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世 子 ()(1565~1598)

 호 愛松軒. 시조의 15세손. 주부 鷹(응)의 아우. 충좌위 사정 元柱(원주)의 아들. 
1588년에 형 응과 함께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을 지냈고, 임진란이 일어나자 형 
응과 함게 금산전에 참전하였으며, 이어 우수사 이억기 휘하의 우익장이 되어 이순신과 
합세하여 당항포, 견내량 전투에서 적 수십명을 베었고, 안골포 전투에서는 적선 수십 
척을 격파하였다.
 
이 전공으로 형과 함께 주부에 올랐고, 1598년 노량해전에서 분전하던 중 적탄을 맞아 
전몰되시다. 

1778년부터 오산사(함평군 월야면 용월리 소재)에서 
오충으로 배향하였으며, 1801년 병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아내는 광산김씨로 죽사동 
3열부 중 한 사람이다.

三節婦碑文

吾邑羅州鄭氏家節婦有三夫寔五忠中人在宣祖丁酉亂諱鷹妻光山鄭氏挈家眷避兵竹寺洞遇賊抗

節不屈死奴忠甲負四歲兒繼匿林藪得全弟鴻妻光山金氏再從姪縉妻玉川薛氏死節與鄭婦亦同金奴

忠男薛奴義甲救主亦同從夫職並淑夫人鳴呼節婦皆忠臣妻易乎一猶難三皆出一室內易乎奴皆抵死

救主至於活主家血屬易乎皆可謂卓絶矣諸孫伐石遣遇龍遇植汝冕請余文勒三節別爲石刻三奴石置

側壯哉壯哉竹峽海前其百世歟

                                                                    上之三年己酉功仲春

                                                                                                     金勳撰

 

[역문]삼절부비문(三節婦碑文)

우리고을 나주정씨(羅州鄭氏) 가문(家門)에 절부(節婦) 삼인(三人)이 있으니 대저(大抵) 이분들이

오충중(五忠中)의 사람이다. 선조(宣祖) 정유난(丁酉亂)때 휘(諱) 응(鷹)의 처(妻) 광산정씨(光山

鄭氏)는 가권(家眷)을 이끌고 병란(兵亂)을 피(避)해 죽사동(竹寺洞)에 피(避)했는데 적(賊)을 만나

절(節)을 지켜 굴복(屈服)치 않고 죽으니 노(奴) 충갑(忠甲)이 사세아(四歲兒) 계(繼)를 업고 수풀

속에 숨어서 살아났으며 동생 홍(鴻)의 처(妻) 광산김씨(光山金氏)와 재종질(再從姪) 진(縉)의 처

(妻) 옥천설씨(玉川薛氏)가 절(節)을 지켜 죽으니 정부인(鄭婦人)과 똑 같다. 김씨(金氏)의 종 충남

(忠男)과 설씨(薛氏)의 종 의갑(義甲)이 주인(主人)을 구(救)함이 또한 같다. 부직(夫職)을 따라 모

두 숙부인(淑夫人)이다. 아 ! 절부(節婦)가 모두 충신(忠臣)의 처(妻)니 쉬우랴. 일인(一人)도 오히

려 어렵거늘 삼인(三人)이 모두 한 실내(室內)에서 나오니 쉬우랴 노(奴) 모두 죽음에 이르러 주인

(主人)을 구(救)하여 살려내니 주인(主人)집의 혈통(血統)을 이으니 쉬우랴 모두 탁절(卓絶)하다

할 것이다. 제손(諸孫)이 비(碑)를 세우고자 우룡(遇龍)과 여면(汝冕)을 보내어 내게 글을 청(請)

하여 삼절(三節)을 새기고 별도(別途)로 돌을 만들어 삼노(三奴)의 이름을 새겨 곁에 두니 장(壯)

하고 장(壯)하도다. 죽협(竹峽) 해동(海東)이 백세(百世)토록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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