述先裕后 :조상을 계승하고 자손을 잘되게 함.先世記錄들을 奉讀하십시요. image(gif) 만듬:문정공24세손 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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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실록단어해설
한자 어조사

예기(禮記)

 



대종회장25대-27대
창주공15세손
광훈(光勳)


만든 후손
발전연구위원 간사
25대∼
일헌공15세손
병선(昺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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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第四編 先世遺稿
行狀및 墓碣銘

 

 

 

南坡公事實
(남파공사실)

[역문]公(공)의 諱(휘)는 鳳徵(봉징)이오, 字(자)는 嗚瑞(오서)며 號(호)는 南坡(남파)니 雪齋(설재) 文靖公(문정공)의 十五世孫(15세손)이요 月峯公(월봉공)의 玄孫(현손)이다.

肅宗(숙종) 壬戌年(임술년 1682)에 綿城(면성) 月川里(월천리)에서 出生(출생)하니 纔齡(재령)에 夭資(요자)가 穎悟(영오)하고 成童(성동)하여 滄溪(창계) 林先生(임선생)에게 從學(종학)하여 크게 成就(성취)하여 景宗(경종) 辛丑年(신축년 1721)에 司馬試(사마시)에 合格(합격)하였고 일찍이 明齋(명재) 尹先生門(윤선생문)과 鄭霞谷(정하곡) 齊斗(제두) 尹敬菴(윤경암) 東洙(동수)들과 從遊(종유)하여 모두 獎許之(장허지)하고 道義之交(도의지교)를 맺었으며

父母(부모)를 섬김에 능히 孝道(효도)하여 병으로 모실 때 두번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흘러넣어 壽(수)를 延命(연명)하였고 상을 당하여 墓(묘)곁에 집을 짓고 밤낮으로 拜哭(배곡)하니 兩階(양계)가 成垁(성치)하니 鄕里(향리)가 稱嘆(칭탄)하였으며

同志(동지)들과 鄕飮禮(향음례)를 行(행)하여 儒俗(유속)을 興起(흥기)시켰고 英祖(영조) 戊申年(무신년 1728) 逆變(역변)에 大學掌議(대학장의)로서 齋儒(재유)가 換散(환산)함을 보고 泮中(반중)에서 倡義(창의)하여 날마다 聖廟(성묘)를 지켜 一死(일사)를 본받으니 이것이 職分內(직분내)의 일이다.

드디어 同道(동도)한 進士(진사) 柳(유용)과 趙德禧(조덕희) 등으로 同死(동사)할 것을 約束(약속)하니 以上賊之策(이상어적지책)으로 글을 安城郡守(안성군수) 閔濟章(민제장)에게 보내고 巡撫使(순무사) 改路(개로)하기를 堅請(견청)하여 마침내 賊魁(적괴)를 베이니 朝廷(조정)에서 除職(제직) 祿勳(녹훈)코자 하니 公(공)이 上言固辭(상언고사)하고 父爵(부작)에 옮겨주기를 請(청)하니

上(상)께서 가상히 여겨 僉樞(첨추)에 特陞(특승)시켰고 難靖(난정)에 隱居敎授(은거교수)하여 感恩操一闋(감은조일결)을 짓고 壇(단)을 쌓아 嵩(숭)이라 부르고 琴酒(금주)로 自娛(자오)하니 道伯(도백)이 上秦(상진)하여 孝陵寢郞(효능침랑)에 薦望(천망)되었으나 就任(취임)하지 않했으며 著述(저술)한 것은 聖學源流(성학원류) 禮學隊伏(예학대복) 等書(등서)로 世上(세상)에 行(행)하다.

士林(사림)이 告祭祝文(고제축문)에 이르기를 南坡鄭先生(남파정선생)은 孝道(효도)는 本性(본성)에 뿌리하였고 學問(학문)은 正脉(정맥)을 얻었으며 成均館(성균관)에서 절개를 붙드니 선비들에 빛이 있었네 하였다.

 

아래와 같이 계보 파악 및 참고자료 붙임

系  譜 : 6卷59    계보보기

4대파

指諭公諱億派

 

중조(中祖)

諱薰

 파계(派系)

海隱公諱以夏派

  21世

고조(高祖)

諱凰壽

증조(曾祖)

諱紀

조(祖)

諱時矯

고(考)

諱世周

  

19世 諱鳳徵

鳴瑞

 

南坡

 

 

肅宗8壬戌 1682

癸丑正月6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