述先裕后 :조상을 계승하고 자손을 잘되게 함.先世記錄들을 奉讀하십시요. image(gif) 만듬:문정공24세손 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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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실록단어해설
한자 어조사

예기(禮記)

 



대종회장25대-27대
창주공15세손
광훈(光勳)


만든 후손
발전연구위원 간사
25대∼
일헌공15세손
병선(昺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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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第四編 先世遺稿
行狀및 墓碣銘

 

 

 

贈兵曹參議行訓鍊副正鄭公實記
(증병조참의행훈련부정정공실기)

[역문]後孫(후손) 洙賢(수현)씨가 公(공)의 節行(절행)이 오래될수록 잊어버릴까 근심하여 千里(천리)길에 발병도 아랑곳 없이 내게 다시 撰正(찬정)해 줄것을 要求(요구)함으로 내가 感愴(감창)하여 壬辰古事(임진고사)를 손을 바쁘게 놀려 奉讀(봉독)하니 副正 鄭公(부정 정공)은 節義(절의)가 이미 咸平誌 湖南節義錄 三綱錄 等(함평지 호남절의록 삼강록 등)에 나타났고 이어 八道(팔도)에서祠宇(사우)를 세우고 儒狀(유장)이 듣고 보는 것과 같으니 다시 무엇을 감히 덧붙이리오 그만두지 않는다면 한마디 말이 있으니

아! 忠義(충의)의 性品(성품)이 人心(인심)의 乘彛(승이)에서 나오니 ①策名(책명) ②委質(위질)하여 人君(인군)을 섬긴 자 그 講究(강구)하여 익숙함이 마땅할 것이로되 묵묵히 壬辰倭亂(임진왜란)때 ③立慬(입근)의 선비를 세어본다면 능히 下邑(하읍)의 偏師(편사)로서 묵숨을 버리고 賊(적)을 토벌하여 中興(중흥)을 도운이 鄭公(정공) 같은 분이 몇사람이나 있으리오 만일 義理(의리)의 분수와 取捨(취사)의 極(극)이 아니면 텅 비어 있는 胷中(흉중)이 利害得失(이해득실)의 撓奪(소탈)한 바가 되지 않고 능히 그럴 수 있겠는가 가히 그 本心(본심)을 얻어 人臣(인신)된 자 부끄러움이 없다 할 것이다.

삼가 살펴보건데 公(공)의 諱(휘)는 (진)이요 字(자)는 子儀(자의)며 高亭(고정)은 그 號(호)다. 貫鄕(관향)이 羅州鄭氏(나주정씨)니 容儀(용의)가 秀邁(수매)하고 志氣(지기)가 倜儻(척당)하며 業文(업문)과 法筆(필법)이 항상 妙理(묘리)를 조치고 勇力(용력)이 絶倫(절륜)하여 항상 칼이 울어 夷吾(이오)의 뜻이 있었다. 매양 ④巡遠傳(순원전)을 읽고 반드시 어깨를 들먹이며 눈물을 씻었다.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孝道(효도)를 극진이 하여 左右(좌우)에서 봉양하고 얼굴을 부드럽게 하고 뜻을 받드니 父母(부모)께서 항상 즐거워 하였고 마을 老人(노인)들이 칭찬하되 鄭某(정모)는 가히 뜻을 봉양한 孝子(효자)라고 하였다.

弱冠(약관) 李先生(이선생)에게 ⑤贄謁(지알)하니 先生(선생)이 보시고 度略(도략)을 칭찬하였고 金健齋 千鎰(김건재 천일)과는 交誼(교의)가 甚密(심밀)하였다. 甲申年(갑신년)에 父親喪(부친상)을 당하여 侍墓(시묘)살이 하면서 禮(예)를 다하였다.

宣祖(선조) 戊子年(무자년 1588)에 武科(무과) 丙科(병과)에 合格(합격)하여 官(관)이 司宰監僉正(사재감첨정)에 이르렀다. 己丑年(기축년)에 黨論(당론)이 일어남을 보고 出仕(출사)하기를 즐겨하지 않았고 壬辰年(임진년) 島夷(도이)의 變(변)에 ⑥鑾與(난여)가 播遷(파천)함에 激憤(격분)하여 일어서 再從叔(재종숙) 主簿(주부) 鷹(응)과 鴻(홍) 兄弟(형제)와 같이 高齋峯 義幕(고재봉 의막)에 달려가 方略(방략)을 指晝(지주)하였고 금산의 敗戰(패전)에 本縣(본현)으로 돌아와 鄭主簿 忠良(정주부 충량)에게 글을 보내고 다시 散卒(산졸)을 모아 入城(입성)하여 굳게 지켰다.

癸巳年(계사년)에 晉陽(진양)의 危急(위급)한 소식을 듣고 出兵(출병)하여 權元師(권원사) 慄(율) 宣兵使(선병사) 居怡(거이) 諸公(제공)으로 더불어 雲峯(운봉)에 留屯(유둔)하여 晉州(진주)의 賊(적)을 攻陷(공함)하였고 정유년 再變(재변)에 母夫人(모부인)에게 泣訣(읍결)하고 二叔(이숙)과 같이 金億秋(김억추)를 쫓아 擧義(거의)하여 大同江(대동강)을 防守(방수)하였고 歸路(귀로)에 都元師 金命元(도원사 김명원)을 보니 金公(김공)이 大喜(대희)하여 右水使(우수사) 金億祺(김억기)에게 보내니

李公(이공)이 또한 大奇(대기)하여 公(공)으로 留鎭將(유진장)을 삼고 戰船(전선)을 맡겨 閑山(한산)을 지키며 外賊(외적)을 막고 統制使 李舜臣(통제사 이순신)과 만나 唐項浦(당황포) 安骨浦(안골포) 싸움에 捷功(첩공)이 많아 上(상)께서 嘉尙(가상)히 여기시고 訓練院副正(훈련원부정)에 陞進(승진)시켰으며 貞忠報國 四字(정충보국 4자)를 쓴 玉牌(옥패)를 命賜(명사)하였다. 珍島 碧波亭(진도 백파정)의 싸움에 이르러 또 大捷(대첩)하였으며 戊戌年(무술년) 露梁(노량)의 싸움에서 李舜臣(이순신)과 再從叔(재종숙)이 먼저 戰死(전사)한 것을 보고 痛憤(통분)함을 이기지 못해 다시 싸우다 탄환에 맞아 물에 떨어져 죽으니 그때가 十一月 十九日(11월 19일)이다.

享年(향년)이 四十八歲(48세)니 奴僕 忠男(노복 충남)이 招魂(초혼)하여 돌아가 石花山(석화산) 抱卵洞(포란동) 曾考墓下(증고묘하) 枕內原(침내원)에 葬(장)하였다.

配(배)는 淳昌 薛氏(순창 설씨)로 丁酉亂(정유난)에 家督(가독)을 이끌고 竹寺洞(죽사동)으로 避兵(피병)하다가 賊(적)을 만나 殉節(순절)하니 墓(묘)는 合窆(합폄)에다 噫(희)라 지아비는 忠(충)에 죽고 지어미는 烈(열)에 죽으니 一家(일가)의 忠烈(충렬)이 어찌그리 壯(장)한고

乙巳年(을사년)에 宣武原從勳二等(선무원종훈2등)에 錄(녹)하였으며 純祖(순조) 辛酉年(신유년) 兵曹參議(병조참의)에 褒贈(포증)되었으며 文靖公(문정공) 可臣(가신)과 監察公 薰(감찰공 훈)은 公(공)에게는 六世 以上(6세 이상)이 된다. 諱(휘) 士賢은 官(관)이 副護軍(부호군)이며 淑夫人(숙부인) 金海金氏(김해김씨)와 光山金氏(광산김씨)는 卽(즉) 公(공)의 考妣(고비)다. 아들괴 孫子(손자)들이 振振(진진)하나 以錄(이록)치 않는다. 本狀(본장)보다 十分의一, 二(십분의1,2) 程度(정도)를 덜쓰다 인하여 讚(찬)하노라.

公(공)의 就學(취학)은 一齋(일재)의 門下(문하)였네 健齋(건재)로 벗을 삼아 詳細(상세)히 講磨(강마)했네 壬辰(임진)의 해에 나라 형편 蒼黃(창황)했네 丙叔(병숙)을 陪從(배종)하여 兵糧(병량)을 募得(모득)했네. 忠武(충무)와 同謀(동모)하여 우리나라 붙들었네. 危忠孤節(위충고절)로 綱常(강상)을 扶植(부식)했네. ⑦勢腔囷膽(열강균담)은 日月(일월)과 빛을 다투었네 죽음 보기를 돌아간것 같이하니 大義(대의)에 질은바네 힘껏 싸워 大捷(대첩)하니 安骨浦(안골포)와 露梁(노량)이네 삶을 죽음으로 갚으니 魚(어)를버리고 熊(웅)을 取(취)하였네. 花山(화산)이 特立(특립)하니 公(공)과 더불어 齋名(재명)했네. 竹帛(죽잭)에 새기니 永世(영세)토록 光明(광명)하리라.

<註>

①策名(책명):이름을 臣籍(신적)에 올림 즉. 벼슬을 말함

②委質(위질):禮物(예물)을 임금알에 두는것. 禮物(예물)은 죽은 꿩을 썼다. 死物(사물)을 쓰는 것은 처음으로 벼슬을 한사람이 임금을 위하여 必死(필사)의 뜻을 부치는 것이다. ()() 즉 둔다는 뜻이고 ()()는 즉 禮物(예물)

③立慬(입근):절개를 위하여 生命(생명)을 버림. 또는 勇氣(용기)를 냄

④巡遠傳(순원전):()나라 張巡(장순)許遠(허원)()헌 즉 河南省(하남성) 商兵縣(상병현) ()睢陽(휴양)을 지켜 安錄山(안록산)抗拒(항거)하여 江淮(강회)의 울타리가 되었다

⑤贄謁(지알):禮物(예물)을 바치고 찾아봄

⑥鑾與(란여):임금이 타는 수레

⑦勢腔囷膽(열강균담):뜨거운 창자와 사린 담 즉, 義憤(의분)에 참지 못함을 말함

                                                        靑松 沈相學謹撰
                                                                                   청송 심상학근찬

아래와 같이 계보 파악 및 참고자료 붙임

系  譜 : 5卷 723    계보보기

4대파

指諭公諱億派

 

중조(中祖)

諱薰

 파계(派系)

逸齋公諱以殷派

  21世

고조(高祖)

諱李宗

증조(曾祖)

諱以殷

조(祖)

諱國柱

고(考)

諱士賢

  

16世 諱縉

子儀

 

古亭

 

 

明宗6辛亥 1551年3月3日

宣祖31戊戌 1598年11月19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