)의 妻(처)다. 孫男(손남)은 童蒙敎官枉(동몽교관왕)과 參奉楠(참봉남)과 檢(검)이요, 曾孫祥會基會(증손상회기회)는 長房出(장방출)이요, 在會鳳會雲會(재회봉회운회)는 仲房出(중방출)이요,
明會(명회)는 季房出(계방출)이요, 以下(이하)는 蕃衍不錄(번연부록)한다. 아 先生(선생)의 圖學文章(도학문장)이 兼備(겸비)하여 一世(일세)가 追重(추중)하고 學者(학자)가 習靜齋先生(습정재선생)이라 稱(칭)하여 百世(백세)의 師表(사표)가 되었다. 이제 그 後孫(후손)이 碑(비)를 마련하여 事蹟(사적)을 不朽(불후)코자 門中(문중)의 翹楚遇焱(교초우염)이 나에게 刻(각)할 것을 問議(문의)하니 世誼所在(세의소재)에 固辭(고사)할 수 없어 狀(장)에 依(의)하여 위와같이 대강 敍述(서술)하여
百世慕仰(백세모앙)의 뜻을 부친다. 後學光山人
金永載 謹記 五世孫
士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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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復後四十四年戊辰三月 日 後孫一同 謹堅 아래와 같이 계보 파악 및 참고자료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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