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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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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泉公行狀 [역문]府君(부군)의 諱(휘)는 希郁(희욱)이요 字(자)는 成之(성지)며 號(호)는 竹泉(죽천)으로 姓(성)은 鄭氏(정씨)며 本貫(본관)은 羅州(나주)니 高麗(고려) 高宗朝(고종조)때 翰林學士(한림학사) 世子師(세자사)로 諡號(시호)는 文靖(문정)이며 諱(휘)는 可臣(가신)인 雪齋先生(설재선생)이 이 府君(부군)의 八世祖(8세조)다. 李朝(이조)에 들어와 知成州事(지성주사)로 嘉靖大夫(가정대부) 兵曹參判(병조참판)이 贈職(증직)된 諱(휘) 有(유)는 府君(부군)의 五世祖(5세조)다. 考(고)의 諱(휘)는 淳受(순수)니 官(관)은 訓練奉事(훈련봉사)은 妣(비)는 淑人(숙인)으로 慶州(경주) 金弘亨(김홍형)의 딸이니 閨範(규범)이 심히 嚴肅(엄숙)하여 宗族(종족)이 感稱(감칭)하였다. 乙丑年(을축년) 二月(이월) 十七日(십칠일)에 府君(부군)이 京第(경제)에서 出生(출생)하니 奉仕公(봉사공)이 사랑하여 가르치니 文章(문장)이 夙就(숙취)하여 長水察訪(장수찰방)을 歷任(역임)하니 治蹟(치적)으로 通訓大夫(통훈대부)에 陞進(승진)되었고 資性(자성)이 孝友(효우)하여 사람들과 酬酌(수작)함에 味氣(미기)가 鑑和(감화)하였으며 晩年(만년)에 山水(산수)의 樂(락)을 取(취)하여 嘉林(가림)에 물러나 쉬면서 琴書(금서)를 自娯(자오)하여 餘年(여년)을 마치니 어찌 士君子(사군자)의 風毅(풍의)가 아니리오. 丁卯年(정묘년) 十二月(12월) 二十九日(29일)에 卒(졸)하니 林川(임천) 莊洞(장동) 負辛(부신)의 언덕에 葬(장)하였데. 配(배)는 淑人(숙인)으로 金海金希植(김해김희식)의 딸이니 몸가짐을 禮(예)로써 하며 시부모를 섬기되 孝直(효직)로써 하였으며 婢僕(비복)을 待接(대접)하되 恩惠(은혜)로써 하였다. 己巳年(기사년) 三月(삼월) 二十三日(23일)에 卒(졸)하니 府君(부군)과 合窆(합폄)하였다. 七男(7남)을 낳으니 宗立(종립)과 興立(흥립)과 孝立(효립)과 再光(재광)과 仁立(인립)과 齡立(령립)과 愛立(애립)이며 孫子(손자)와 曾孫(증손) 玄孫(현손)은 다 記錄(기록)하지 않는다. 不省(불성) 後孫(후손) 等(등)이 감히 碑石(비석)을 세우고 傳說(전설)을 粗述(조술)하고 또 府君(부군) 遺稿(유고)를 살려 進慕(진모)한 정성을 이같이 부치노라 十三世孫 遇涉 記書 아래와 같이 계보 파악 및 참고자료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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