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世 성회(星會)(1865~1909)

 

자(字)는 순경(舜卿) 호(號)는 면천(錦天) 고종(高宗) 을축년(乙丑年 1865) 7월20일생, 공(公)이 효행(孝行)이

지극하여(誠孝根天)하여 어버이를 편하게 해드리는 일이 어떻게 하는지를 알았고(能知社親) 자라서도 조석(朝夕)

으로 살피기를(晨昏不廢) 한결같이 하였다. 부모의 상을 당하여(遭難) 너무 슬퍼하여 몸을 상하고(哀毁逾制) 날마다

묘소에 나아가 성묘하고(日省墓階) 비록 겨울이나 무더운 여름에도(雖祈寒盛暑) 무릎을 꿇고 앉아 조금도 흐트러짐

이 없으니(少不懈) 동네사람들이 자손이 복록(福祿)을 누리리라(鄕里飮福)하였다.

순종(純宗) 을유년(乙酉年 1909) 정월*正月)17일에 졸하시니 묘소(墓所)는 영안촌(永安村) 뒤 비석등(碑石嶝)에

경좌(庚坐)로 있다. 배위(配位)는 나주오씨(羅州吳氏) 윤선(允善)의 딸로 부사(府使) 신교(愼交)의 후손(後孫)이다.

고종(高宗) 갑자년(甲子年 1864) 11월14일에 나시고 정사년(丁巳年) 정월(正月)24일에 졸(卒)하시니 묘소(墓所)는

월청동(月淸洞) 북당곡(北堂谷)에 묘좌(卯坐)로 있다.

1녀를 두셨다

  임오군란 [壬午軍亂]

조선 고종 19년(1882)인 임오년에 구식 군대의 군인들이 신식 군대인 별기군과의 차별 대우와 밀린 급료에 불만을 품고 군제 개혁에 반대하며 일으킨 난리. 이를 계기로 다시 정권을 잡은 대원군은 여러 가지 개혁을 단행하는 등, 사태 수습에 노력하였으나 결국 실패하여 청나라에 압송되었으며, 조정은 일본과 제물포 조약을 맺게 되었다. ≒도봉소 사건.

  동학농민운동 [東學農民運動]

조선 고종 31년(1894)에 전라도 고부의 동학 접주(接主) 전봉준 등을 지도자로 동학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 운동. 고부 군수 조병갑의 횡포와 착취에 대한 항거에서 발단하여 한때는 관군을 무찌르고 삼남 지방을 휩쓸었으나, 결국 중국 청나라와 일본의 개입으로 실패로 끝났다. 후에 항일 의병 투쟁과 3·1 운동으로 계승되었다. ≒갑오농민전쟁·동학 운동·동학 혁명

 

 

 되돌아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