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世 언복(彦復)(1678~1758)

 

자(字)는 내칠(來七) 호(號)는 치옹(癡翁) 숙종(肅宗) 무오년(戊午年:1678)에

나시고 癸卯年(1723)에 進士及第, 7歲에 이미 문리(文理)가 트여文章이 특출

하니 추종자가 많았고 여러 학자들이 선생이라 칭하다.太學에 뽑혀 명성(名聲)

이 자자했다.이 때 판서(判書) 심단(沈檀)이 욕심을 내어 권력을 잡으려 하면서

공을 자신의 파당에 천거하려 한다는 풍문을 듣고이를 싫어하여 辭職하고

落鄕하였다. 판서(判書) 홍명한(洪名漢)이 치옹집(癡翁集)을 찬(撰)하였다.

영조(英祖) 무인년(戊寅年:1758) 12월13일에 卒하시니 墓所는 三道面 熊谷

뒷산록에 甲坐로 있다. 配位는 경주정씨(慶州鄭氏) 태창(台昌)의 딸로 현감

(縣監) 보(寶)의 현손(玄孫)이며 기일(忌日)은 正月이다. 墓所는 夫君과 합폄

(合窆)되었고 묘갈(墓碣)이 있다.

1남을 두셨다

 

※진사(進士) : 조선 시대에, 과거의 예비 시험인 소과(小科)의 복시에 합격한

사람에게 준 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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