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雙溪亭의 社會ㆍ經濟的 機能에 試巧 - 1


 硏究委員長 (主筆 編輯) 鄭君燮   

  - 鄕約契. 雇馬廳契. 大同契를 중심으로 -

 

目     次

一. 問題의 提起

二. 雙溪亭의 유래와 건립, 관리 주체

三. 雙溪亭의 사회. 문화적 기능

1. 문화적 기능

2. 사회적 기능-鄕約施行處로서의 雙溪亭

四. 雙溪亭의 경제적 기능

1. 雇馬廳契와 雙溪亭 - 「雇馬廳契」를 통해서 본 共同賦稅所로서의 雙溪亭

2. 大同契와 雙溪亭 - 「大同契」를 통해서 본 공동부세소로서의 雙溪亭

3. 雙溪享沓의 마련과 운영

五. 맺 는 말


一. 問題의 提起


  필자는 1965年 겨울에서 이듬해 봄철에 걸쳐 호남지방 농촌에 집중적으로 존립하는 芧亭을 조사하여 그 발전 형태와 사회 경제적 기능의 변천과정을 고찰한 바 있다. 거기에서 필자가 잠정적으로 얻은 결론은, 芧亭은 서민, 특히 농민들의  휴식공간이요, 集會의 장소이며, 농사일을 상의하고 농업노동(품앗이)을 편성하는 장소로서 농사철 서민들의 생활이 집약되는 공간, 즉 농촌 공동체의 空間的 심볼로서 前近代 社會에 있어서는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실로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해 오다가 近代化와 더불어 사회적 기능이 分化되고 다기화됨에 따라 정치ㆍ행정의 기능은 거의 사라지고 근자에는 농사일의 상의와 편성 및 감농이라는 경제적 기능과 농민들의 遊休場所로서의 기능이 부각되기에 이르면서 그 位置도 점차 농장 가까이로 옮아가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우리 鄕村에는 그와 비슷하면서도 그 소유 및 관리형태, 이용계층, 건물의 크기와 위치 등, 여러면에서 그 성격을 달리하는 亭子, 즉 樓亭(혹은 亭樓)이 존재하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그러나 지난번 연구에서는 누정에 대한 조사연구는 후일을 기대하면서 할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 다행히 湖南文化硏究所가 羅州地方, 특히 金安洞의 雙溪亭을 중심으로 누정에 관한 종합적인 학술연구를 실시하게 되어 거기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 모정연구 이후 22年만에 뜻이 이루어진 셈이다.

  누정은 뒤에 구체적으로 살펴보게 되는 바와 같이 원래 우리나라 傳統社會에 있어 교양인들의 지정생활 근거지로서 대게 배산임수하여 경관이 좋은 승지에 자리잡고 있거나, 마을 가까이 위치하는 경유에도 촌중이나 촌전보다는 오히려 마을의 뒤나 위, 즉 마을과 배산의 중간에 자리함으로써 모정이 마을에서 농장에로 출입하는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거소가 대조적이다. 바꿔말하면 교양인들이 소요와 음풍에 적합한 장소에 자리잡고 있는게 일반적이다. 전근대 사회에 있어서 교양인=상층지배계층으로 본다면, 누정은 바로 그러한 상층지배계층의 문화가 구체적으로 발현되었던 장소인 셈이다. 바꿔 말하면 누정은 그 누각이나 정자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인연으로 모인 교양인들이 모여서 시정을 교환하고 시국담이나 경륜을 술회하며, 향리의 자제들에 대한 교육을 수행하거나 또는 은둔하고 소요하며 학업을 닦기도 하였었고 때로는 향약을 시행하고 감농하는 곳으로 이용되기도 하였었다.

모정이 범촌락적인 서민, 특히 농민들의 생활중심이라고 한다면, 누정은 농촌의 상층지배층의 지적생할의 중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모정의 연구를 통해서 농촌의 서민문화, 특히 농경문화의 여러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면 누정의 연구를 통해서 상층문화의 제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길잡이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거니와 호남문화연구소는 이번 누정의 종합연구를 통해서 우리나라 촌락사회를 기층과 상층의 양 측면에서 투시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런데 한 마디로 누정이라 하지만 위치와 소유, 관리형태 및 기능에 따라 그 유형 또한 다양하다. 기능만을 들춰본다고 하더라고

「夫樓觀之作 非 爲觀美也 所以尊王人 接賓客 占時候 察農作 以萬與民同樂之意」

「부루관지작 비 위관미야 소이존왕인 정빈객 점시후 찰농작 이만여민동락지의」라는 여지승람의 기록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참으로 다원적이다. 우선 주요한 기능이라 생각되는 것을 열거해 보자.

첫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유흥상경」의 기능이다. 둘째로 들 수 있는 기능은 시단을 이루는 것이며, 셋째로 강학소의 기능이고, 넷째로 제실, 다섯째 별서, 여섯째 향약시행처, 일곱째 양노.교화소. 여덟째 사장 혹은 망루, 아홉 번째 종친회, 동계 등의 합취의 장소, 열 번째 치수 등, 참으로 다원적이어서 하나의 누정이 이와 같은 기능을 모두 수행하기에는 벅찰 정도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번 쌍계정의 조사연구를 통하여 누정이 민고, 즉 공조의 공동부담소의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열 한번째 기능으로 추가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누정의 기능이 이렇게 다양하다고 해서 모든 누정이 이러한 기능을 일률적으로 수행했다고 불 수는 없다. 필자는 누정의 건립주체와 그 위치에 따라 당해 누정의 주기능이 달라지기 마련이며 또한 사회구조의 변천과 더불어 변모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흥상경과 시조의 기능만은 거의 모든 누정이 공통적으로 수행해 왔으며, 오늘날에도 거의 모든 누정이 그러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모정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그와는 달리 동계나 종친회 등의 합취의 장소 및 향약의 시행처로서의 기능은 일부의 누정에서만 보여지는데 그러한 기능을 주기능으로 하는 누정은 대체로 (1)촌중 또는 마을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며, (2) 건립의 주체가 개인이 아닌 공동조직, 예컨대 마을을 지배하는 거족대성들의 모임이거나 한 성씨의 문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감농이나 치수 및 공조의 공동부담소의 기능을 맡고 있는 누정은 극히 희소하다. 그만큼 누정의 경제적 기능은 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종래의 누정연구는 주로 넓게는 문화, 좁게는 문학의 산실, 즉 향촌의 교양인의 지적 활동의 산실로서의 누정에 초점이 맞춰지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조사연구의 표본누정인 나주군 금안동의 쌍계정이나 영암군 구림리의 회사정과 같은 누정은 첫째로 그 위치가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 있고, 둘째로 그 건립. 소유 및 관리가 한 개인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마을의 지배적인 성씨들에 의하여 공동으로 건립.유지.관리됨으로써 대동계의 합취의 장소로서의 기능이 강할 뿐 아니라, 특히 쌍계정은 고마청계의 합취소로서 공조의 공동부담의 역할도 아울러 수행하고 있으며 창계이래 많은 임야와 토지를 소유하여 마을사람들로 하여금 공동으로 이용.수익케 함으로써 농민들의 경제생활에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예를 토지에 국한 시켜 보더라도 뒤에 장을 바꾸어 자세히 고찰하겠지만 1987년 9월 현재, 이른바 쌍계정답은 9434평, 전 48평, 도합9915평에 이르러 11호의 농민들로 하여금 경작케 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거둬들이는 소작료만도 연간 42석이나 된다.

이렇게 볼 때 누정, 특히 쌍계정은 단순한 유흥산업의 장소에 그치지 않고 금안동공동체의 심볼로서 금안동 열두마을 사람들에게 사회.문화.경제 전반에 걸쳐 다원적인 기능을 수행해 왔음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본 연구는 사회.문화.경제적 제기능을 고찰하되, 특히 금안동의 향약계. 고마청계 및 대동계의 분석을 통해 경제적 기능을 중점적으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二. 쌍계정의 유래와 건립. 관리주체

그러면 다음에는 (1) 쌍계정은 언제, 누구에 의해서 건립되어 누구에 의해서 관리운영되고 있는 것이며(쌍계정의 건립.관리 주체) (2) 그것이 금안동이라 불리우는 촌락사회에서 하는 구실은 무엇이고(쌍계정의 기능) (3) 그것을 밑받침하고 있는 금안동사회의 기층적 구조라 할 수 있는 공동조직은 무엇이며, 그것들은 어떻게 변모되어 왔는가에 대하여 이하 절을 바꿔가며 살펴보기로 하자. 이점을 밝힘으로써 쌍계정이라는 건물이 단순히 유흥상경이나 음풍영월의 공간이 아닌 금안동공동체의 외적상징이라는 사실이 규명히 밝혀지리라 믿기 때문이다.

쌍계정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전라남도 나주군 노안면 금안2구 반송부락에 자리하고 있다. 건물의 모양은 단층의 맞배지붕, 골기와 건물로 정면 3간, 측면2간의 마루형이다. 1280년에 정가신에 의해서 창건되었다고 하는데, 그 뒤 1652년, 1744년, 1796년, 1938년에 중수되어 처음 모습은 많이 변형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6년전까지는 현존건물의 왼쪽에 제실(3간)이 있었다고 하나, 오늘날에는 없어지고 3간 15.32평의 마루로만 되어있다. 부지는 276평이며, 수령 400년을 헤아리는 팽나무가 여름이면 풍성한 녹음으로 정자와 그 주위를 덮어줌으로써 더위를 피하기에 알맞은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1973년 전남도에 의해서 지방유형문화재 제 34호로 지정되었다. 쌍계정은 다른 누정과는 달리 금안동 전체로 본다면 마을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쌍계정은 비록 나주의 주봉 금성산의 북쪽 대오리골재에서 연원하는 계천변에 전개된 논 가운데 비교적 인가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는 있지만 금안동 전체로 본다면 마을의 거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바궈말하면 건립당초에는 인구가 적어 비록 인가와는 떨어진 한적하고 아름다운 계곡가였는가는 몰라도 오늘날에는 인구의 증가→인가의 증설로 말미암아 자연 인가로 위요케 되었고 그리하여 마을사람들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어있다. 요컨대 쌍계정의 위치는 누정보다는 차라리 모정쪽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된다. 필자는 이와 같은 쌍계정의 입지(마을의 중앙, 인가와의 근접성)야말로 그 건립관리의 주체가 복수의 성씨 즉 동계라는 사실과 함께 쌍계정의 기능을 상경과 영시의 문학적인 면보다 향약의 시행, 대동계의 회취 및 고마조의 수합과 같은 사회, 경제적인 면에 기울게 하는 주요인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다음에는 쌍계정의 유래와 건립 및 관리주체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이에 관해서는 1973년 금안동에서 편찬해낸 쌍계정지 서두에 실려 있는 쌍계정답래 가 잘 전해주고 있다. 全文 그대로 채용해 보기로 하자.

위의 전래가 말해주고 있는 바와 같이 쌍계정은 고려 충렬왕(제위1275~1308)시에 문정공 정가신이 건립하여 문숙정 김주정 및 문현공 윤보와 더불어 이곳에서 상마강도하였기 때문에 세칭 삼현당이라 불리웠다고 전한다.

그러나 쌍계정이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조선조에 들어와서의 일이라 생각된다. 그 까닭은 첫째로 누정의 기원이 비록 삼국시대까지 소급할 수 있다고 하어라도 그것이 보편화된 것은 조선조에 들어와 사정이(士亭

)이 지방에 기반을 굳히면서부터라 생각되며, 둘째로 금안동이 호남의 명촌으로서 자리를 굳힌 것은 나주정씨, 하동정씨, 서흥김씨, 풍산홍씨 등, 이른바 금안동 4성이 정착. 등제하면서부터라 짐작되는데 금안동 4성중 나머지 삼성인 하동정씨, 서흥김씨 및 풍산홍씨를 대표하는 어은(漁隱) 정서(鄭鋤), 죽오당 (竹吾堂) 김건(金鍵), 반환공(盤桓公) 홍천경(洪千璟)등의 거유가 등제한 것은 각각 세조, 중종, 선조 년간이었고 그들이 바로 이 쌍계정에서 서로 이어 강도하고 매 해 양진추절에 시회를 열고 애경사에는 조하하고 환난을 당해서는 상구하면서 나주정씨와 더불어 사성이 결사하여 동중규약과 동중좌목을 성문화하여 대동계=금안동공동체를 재생산시켜 가는 기틀을 닦는 것이 조선 중기 이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쌍계정의 건물자체는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여러차례 중수를 거듭하였고 그것을 밑받침하는 금안동의 촌락구조에도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거니와 어느한 성씨가 크게 득세하여 4성간의 균형이 깨지는 시기에는 대동계는 2개로 갈라지면서 쌍계정의 소유와 관리 주체에 관해서도 시비가 일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1957년 4성이 합의하여 사단강당이라는 액초를 써부치면서부터는 적어도 그에 관한 논의는 일단락된 듯 표출되는 사단은 아직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이렇게 볼 때 쌍계정의 건립주체는 금안동 4성, 즉 나주정씨, 하동정씨, 서흥김씨 및 풍산홍씨로 대표되는 촌민들로 구성된 금안동의 동계=공동조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설령 시초의 건립자체는 설재공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유지. 관리. 운영됨에 있어서의 사실상의 주체는 4성으로 대표되는 온 마을 사람들의 대동계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여진다.

4성의 공동조직 내지 결사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유래가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금안동대동계라고 필자는 믿고 있다. 고지하는 바와 같이 대동계란 마을이라는 기존의 사회집단을 기반으로 마을사람들간의 상부상조와 마을의 순풍미속을 조성한느 공동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 각호가 비교적 간단한 입호의 절차를 밟아 거의 자동적으로 참여하는 원생적인 지연집단으로서 그것이 바로 촌락공동체의 외피임을 선학의 연구에 의해서 밝혀진 바와 같다. 따라서 그것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결성되는 계, 예컨대 혼례나 상례, 혹은 금융과 같은 특정목적을 위해서 뜻있는 사람들만이 임의로 참가하는 혼인계, 상포계, 혹은 금융계 등과 달리 반영속적인 것이다.

요컨대 쌍계정의 건립. 관리주체는 대동계라 불리우는 금안동 촌락공동체라는게 필자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