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정씨의 유래

| 나주 정씨의 유래
시조(始祖)와 본관(本貫)의 유래(由來)

우리 나주정씨(羅州鄭氏)는 고려(高麗) 십오대성가(十五大姓家)로 시조(始祖)는 정 해(鄭 諧) 字이니 고려(高麗) 중엽(中葉) 때 인물(人物)이다. 여러 차례의 병선(兵燹)으로 족보(族譜)와 문헌(文獻)이 소실(燒失)되어 상계(上系)를 상고(詳考)할 수가 없다. 우리 정씨(鄭氏)의 유전선첩(流傳先牒)에 인산(麟山)이란 두 글자(二字)가 있으나 어떠한 사유(事由)에서 인지 정확(正確)한 고증(考證)은 없다. 고려지리지(高麗地理誌)를 살펴 보면 옛날에 인산(蘇山)이 군(郡)과 현(縣)이 된 데가 없고 고려(高麗) 때에 인주(麟州)가 의주(義州)의 경계(境界)에 있었는데 이조세종(李朝世宗) 때 의주(義州)에 합(合)하여 인산진(麟山鎭)이 되었으니 생각건대 麟州의 고호(古號)가 인산(麟山)인 것 같다.

우리 중시조(中始祖)인 문정공(文靖公)께서 나주(羅州)의 주남(州南: 現洞江面 良池里) 시중동(侍中洞)에서 출생(出生)하여 동명(洞名)이 공(公)으로 연유(緣由)하여 나타났고 그 뒤에 주북(州北: 現老安面 金鞍里) 금안동(金鞍洞)에서 살아 동명(洞名)이 또한 공(公)으로부터 유래(由來)되었으며, 문정공(文靖公)께서 중국(中國)에 가 계실 때 읊으신 사향시(思鄕詩)가 있으니 이르기를 “海東南有錦城山하니 山下吾廬草數間”이라 하였으니 어찌 羅州가 아니겠는가? 또한 시구(詩句)를 보더라도 관향(貫鄕)이 나주(羅州)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정씨(鄭氏)가 나주(羅州)에 정착(定着) 세거(世居)한 지가 이미 오래 되었고 문정공(文靖公) 이상(以上)은 고증(考證)이 없어 상고(詳考)할 수가 없고 문정공(文靖公) 이하(以下)의 장록(狀錄)이나 장적(帳籍)과 사기(史記)에 모두 나주(羅州)로 기록(記錄)이 되어 있어 마땅히 본관(本貫)은 나주(羅州)이니 이후(以後)로는 혼동(混同)이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