述先裕后 :조상을 계승하고 자손을 잘되게 함.先世記錄들을 奉讀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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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선(昺璿)

 

 

구룡폭포 넘어오니 만물상이 구름위로

금강산 기행시 . 다천시고                         Go Back

다천(茶泉) 정우익(鄭遇益)

 

금강산을 읊다(金剛山吟)

金剛秋色勝芳春  금강산의 가을빛은 향기로운 봄보다 나으니

千里來笻好結隣   천리 길을 지팡이 짚고 와서 이웃이 되니 좋구나.

泰岳攀登雲裡客  태악(泰岳)을 기어오르는 구름 속의 나그네요

龍潭步過鏡中人  용담(龍潭)을 걸어가는 거울 속의 사람이라.

石岩奇怪看無盡  바위들은 기괴하여 보아도 끝이 없고

楓栢丹靑詠故頻  단풍나무 잣나무 울긋불긋하여 자주 읊조리네.

諸君莫道吾遲發  여러분은 내가 늦게 출발했다 말하지 마소

自愛名山晩景新  명산의 저녁 경치 새로움을 사랑하기 때문이네.

 

영산포역에서 기차를 타다(榮山浦驛乘汽車)

有約相逢際暮煙  저녁 무렵에 서로 만날 약속을 했으니

榮山驛上錦江濱  영산포역 금강(錦江)의 물가이네

乘車燈火如明月  기차를 타니 등불은 달처럼 밝고

倚座客心如化仙  좌석에 앉으니 나그네 마음은 신선이 된 듯

暫時離別南山盡  잠시 이별하니 남산(南山)은 아득하고

竟夕臨行北斗縣  저녁에 길을 떠나니 북두성이 걸려있네

非走猶飛焉用馬  달리는 것 아니라 나는 것 같으니 어찌 말을 타랴

老年心事學靑年  노년의 심사는 청년의 마음을 배우네.

 

단발령(斷髮嶺)

山無斷髮怪名嶺  산에 단발이 없는데 이상한 이름의 고개

千里金剛一夕隣  천리 길 금강산을 하루저녁에 이웃 되네

元非讓位荊蠻客  원래 형만(荊蠻)에게 자리를 양보한 객(客)도 아니고

不是僞庸鍛冶人  거짓과 용렬함을 단련한 사람도 아니라네.

雲霧因風朝夕鎖  바람 불어 구름 안개 아침저녁으로 사그라들고

石岩磨玉古今新  바위는 옥을 갈아놓은 듯 고금에 새롭네.

車窓遙看車前路  차창으로 앞길을 멀리 바라보니

曉月燈花怳是春   새벽달 등불이 몽롱하게 봄인가 싶네.

 

단발령 길을 가다(斷髮嶺隨道)

隧道行行遠超塵  길 따라 가고 가서 멀리 속세를 벗어나니

怪猶神作又非人  괴이하구나, 신이 만든 듯 사람 솜씨 아니네.

電車煙吐雲歸宿  기차가 토한 연기구름 뒤로 사라지고

石壁溜流漏落頻  석벽의 흐르는 물 빈번하게 쏟아져 떨어지네.

虹造穴深難照月  무지개 서린 굴 깊어 달빛조차 비추기 어렵고

月燈明花滿怳春   달빛 등불 밝은 꽃에 황홀한 봄기운 가득하네.

或壞有疑心未定  혹시라도 무너질까 싶어 마음 불안한데

安過無事更心新  무사히 지나가니 다시 마음 새롭네.

 

내금강역(內金剛驛)

電車疾轉勝馳馬  기차의 질주는 달리는 말보다 빠르니

千里金剛一瞬前  천리 길 금강산 일순간에 도착 했네.

虹橋臨下無塵態  무지개다리 올라보니 세속의 모습은 없고

畵閣詠過半是仙  그림 누각에서 시 읊조리니 신선과 다름없네.

朝霧沈沈鳩笻濕   아침 안개 침침하여 지팡이가 젖고

曉雲淡淡客衫連  새벽 구름 담담하여 나그네 저고리에 이어지네.

一見願生高麗國  고려국에 태어나

幾許賓來老少年  얼마나 많은 사람들 한번 와 보길 바랬을까.

 

내금강산장(內金剛山莊)

天下擅名立海東  천하에 명성 떨치며 해동에 서있으니

景光百世振淸風  풍경은 백세 동안 맑은 바람 불어 오네.

暴流轉玉方方落  폭포에 구르는 옥구슬 방울방울 떨어지고

楓葉勝花處處紅  단풍잎은 꽃보다 곱게 곳곳에 붉네.

深峀煙霧飛石上  깊은 산의 구름 안개 바위 위로 피어 나고

藏春松栢秀雲中  봄기운 지닌 소나무 잣나무 구름 속에 우뚝하네.

俗客如臨遊此久  속세의 나그네 와서 오래 동안 유람하니

塵心消遣化仙翁  속세의 마음 사라져 신선이 되네.

 

금강각(金剛閣)

金剛一閣幾年經  금강각은 몇 해나 되었는가

畵裏棟梁丹又靑  그림 속 같은 대들보는 울긋불긋 선명하네.

檻靜冷冷流水響  난간은 조용한데 차갑게 흐르는 물소리 울려 퍼지고

簷高處處萬山形   높은 처마 곳곳마다 산들의 모습 닮아 있네.

日月朗明眞別界  해와 달 밝으니 참으로 별천지이고

雲煙淡泊是仙處  구름 안개 맑으니 신선 세계라네

翼然飛狀元無比  날개를 펴고 나는 형상 비할 바 없으니

遠客下車短杖停  멀리서 온 나그네 차에서 내려 지팡이 멈추네.

 

금강여관(金剛旅舘)

始到金剛不遠仙  처음 금강산 도착하니 신선 세계 멀지 않고

心如不老半靑年  마음은 늙지 않아 청년이라도 된 듯하네.

高樓怳似天外立   높은 누대 아득히 하늘 너머에 서있는 듯하고

靈境是非世間連  신령한 세계의 시비(是非)는 인간세상과 이어졌네.

珠箔銀屛淸澗上  맑은 개울가 주렴과 은병풍 펴고

山肴海酒白雲邊  흰구름가 산에서 나는 안주 바다에서 나는 술 마시네

美人一笑能歌舞  미인이 미소 띠며 노래하고 춤추니

千里來貧樂浩然  천리 밖에서 온 나그네 매우 즐겁네.

 

나루에서 선교를 묻다(渡問仙橋)

只見仙橋不見仙  선교만 보이고 신선은 보이지 않으니

呼童先問在何邊  동자 불러 어디 있는가를 물어보네.

乘雲明月應無地  구름을 탄 밝은 달은 응당 두루 비추고

駕鶴淸風徜自天   학을 탄 맑은 바람은 하늘에서 불어오네.

欄外琪花含露立  난간 너머 고운 꽃이슬을 머금고

樑前瑤草帶霞連  대들보 앞 진기한 풀 저녁놀을 두르고 있네.

浮生到此朗襟闊  속세의 나그네 이곳에 오니 맑은 가슴이 트이고

聽水聞禽勝管絃  물소리 새소리가 악기연주보다 낫다네.

 

장안사를 유람하다(遊長安寺)

山上長安異漢城  산 위의 장안사는 서울과는 달라

塵心一掃覺身輕  속세의 마음 사라지니 몸은 가볍네.

晩秋佳景楓如錦  늦가을 좋은 경치 단풍은 비단을 펼친 듯

白日震雷鍾起聲  대낮의 종소리 천둥이 울리는듯하네.

寺門迢俗沈雲影   속세 너머 절문에는 구름그림자에 잠겨있고

佛口塗金不世情  도금한 부처의 입은 속세의 모습 아니네.

談水評山同度理  산수를 평하며 함께 이치를 헤아리니

老僧遠客意平平  노승과 나그네 마음이 편안하네.

 

음선약수(飮仙藥水)

飮仙藥水俗人飮  음선약수를 속인이 마시니

千里來賓半白頭  천리 길 나그네는 반백의 신세라네

淨潔無雙盈玉溢  비할 바 없이 정결하여 옥빛이 넘실대고

澄淸第一洗塵流  더없이 맑아 티끌 먼지 씻어내네

湧源光映明如月  솟아나는 샘물 빛을 발하니 달빛처럼 밝고

美味香深爽覺秋  좋은 맛에 향기도 깊어 가을처럼 상쾌하네.

灑落心神身不老  정신이 맑게 씻기니 몸은 늙지 않을 것 같아

偸閑爲學少年遊  한가함을 틈타 소년의 유람을 배우네.

 

장안사 입구의 가로수(長安寺入口並木)

叢林自愛久停笻   우거진 숲 사랑스러워 오래도록 지팡이 멈추니

入口無唇以此封  입구에는 울타리도 없어 숲이 둘러있네

貞高似竹溶溶月  대나무처럼 곧고 높게 달이 떠오르고

屈曲如龍鬱鬱松  용처럼 구불구불 소나무 울창하네.

密葉雲連藏古寺  우거진 잎들은 구름과 이어져 옛 절을 감추고

長條風動露寒鍾  나뭇가지에 바람 불어와 차가운 종이 드러나네.

特靑兩木宗諸木  푸른 두 나무 나무의 으뜸이니

不變春秋秋又冬  세월에도 변치 않아 가을 보내고 겨울을 맞네.

 

봉래산에서 약수를 마시다(臨蓬萊飮藥水)

直訪蓬萊步步回  곧장 봉래산을 찾아 걸음걸음 돌아가는데

峰巒秀麗一山開  봉우리들 수려하게 한 산이 열리네.

採藥徐市應此過  불로초 캐러온 서불(徐巿) 이곳을 지났고

覓眞南石自何來  진기 찾아 남석(南石)은 어디에서 왔는가.

白水漸者終歸海  깨끗한 물은 점차 바다로 흘러가리니

淸泉長飮不量盃  맑은 샘물 오래 마셔 몇 잔이나 마셨는지

灑落心神能自醫  심신이 깨끗이 씻기니 절로 병이 낫고

香茵猶潔綠生笞  향기로운 자리 깨끗한데 초록이끼 돋았네.

 

거듭 잔교를 건너다(重渡棧橋)

爲客設橋今幾年  나그네를 위해 다리 놓은 것 몇 해나 되었나.

金剛處處澗流邊  금강산 곳곳의 개울가에 잔교가 있네.

左右有樑奇石掛  좌우의 다리 기암을 걸려있고

東西無柱碧空連  동서로 기둥도 없이 푸른 하늘 이어졌네.

吟行下見南山盡  읊조리며 내려다보니 남산은 아득하고

醉步平臨北斗懸  취한 걸음 평지에 내려오니 북두성이 걸려있네

不通以渡再車乘  건널 수 없는 곳은 다시 차를 타는데

斜日何館關暮煙  석양에 어느 관에선가 저녁연기 일어나네.

 

산수에 취하다(醉山水)

人皆醉酒我微酒  모두들 술에 취했건만 나만 취하지 않아

樂山樂水向石門  산수를 좋아하며 석문을 향하네.

渾渾非謀仙女酌  흔흔하여 선녀와 술 마실 계획이 없고

陶陶不飮杏花村  도도하여 행화촌의 술도 마시지 못했네.

如夢難醒忘日月  꿈결처럼 깨질 않아 세월을 잊고

似泥長酊別乾坤  술에 흠뻑 취한 듯 오래 취하니 별세계라네

雲間步步斜無定  구름 속 걸음걸이 기울어 안정이 없고

靈境方知世界元  신령한 지경 세계의 근원임을 알았네.

 

내금강문(內金剛門)

列立大岩好設門  늘어선 큰 바위 문으로 세우기 좋고

人多出入恰如村  많은 사람 출입하니 마을과 같네.

左右群巒佳水石  좌우의 여러 봉우리엔 수석이 좋은데

黑黃雙穴別乾坤  검고 누런 두 굴은 별천지라네.

汗濕單衣薰夏日  땀에 젖은 홑옷은 여름날처럼 무덥고

景憑兩眼勝春園  두 눈으로 보이는 풍경은 봄 동산보다 낫네.

方方谷谷雖華麗  곳곳의 골짜기가 비록 화려하나

物物形形此地元  사물의 모습들은 이곳이 으뜸이네.

 

명경대를 유람하다(遊明鏡臺)

一萬二千間有坮  일만 이천 봉우리에 누대가 있으니

稱名以鏡物形開  거울이라 이름 하여 만물의 모습이 열렸네.

丹楓霜染枝枝錦  단풍은 서리 맞아 가지마다 비단빛이고,

白石歲深點點苔  흰 바위는 세월 깊어 점점이 이끼가 끼었네.

只爲客遊雲捲去  나그네 유람을 위해 구름이 걷히고

但緣春色鳥啼來  봄날의 광경에 새가 울며 날아오네.

世外閑機今到覺  세상 밖의 한가한 기미 이제야 깨달으니

偸閒盡日却忘回  종일 한가로워 도리어 돌아가는 것 잊었네.

 

갈지자 길을 가다(行之字之路)

千里來賓之字去  천리 길 나그네 갈지자 길을 가니

峰雲淡鎖谷風輕  봉우리 구름은 맑게 잠기고 골짜기 바람은 가볍네.

攜笻登石東西步    지팡이 쥐고 바위에 올라 동서로 걸어가고

用手攀崖左右行  손으로 절벽을 기어올라 좌우로 가네.

初臨玄畵看山色  처음 현묘한 그림 같은 산에 올라 산 풍경을 보고

更上弓形聽水聲  다시 궁자(弓字)모양의 개울에 올라 물소리를 듣네.

屈曲無窮迷路引  끝없이 구불구불하여 미로를 지나는 듯

金剛處處益多情  금강산 곳곳이 더욱 정감 깊어지네.

 

찻집에서 쉬다(休憩茶店)

短杖影隨步絶壁  지팡이 그림자 좇아 절벽 길을 가는데

烏頭幕在僅遮天  오두막 있는 곳 겨우 하늘에 가렸네.

非樓非閣丹楓下  누도 각도 아닌 것이 단풍아래에서

無戶無階白石邊  문도 섬돌도 없이 흰 바위 옆에 있네.

斟酌溫波和氣釀  따뜻한 차를 따라 마시니 화기가 돌고

入唇美味有香連  입가에 들어오는 좋은 맛엔 향기가 이어지네.

路憊解消猶勝酒  노정의 피곤 해소하기로는 술보다도 나아

渾忘落照遠山懸  낙조가 먼 산에 걸려있는 것을 잊었네.

 

배를 띄우고 황천강을 유람하다(泛舟遊黃泉江)

水滿黃泉放小舟  물 가득한 황천강에 작은 배를 띄워 놓고

賦詩橫槊水中遊   노 걸쳐두고 시 지으며 물놀이를 하네.

遙看屈曲龍盤野  멀리 굴곡진 곳을 보니 용이 들에 움크린 듯

近視澄淸月上樓  가까이 맑은 곳을 보니 달이 누대에 떠오르네.

葭露千秋因海隔   갈대 이슬은 천추에 바다와 사이하고

煙波十里抱山流  안개 긴 물결은 십리나 산을 끼고 흐르네.

侶鷺友鷗吟詠後  해오라기 갈매기를 벗하여 시를 읊은 후

泛回天際下江頭  하늘 끝에서 배를 돌려 강 머리로 내려가네.

 

황류담(黃流潭)

此流非凡始今見  이 물결 비범한데 이제야 구경하니

明鏡臺前傍緣苔  명경대 앞에 초록 이끼 둘러있네.

依如四月春鶯坐  사월의 봄 앉은 꾀꼬리

怳似重陽秋菊開   중양절의 가을 국화가 피어있는 듯하네.

波光細柳黃金軟  물결 빛나는 가는 버들은 황금색 부드럽고,

水響牧童吹笛來  물소리 속에 목동이 피리 불며 오네.

景滿潭中詩意闊  풍경 가득한 연못에 시 지을 생각 넘쳐

今雖日暮杖無催  지금 해가 저물더라도 지팡이 재촉하지 않네.

 

시왕봉(十王峰)

如坐十王峰有一  시왕들이 나란히 앉은 한 봉우리 있으니

崇高豈比釋家翁  숭고함을 어찌 석가모니에 비하랴.

三台六卿趨朝上  삼태육경들이 조정에 오르는 듯

千將萬兵擁衛中  일천 장수 일만 병사가 옹위하는 듯하네.

律令分明如雪月  율령의 분명함은 흰 달빛과 같고

威儀嚴肅起霜風  위의의 엄숙함은 서릿바람을 일으키네.

閻羅主張招名吏  염라대왕이 주장하여 관리를 부르니

善惡必知償罰公  선악에 반드시 상벌의 공정함을 알리라.

 

판관봉(判官峰)

法廷嚴然公私判  법정은 엄숙히 공사를 판결하니

雖有不良改過新  불량한 사람 있으나 개과천선이 새롭네.

左右仙官傍聽久  좌우의 선관들이 오랫동안 방천하고

古今訟者頌聲頻  고금의 소송자들도 자주 칭송하네.

正直無私多賀士  정직하고 무사하니 경하하는 사람들 많고

淸平決獄小寃人  맑고 공평한 판결에 원망하는 사람도 적네.

十王上讞常刑措   시왕이 평결 올려 형법을 조처하니

應滿黃泉德化春  마땅히 황천에 덕화의 봄이 가득하리라.

 

인봉(印峰)

吏從每踏文簿綴  관리가 좇아서 매번 문부철을 찍으니

光彩朱紅豈敢冥  광채 나는 주홍빛을 어찌 감히 가리랴.

刻銘以玉方圓體  옥으로 글자 새긴 모나고 둥근 몸체

貴重勝金潤滑形  금보다 귀중하여 윤기 나고 매끄러운 모습이네.

閒投事畢幽深兀  일 마치면 그윽한 곳에 한가로이 던져 두고

多用訟爭判決庭  송사를 판결하는 곳에서 많이 쓴다네.

行政閻王由爾哲  행정 맡은 염라대왕은 너로 인해 현명하고

公私取扱要官廳  공사를 취급하는 관청에서 필요하네.

 

죄인봉(罪人峰)

逆天是罪罪其人  하늘을 거스름이 죄이니 그 사람을 벌하는데

處世盍羞檢束身   세상을 살아감에 몸단속에 어찌 부끄럽지 않으랴

自古陰凶常作害  예로부터 음흉함은 항상 해를 끼치니

平生主惡不爲仁  평생 악행하며 인(仁)을 이루지 않네.

拘留重杖免冠久  잡혀 곤장 맞고 벼슬을 그만둔 지 오래 이고,

査實就囹頓首頻  조사 받고 옥에 갇히니 자주 머리 조아리네.

十王大責難容恕  시왕이 몹시 책망하여 용서받기 어려우니

改過何年率性眞  언제나 개과천선하여 참된 성품을 따르랴.

 

검봉(劍峰)

特立緣何口字谷  무슨 연고로 구자곡(口字谷) 외롭게 서있는가

男兒欲借住斜陽  남아는 석양을 머물러 두려고 하네.

數千丈上穿雲影  수천 길 위에 구름 그림자를 뚫고 서서

萬二峰中弄日光  일만이천봉 가운데서 햇살을 희롱하네.

一懸何地徐君墓  어느 곳에 서군묘 (徐君墓)한 개가 매달렸나

幾飮古時老將觴  옛날 늙은 장군의 술잔을 몇 번이나 마셨던가.

草木變喪行此外  초목들이 시들어 있는 이 너머를 지나가며

難知世事感嘆長  세상일 알기 어려워 길게 탄식하네.

 

삼불암(三佛岩)

前面有三後九佛  앞에는 삼불(三佛), 뒤에는 구불(九佛)이 있는데

丹楓古栢白雲邊  단풍과 오랜 잣나무가 흰 구름 가에 있네.

始來東國應多日  처음 우리나라에 온지 오랜 세월

遠渡西河不記年  서하(西河)를 멀리 건너온 때의 연대를 잊었네.

嚴俊威儀塵念斷  엄준한 위의에 속세 생각이 끊어지고

方圓形體道心連  모나고 둥근 형체에 도심이 이어지네.

空山寂寞人歸後  빈 산 적막하게 사람들 돌아가고

明月淸風倘侶仙   밝은 달 맑은 바람만이 신선과 짝하리.

 

기도암을 유람하다(遊祈禱岩)

數丈大岩特立南  몇 길 높이의 큰 바위 남쪽에 홀로 서있는데

幾人投石又三三  몇 사람이나 돌을 던졌는가, 다시 어지럽네.

轉低直下猶生女  굴러서 곧장 아래로 떨어지면 딸을 낳고

在上不零必得男  바위에 얹어져 떨어지지 않으면 반드시 득남하네.

奚論問吉今巫筮  어찌 길함을 묻고자 오늘 점치는가.

莫說獻功吉刹庵  옛 절간에다 공들인다 말하지 마소

共擲五朋中未中  다섯 친구들과 함께 던져 적중하진 못했지만

各誇手功笑而談  저마다 솜씨를 자랑하며 웃고 떠드네.

 

만폭동을 완상하다(賞萬瀑洞)

千瀑猶多況萬瀑  천개 폭포도 많거늘 하물며 만개의 폭포이랴

洞開別境已多年  골짜기가 별천지를 연 것은 이미 여러 세월이네.

一章雅律丹楓裏  단풍 속에는 아름다운 음률 울려 퍼지고

五友寫眞白石邊  다섯 벗들은 흰 바위 가에서 사진을 찍네.

九秋風景渾如夢  가을의 풍경 온통 꿈결 같은데

四面水聲㤼罷眠   사방의 물소리 잠을 깨울까 겁나네.

長川高掛蒼空落  큰 시내가 높이 걸리어 창공으로 떨어지니

亂溜飛流似雨連  어지럽게 날리는 물방울 빗줄기처럼 이어지는 듯.

 

백마봉(白馬峰)

造名白馬是奇峰  백마라 이름 지은 기이한 봉우리

海戌何年或引烽  바닷가 수루는 언제 봉화를 피웠는가.

垂柳難繫無用勒  늘어진 벼들은 묶기 어려워 굴레로도 쓸 수 없고

章坮未馳不如笻   장대(章坮)는 달릴 수 없어 지팡이만 못하네.

鶴聲因瀑雲常濕  학 울음소리 폭포소리에 구름은 항상 축축하고

秋色逢楓春已濃  가을빛 단풍이 드니 봄이 이미 무르익은 듯하네.

人雖不乘詩豪坐  사람이 탈수는 없으나 시인은 걸터앉으니

滿載風煙猶勝龍  바람과 연기 가득 실려 용을 타는 것보다 낫네.

 

표훈사(表訓寺)

閒來表訓日如年  표훈사에 한가히 오니 하루가 일 년만 같은데

始覺俗遊不遠仙  나그네의 유람이 신선세계에 멀지 않네.

畵閣東西山影立  화려한 누대들 동서로 산 그림자 속에 서있고

白雲左右暴流連  흰 구름은 좌우로 폭포수와 이어졌네.

客杖登樓驚鶴夢  지팡이 짚고 누대 오르니 학은 놀라고

鍾聲似霹破僧眠  종소리 천둥 치듯 스님의 잠을 깨우네.

景猶難變人猶老  풍광은 편하기 어려운데 사람은 오히려 늙어가니

此去何時又復緣  여기를 떠나가면 언제나 다시 인연을 맺을 건가.

 

부두장을 유람하다(遊富頭場)

地闢富頭過幾春  땅 열린 부두장에 몇 봄이 지나 갔나,

白雲流水好爲隣  흰 구름과 흐르는 물이 이웃되니 좋구나.

靈境如開天外局  신령한 지경은 하늘 너머에 열린 듯하고

奇碑似對畵中人  기이한 비석은 그림 속의 사람을 대한 듯하네.

淸流水色看猶鏡  맑은 물결의 물빛은 거울을 보는 것 같고

深秀山心靜掃塵  깊고 수려한 산속은 고요하여 티끌도 없네.

景煙無限詩胸闊  무한한 풍광에 시 지을 마음이 넘쳐서

斜日閒吟意益新  석양에 한가롭게 읊으니 뜻이 더욱 새롭네.

 

정양사(正陽寺)

正陽稱寺斜陽立  절은 정양이라 불리는 석양에 서있는데

山腹中央吉地緣  산기슭 중앙의 좋은 땅의 인연이네.

三重石塔雲間立  삼층석탑은 구름 사이에 서있고

一箇燈籠檻外連  한 개 등롱은 난간 너머에 이어졌네.

秦琴鶴唳高樓上   거문고 연주와 학의 울음은 높은 누대 위에 있고

流水鍾鳴白日邊  흐르는 물소리와 종소리는 햇살 가에 있네.

千里客笻今到覺   천리 길 나그네 이제야 깨달음이 이르고

禪僧靜坐疑如仙  선승이 조용히 신선처럼 앉았네.

 

석등롱(石燈籠)

石燈籠懸自四時  석등롱을 사계절 걸어놓으니

乘昏翫客景隨宜  어둠 속의 구경꾼 빛을 따르니 좋구나.

自夜生光明熒熒  밤부터 빛을 내어 밝게 반짝이고

因朝沈影滅遲遲  아침이면 사라지는 그림자 가물대며 더디네.

非函非几思難測   함도 안석도 아닌데 생각해도 헤아리기 어렵고

如矩如規見不知  곡척 같고 그림쇠 같은데 보아도 알 수 없네.

無關風雨千載度  비바람에 상관없이 천년을 지나왔으니

錦繡江山明月枝  금수강산에 밝은 달의 가지일세.

 

방광대(放光坮)

靜閒坮上浩歌行  고요하고 한가한 누대에 크게 노래하며 가는데

無限放光景不輕  무한한 방광(放光)에 햇살이 가볍지 않네.

明朗何論秋月白  밝고 환하니 밝은 가을 달빛을 어찌 논할 것인가

輝煌莫道玉壺淸  빛나고 찬란하니 맑은 옥호(玉壺)를 말하지 마소.

飛瀑淡雲消世慮  날리는 폭포와 맑은 구름은 세상 근심 없애주고

奇岩怪石惣詩情   기암과 괴석은 모두가 시인의 마음이네.

一笻看盡繁華地   지팡이 짚고 번화한 땅을 두루 보고서

到此自然意自平  이곳에 이르니 자연히 뜻이 절로 평온하네.

 

삼중석탑(三重石塔)

有塔三重以石造  삼층의 석탑을 바위로 만들었는데

携石難上亦難攀  돌을 올리기도 몰리기도 어려웠을 터.

恒居幽谷元非佛  깊은 골짜기에 항상 있지만 원래 부처는 아니고

聳出半空屹似山  허공에 솟아올라 우뚝함이 산과 같네.

八九月中晴日下  팔구월 맑은 날

萬千峰上白雲間  만이천봉의 위 흰 구름 사이에 있네.

元非彌勒看尤怪  원래 미륵도 아닌데 볼수록 기이하고

摻手五朋暮詠還   다섯 벗들과 손잡고 저물녘에 읊조리며 돌아오네.

 

흑룡담을 지나다(過黑龍潭)

龍有靑黃胡爾黑  용은 청색 황색이 있는데 어찌 너는 검은가

大人利見理玄微  대인이견(大人利見)이란 말 이치가 현묘하네.

晴日每因淸水伏  비 개인 날에는 언제나 맑은 물에 숨어있고

白雲或上碧空飛  흰 구름 끼면 간혹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네.

昇天施雨風聲起  승천하여 비 뿌리면 바람소리 일어나고

移海弄珠夕照暉  바다로 가서 여의주를 희롱하니 석양빛이 밝네.

楓影倒潭隨浪動  단풍 그림자 연못에 비춰 물결 따라 움직이니

春閨況似織羅機  봄날 규방의 비단 짜는 베틀과 같네.

 

선담을 유람하다(遊仙潭)

有潭廣闊掃塵埃  연못이 광활하니 티끌먼지를 씻어낸 듯

舞袖仙郞步上苔  소매 너울대며 신선이 이끼 위를 걸어가네.

靑山歷歷乘雲到  늘어선 푸른 산에 구름 타고 이르고

碧磵溶溶駕鶴來  졸졸 흐르는 푸른 개울에 학을 타고 오르네.

瑤草垂波含露秀  고운 풀은 물결에 드리워 이슬 머금고 수려하고

琪花映水帶霞開  귀한 꽃은 물에 비치며 놀을 띠고 피었네.

莫言多小人間事  많고 적은 인간사일랑 말하지 마소.

消遣世情勝醉盃  속세의 정을 씻어내는데 술이 최고라네.

 

보덕암을 구경하고 읊다(見普德庵吟)

普德仰看疑接天  보덕암을 우러러보니 하늘에 닿은 것 같고

怪奇建築已多年  괴상하고 기이한 건축은 오랜 세월을 지냈네.

前簷至屹蒼空聳   앞 처마는 우뚝 창공에 솟아있고

後柱最低絶壁連  뒷기둥은 너무 낮아 절벽에 이어졌네.

散合雲煙階下起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 안개 섬돌 아래서 피어나고

朗明日月檻邊懸  밝은 해와 달 난간 옆에 매달렸네.

如令俗客遊其上  나그네를 그 위에서 놀게 한다면

消遣塵心不遠仙  속세의 마음 사라져 신선세계도 멀지 않으리.

 

비룡담을 지나다(過飛龍潭)

出潭飛遠向蒼空  못을 나와 멀리 날아 푸른 하늘을 향하니

鱉螯隱伏造化同   별오(鱉螯)가 숨어있는 것과 조화가 같네.

豈與黑雲常施雨  어찌 검은 구름과 더불어 항상 비를 뿌리는가,

如飛滄海或生風  푸른 바다로 날아가면 간혹 바람을 부르리라.

厥身長大移河上  그의 몸 장대한대 하수 위로 가고

其血玄黃戰野中  그 피는 검고 누른데 들에서 싸우네.

久在皇天人利見  오랫동안 하늘에 있어서 사람들이 이롭게 여기니

爲乎天德敢無通  천덕을 이룬다면 감히 통하지 않겠는가.

 

일월쌍봉을 바라보다(望日月雙峰)

日月有天又有地  해와 달이 하늘과 땅에 있어

長天大地四輪運  긴 하늘 큰 땅에 사륜(四輪)이 이어졌네.

陰陽似合儀如在  음양이 합해진 듯 모습을 있지만

畫夜難分象未緣   밤낮을 구분할 수 없으니 형상은 인연 없네.

兩光明郞丹楓裏  두 광채 밝게 단풍 속에 있고

雙影團圓白石邊  두 그림자 둥글게 흰 바위 가에 있네.

相照平生雖怳惚   평생을 서로 비추니 비록 황홀하지만

千支不用又無弦  간지(干支)를 쓸 수 없고 초승달도 없다네.

 

마하연을 지나다(過摩訶衍)

喜聽摩訶我訪先  마하연을 즐겨 듣고 내가 앞서 찾으니

溪山萬里白雲邊  개울과 산이 만리나 뻗어 흰 구름 가에 있네.

出家如昨念三日  집 떠난 지 어제 같은데 벌써 이십삼일이고

建刹至今千二年  절 지은 지는 지금까지 천 이년이 되었네.

鶴冠玉石東南立  닭 벼슬 같은 옥석은 동남으로 서있고

鉅齒銃峰左右連  큰 이빨 총대 같은 봉우리는 좌우로 이어졌네.

地僻洞幽論道久  땅은 외지고 골짜기 깊어 도를 논한 지 오래인데

老僧近佛學眞仙  노승은 부처님 모시며 진선(眞仙)을 배우네.

 

촉대봉(燭坮峰)

峰上有坮坮有燭  봉우리 위에 누대, 누대 위엔 초가 있어

輝煌不是俗家庭  찬란하게 밝으니 속세의 집이 아니네.

依如講樹孤燈火  숲 속의 외로운 등불을 얘기하는 듯

怳似暮天一點星   저녁 하늘의 한 점 별빛 같네.

平朝隱映水聲亂  아침에 은은히 비추는데 물소리 요란하고

深夜分明山色冥  깊은 밤에 밝은데 산색은 어둡네.

雨中耿耿風難滅  빗속에도 빛나 바람도 끄지 못하니

獨帶千年世外形  홀로 천년의 세월 세상 밖의 모습이네.

 

상향성(象香城)

象香烟出是名城  상향(像香)의 연기 피니 이름난 성인데

忽襲單衣步步輕  문득 홑옷에 향기 스며 걸음이 가볍네.

豪歌良辰千里興  좋은 날 크게 노래하니 천리 길에 흥이 나고

閒吟終日萬端情  종일 한가히 읊조리니 만 가지 정감이 이네.

叢林啼鳥羣同樂   숲에서 우는 새들 무리지어 함께 즐기고

飛瀑和風共作聲  날리는 폭포는 바람에 폭포소리를 들려오네.

詩心灑落塵緣去  시인의 마음 맑아져 속세의 인연 사라지고

層峰萬壑眼前平  높은 봉우리와 모든 골짜기 눈앞에 평평하네.

 

법기봉(法起峰)

深秀一峰稱以法  깊고 수려한 한 봉우리 법(法)으로 이름 하여

自山東北一溪前  산의 동북쪽 한 개울 앞에 있는데

三千大地茫茫上  삼천리 대지의 망망한 위이고

九萬長天浩浩邊  구만리 하늘의 드넓은 곁이네.

西圍白虎環雲隔  서쪽으로는 백호를 두르고 구름 너머에 있고

東起靑龍把海連  동쪽으로는 청룡을 일으켜 바다와 이어졌네.

是月五人隨處玩  이 달에 다섯 사람 가는 곳마다 구경 하는데

秋風瑟瑟又消烟  가을바람 살랑살랑 다시 안개 걷히네.

 

사자협을 지나다(過獅子峽)

四仙橋過又行東  사선교를 지나 다시 동쪽으로 가니

有峽稱獅路遠通  사자라고 부르는 협곡이 길과 멀리 통하네.

威嚴蹲坐高峰上   높은 봉우리 위에 위엄스레 도사리고 앉아

勇孟仰看白日中  밝은 햇살 속에 용맹하게 우러러 보고 있네.

遠見應知其大小  멀리 보니 그 크기를 마땅히 알았는데

近臨難辨是雌䧺   가까이 임하니 자웅을 분별하기 어렵네.

老虎雖云長百獸  호랑이 백수의 왕이라 하지만

焉能來坐碧山空  어찌 푸른 산의 허공에 앉을 수 있으리오.

 

영랑봉을 지나다(過靈朗峰)

有峰絶勝聳蒼天  봉우리가 빼어나게 창공으로 솟아나서

千里來賓老少年  천리 길을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이네.

秀麗朗光臨日月  수려하고 밝은 광선에 해와 달이 비추고

淑淸靈氣滿雲烟  맑고 신령한 기운에 구름 안개 가득하네.

飛流瀑布明珠落  날리는 폭포에는 명주가 떨어지고

層入石岩老佛連  층층 암석에는 오래된 부처 이어졌네.

聽水聞禽俳徊久  물소리 새소리 들으며 오랫동안 배회 하는데

四面空空夕照懸  사방에 쓸쓸하게 저녁놀 걸리었네.

 

금제를 지나다(過金梯)

非鐵非銅神妙作  철도 구리도 아닌데 신묘하게 만들어

步而又步見頻頻  걷고 걸으며 자주 쳐다보네.

髣髴春煬飛柳上    봄 햇살에 버들이 나는 것 같고

怳如秋橘滿涯瀕   가을 귤이 물가에 가득한 것 같네.

黃黃潤滑誰爲富  누릇누릇 윤기 나니 누가 부유하다 하겠는가.

閃閃價高山不貧  번쩍번쩍 가격 높으니 산도 가난하지 않네.

只今移置詩亭下  지금 시인의 정자 아래 옮겨놓으니

升降時時意益新  오르내릴 때마다 뜻이 더욱 새로워지네.

 

구미산장(久米山莊)

金剛山腹隱然在  금강의 산허리에 은연히 자리 잡아

不變奇華萬古同  변치 않는 기이하고 화려함은 만고에 한결 같네.

明朗依如初月下  밝고 환하니 마치 초생 달 아래인 듯

輝煌髣髴畵屛中    휘황하기 그림 병풍 속에 있는 듯

醉步陰邊非俗客  그늘 가에 취해 거니니 세속의 나그네 아니고

吟行影裡半仙翁  그늘 속에 읊조리며 걷노라니 신선인 듯하네.

久米有名稱世界  구미산장 유명하여 세상에 알려졌으니

莊嚴特異可知雄  장엄하고 특이하니 그 빼어남을 알겠네.

 

비로봉에 오르다(登昆盧峰)

第一金剛第一峰  빼어난 금강산의 제일봉이라

四時不絶遠來笻   사계절 멀리서 오는 나그네 끊이질 않네.

步崖晴日薰如夏  화창한 날 언덕 오르니 여름인 듯 무덥고

登嶺凉秋冷欲冬  고개 오르니 서늘한 가을이라 겨울처럼 차갑네.

交錯丹楓橫瀑立  울긋불긋한 단풍은 폭포 곁이고

相撑怪石以雲封  버텨 선 괴석은 구름에 잠겨있네.

立如天畔空中石  하늘가 우뚝 솟은 공중의 바위인 듯

天下有名特秀龍  천하에 유명한 빼어난 용이런가.

 

구성동에서 자다(宿九成洞)

薄暮吟行下北麓  해질녘 읊조리며 북쪽 기슭 내려오니

九成有洞淨無塵  구성동 깨끗하여 티끌 한 점 없네.

千里放笻雲裡客   천리 길 행장 차린 구름 속 나그네요

一樓勸酒醉中人  누대에서 술 권하니 취중인이라.

燭淚夜深懷惹久  촛농 밤 깊어 마음 끌린 지 오랜데

水聲枕激夢醒頻  잠자리 들리는 물소리에 자주 꿈이 깨었네.

此山宿債應多有  이 산에 묵은 빚 많겠지만

物物形形畵裡眞  사물마다 모습 빚어 그림 속 진풍경일세.

 

자사암을 지나다(過刺史岩)

刺史稱名貴重石  자사라 이름 하니 귀중한 바위라

生苔點點又消烟  자란 이끼 드문드문 안개도 사라지네.

廣如草席橫峰下  빗긴 봉우리 밑자리 깐 듯 널찍하고

圓似玉盤傍瀑邊  폭포 가에 둥그런 옥쟁반 놓은 듯하네.

春日秋風頻會客  봄볕 가을바람에 나그네 모이고

花朝月夕倘遊仙   꽃 피는 아침 달뜨는 저녁 신선 노닐 듯하네.

不低不屹多奇怪  낮지도 높지도 않으나 매우 기괴해

隨景來笻次第連   경치 따라 찾는 사람 차례로 이어지네.

 

장경암(藏經岩)

古人不讀豈韜先  고인들 읽지 않고 어찌 먼저 숨겼으리

萬丈層岩碧澗邊  만길 층암이 푸른 물가에 서있네.

字蜜明明紅日照  또렷한 글자 촘촘한데 붉은 햇살 비추고

行疎疊疊白雲連  첩첩이 늘어선 행간에는 흰 구름 이어 졌네.

恐看秦帝焚書世  진시황 분서(焚書)한 세상 만날까 걱정되어

豫鑑宣王藏壁年  선왕(宣王)이 벽에 숨기던 때를 본받았네.

寂寞山中惟表著  적막한 산중에 오롯이 드러나

學儒詩獎見慇然   학유(學儒)시로써 장려함이 은근하구나.

 

금선폭포에 노닐다(遊金仙瀑)

稱瀑金仙靜洗塵  금선폭포 고요하여 티끌을 씻어낸 듯

尋芳多士可爲隣  꽃을 찾은 많은 사람 이웃할 정도라네.

飛流色似春蜨坐   날리는 물줄기 봄날 나비가 앉는 듯

直下光如秋菊新  떨어지는 물빛 가을 국화 새로 핀 듯하네.

月夕乘雲升降久  달뜨는 저녁엔 구름 타고 길이 오르내리며

花朝駕鶴往來頻  꽃피는 아침엔 학을 타고 자주 오가네.

秦皇漢武安能識  진시황과 한무제 어찌 알겠는가

若到遨遊不老身   만약 이곳에 와서 노닌다면 늙지 않으리.

 

봉서담(鳳捿潭)

丹山出自遠飛南  단산에서 멀리 남으로 날아와

胡不捷梧在是潭  어찌하여 오동 아닌 이 연못에 있는가.

日倒蒼波飛兩兩  햇살 드리운 푸른 파도에 서너 마리 날아와

風來白水睡三三  바람 부는 흰 물결에 삼삼오오 잠든다.

元非烏鵲雲頻護  원래 까마귀 참새 아니니 구름이 호위하고

宜勝鷺鷗羣共涵   해오라기 갈매기 보다 나으니 무리지어 노니네.

淡泊流邊相刷羽  맑고 깨끗한 물가에서 깃털을 고르니

禽中稱長是奇談  새 중에 으뜸 됨은 기이한 이야기라네.

 

영풍계(映楓溪)

乘興徘徊近午天  흥을 타고 배회하니 벌써 정오라

映溪其狀畵如川  시내에 비친 모습 시내에 그림 그린 듯.

葉形怳惚平沙上   잎새는 모래밭엔 있는 듯

枝影玲瓏兩岸邊  나뭇가지는 두 언덕에 영롱하네.

渾是蓮花南浦在  온통 남포(南浦)에 핀 연꽃 같고

宜非柳絮渭城連  위성(渭城)에 연이은 버들개지 아닌가.

染波光景綺羅練  물결에 물든 광경 비단을 짜놓은 듯

此地吟遊半日仙  이곳서 읊조리며 노니니 반나절 신선되네.

 

청류벽을 유람하다(遊淸流壁)

淸水照人流絶壁  맑은 물 사람 비춰 절벽으로 흘러가니

春閨怳似鏡高懸   봄날 규방 안에 거울 높이 걸은 듯.

元非大海寒潮起  큰 바다에서 찬 물결 일어난 것 아니건만

疑是凉秋夜漏連  서늘한 가을 저녁이 된 듯하네.

碧강千年晴日下  천년이나 푸른 산은 맑은 해 맞이하고

層岩萬丈白雲邊  만 길의 층암은 구름 가에 서있네.

潺潺不息塵埃洗  졸졸졸 쉬지 않고 티끌 씻어내니

閒靜心神欲學仙  마음이 평화로워 신선을 배우고자 하네.

 

삼성담을 유람하다(遊三聖潭)

三聖名潭孰不尋  삼성담이라 이름 하니 누가 찾지 않으리

怳如親炙共連衿   직접 보고 자리를 같이 한 듯

至淸水色猶明鏡  지극히 맑은 물색 밝은 거울처럼 맑고

響應波聲勝聽琴  소리 울리는 물결소리 거문고보다 낫네.

通合元仁淵德闊  원인(元仁)을 통합하니 연못은 광활하고

明如白日道心深  태양처럼 밝으니 도심이 짚어지네.

徘徊岸上觀魚立  언덕을 배회하며 물고기 보며 서있나니

山影暮雲落照沈  산 그림자 저녁고름 낙조 잠기네.

 

십자담을 유람하다(遊十字潭)

潭成十字是奇潭  십자모양 이루어진 기이한 연못에

曳杖徘徊超俗男  지팡이 짚고 배회하는 세속 떠난 사나이.

二水中分應作二  두 물이 나뉘어지면 둘이 될 테고

三江幷連必爲三  세 강이 함께 흐르면 셋이 되리라.

橫沠自東遙落兌   동쪽에서 가로 흘러 멀리 서쪽으로 떨어지고

直流因北更經南  북쪽에서 바로 흘러 다시 남쪽을 지나네.

雲霞深鎖常聲咽  구름 노을 깊이 잠겨도 소리 항상 울리니

怪異無窮孰不談  괴이함 무궁하여 누구나 이야기하네.

 

화암봉을 넘어가다(越去華岩峰)

滿山風景怳如春   온 산의 풍경은 흡사 봄인 양

仙境暫爲塵表身  신선세계에 잠시 속세를 떠난 몸이네.

白石雲敀梅上雪   백석에 구름끼니 매화 위에 눈 내린 듯

淸潭客到鏡中人  청담에 객 이르니 거울 속의 사람인 듯

九秋屬節岩花老  가을 절기따라 암화(岩花)는 늙어가고

一海傾盃醉興新  바닷가에서 술잔 기울이니 취흥이 새롭네.

多少風光皆欲拾  약간의 풍광 모두 갖고 싶지만

午天將近杖催頻  정오 가까워 지팡이를 재촉하네.

 

조양폭포를 유람하다(遊朝陽瀑)

四面高山隔一瀑  사방 높은 산에 폭포 하나 가려있어

一陽暫照是山門  햇볕 잠시 비추니 산문이 되네.

東低西屹平朝麗  동쪽 낮고 서쪽 높아 아침이 아름답고

南塞北遮正午昏  남북이 가리워져 정오라도 어둡네.

水色微看迷日月  물빛 볼 수 없어 해와 달이 헤매고

波聲但聞別乾坤  물소리만 들리니 별천지네.

跫音隨向相傳語   발소리 따라가며 말을 전하니

客去客來只有痕  오가는 나그네 흔적만이 남았네.

 

은선대(隱仙坮)

坮名最好隱仙臺  누대 이름 가장 좋아 은선대이니

時有琪花四面開  철마다 고운 꽃들이 사방에 피네.

萬死不羞無我貴  만 번 죽어도 부끄럽지 않음은 귀하게 여기는 마음 없음이오

平生所願醉仙盃  평생소원은 신선의 술잔에 취해보는 것이네.

只緣雲裡禪心潔  다만 구름 속 선심 맑다고 하여

勿厭世間俗客來  세상 속세의 나그네 오는 것 싫다 마소.

如非太乙宜王喬  태을(太乙)이 아니면 왕교(王喬)러니

弄月吟風幾度回  음풍농월을 몇 번이나 해보았던가.

 

화강암(花崗岩)

岩上有花闢小岡  바위 위 꽃무늬 작은 언덕 열려

秋風九住已斜陽  가을바람에 오래 머무니 이미 해는 저무네.

千態分明春色滿  온갖 자태 분명하여 봄빛이 가득

萬姿怳惚景光長   만 가지 모습 황홀하니 경광이 그득

月常臨照紅兼白  달이 항상 비추어 붉기도 희기도

蝶或舞來紫又黃  나비 간혹 춤추니 자색에 노란빛이네.

回時徧得東君化   돌아올 때 봄의 조화 만나게 되면

畵裏物形第一方  그림 속 모습이 제일이겠지.

 

유점사(楡岾寺)

大刹方知諸寺首  큰 사찰이라 여러 절 중 으뜸이리니

新羅創建二千年  신라시대 창건하여 이천년이 지났네.

儀嚴金佛高樓上  금불은 누대 위에 위엄 갖추고

雷震鍾聲白日邊  종소리는 대낮에 우레 치는 듯하네.

峰稱彌勒南崖隔  미륵봉은 남쪽 언덕에 막아서 있고

山有靑龍後背連  청룡산은 뒤편으로 연이어 있네.

水石靈靈無限地  영롱한 수석이 무한한 땅에

靜閒心事自然仙  고요하고 한가한 마음 절로 신선이 되네.

 

청룡산(靑龍山)

金剛又有靑龍山  금강산에 다시 청룡산 있어

名重自然貴世間  중한 이름이라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네.

不儔龜鯨東海出   동해에서 나와 거북․고래 짝하지 않으니

肯同鳥獸萬峰還  일만 봉우리에 돌아와 조수 함께 하랴.

晴日弄珠桓溫向  화창한 날 환온(桓溫)을 향해 여의주를 희롱하고

乘雲施雨劉邦顔  구름 타고 유방(劉邦)의 얼굴에 비를 뿌렸네.

年事吉凶由爾在  한해의 길흉이 네게 달려 있으니

勤勞治水勿爲閒  힘써 치수(治水)하여 등한히 하지 말라.

 

법등(法燈)

法燈光彩四時流  법등의 관채 사계절 흘러

楡岾寺中度幾秋  유점사 안에서 몇 해를 지냈나.

或大或微難結炫  때론 크게 때론 약하게 불빛에 관계없이

自明自滅不關油  밝아지고 사그라듬도 기름에 상관없네.

怳惚依如花滿院   황홀하여 사원엔 꽃이 가득한 듯

輝煌怳似月臨樓   휘황하여 누대에 달이 비춘 듯하네.

淸宵金燭安能此  맑은 밤 금촉 어찌 비교하리오.

可使來賓快闊遊  찾아온 손 쾌활하게 노닐게 하네.

 

석비(石碑)

雲間乘興步徐徐  구름 간에 흥을 타고 서서히 거닐다

臨看石碑意不疎  석비를 보아하니 뜻이 나쁘지 않아.

應記寺中金佛績  절 금불의 사적을 적었으니

宜非山外俗儒書  산 밖 속세의 선비가 쓴 것 아니네.

琢磨財用三千里  가고 닦는 비용은 삼천리를 들였고

雕刻年過數百餘  조각해 놓은 지 수백 년 지났네.

軆似大人光似鏡   큰 사람만한 크기에 빛은 거울인 양

愛吟遠客不娛歟  사랑스레 읊는 원유객(遠遊客) 즐겁지 않겠나.

 

구만물상을 유람하다(遊旧萬物相)

高峰深秀聳天立  높은 봉우리 깊고 빼어나 하늘에 우뚝 서

依旧萬相正不疎   의구한 만물상 정히 그대로구나.

楓栢丹靑屛畵似  단풍과 잣나무 울긋불긋 병풍의 그림인 듯

石岩奇怪物形如  기암괴석은 만물의 모습 닮았네.

鳴泉聲咽懷無盡  우렁찬 시내 소리에 마음 끝없고

靈境景濃興有餘  신령한 경치 그윽해 흥이 넘치네.

山水豪歌今日事  산수간 호탕한 노래 오늘의 일이니

暫醒長醉勝觀魚  잠시 깨어 길이 취하니 관어(觀魚)보다 낫네.

 

신만물상을 유람하다(遊新萬物相)

步登泰岳望其東  태악에 걸어올라 동편을 바라보니

東海無涯萬里通  끝없는 동해 만리에 통하네.

起舞雲煙雙袖下  소매 아래 구름 연기 일어나 춤추고

坐看天地一舟中  앉아서 천하를 보니 한 배 안에 있는 듯.

燦爛楓林花碧강  찬란한 단풍 숲 푸른 산에 꽃 핀 듯

飛流瀑布雨蒼空  날리는 폭포는 창공에 비 뿌리 듯하네.

男兒到此多意氣  남아 여기 이르니 의기가 넘쳐

醉吟詩律丈夫風  취해 읊는 시 구절 장부의 풍류라네.

 

정천녀봉(頂天女峰)

世謂頂天最貴山  세상에선 정천녀봉 가장 귀한 산이라지

天然貞淑自然閒  천연히 정숙하니 절로 우아하구나.

楓丹雲白非金餙   단풍과 흰 구름은 금으로 장식한 것인지

石怪岩奇以玉刪  기암괴석은 옥으로 깎아 놓은 듯하네.

怳似月宮仙女面   흡사 월궁 선녀의 얼굴이런가,

肯同吳國美人顔  오나라 미인 얼굴과 같겠는가.

高高萬丈蒼空出  높고 높은 만길 봉우리 창공에 솟았으니

身未超登手未攀  이내몸 오르지 못하고 더위잡지도 못하네.

 

세지봉(勢至峰)

龍勢峨峨最壯觀  용의 형세로 높고 험해 가장 장관이라

萬峰特聳景不輕  일만 봉우리 우뚝 솟아 경치가 가볍지 않네.

蒼茫宇宙惟高起  아득한 우주에 오롯이 높이 일어나

浩濶乾坤獨大成   넓은 건곤에 홀로 크게 이루어졌네.

隔瀑近深雲疊疊  가까이는 폭포 넘어 깊은 구름 자욱하고

秀空遠挹海平平   멀리로는 빼어난 하늘 바다는 평평.

千秋無限風光好  무한한 천년에 풍광 좋으니

四面來賓不盡情  사방에서 오는 손 정은 다함이 없네.

 

외금강산장(外金剛山莊)

金剛自古名天下  금강산 예로부터 천하에 이름나

看益奇奇意自閒  볼수록 기이하여 뜻이 절로 한가하네.

飛瀑流潭歸鏡裡  날리는 폭포 흐르는 연못 거울 속 들어가듯

丹楓白石入屛間  단풍과 백석이 병풍 간에 들어간 듯하네.

三千大地無塵嶽  삼천리 대지에 띠끌 없는 산악

九萬長天連景山  구만리 하늘에 경치 이어진 산들이네.

俗累漸消斜日立  세상 근심 점차 사라져 석양에 서서

浩然樂在却忘還  매우 즐거워 돌아갈 길 잊었네.

 

오만물상(奧萬物相一部)

已過新舊更臨奧  신 ․ 구만물상 지나 다시 오만물상 이르니

處處有庵或有堂  곳곳에 암자요 당집이네.

大岩瀑落明珠轉  큰 바위에 폭포수 떨어지니 명주 구르는 듯

層峀林深去路長  층암에 숲 깊어 지난 길 길게 뻗었네.

無窮別景非塵世  끝없는 별세계 속세가 아니요

不遠靑天近帝鄕  푸른 하늘 멀지 않아 제향(帝鄕)이 가깝네.

老年所樂猶如少  노년에 즐기는 것 소년과 같아

醉興豪歌下夕陽  취하 흥취 호탕한 노래에 석양이 지네.

 

이만물상(裏萬物相)

已過奧相更裏尋  오만물상 지나고 이만물상 찾으니

楓林密密栢森森  단풍 숲 빽빽하고 잣나무 우거졌네.

岩列高低磨玉立  바위는 들쑥날쑥 옥을 깎아 세운 듯

路迷屈曲鎖霞深  길은 아득히 굽이쳐 노을을 잠긴 듯하네.

飛瀑水聲聽鳥語  날리는 폭포소리 새소리를 듣는 듯

連峰雲葉繡山心  이어진 봉우리 구름은 산 수놓은 듯하네.

鳩笻吟詠徘徊久   지팡이 짚고 읊으며 오래도록 배회하니

物物形形處處金  사물마다 형상이요 곳곳마다 금빛이네.

 

문주담(文珠潭)

一潭特異在名區  특이한 연못 하나 명소에 있어

別景初看久杖扶  처음 보는 별천지라 오래 머무네.

莫道潔光和氏壁  화씨벽(和氏璧) 맑은 빛이라 말하지 말고

豈論經寸魏王珠  위왕주(魏王珠) 한 치 넘는다고 어찌 논하랴.

如靑如紫猶如黑  푸른 듯 자색인 듯 때론 검은 빛

半白半黃又半朱  희기도 노랗기도 붉기까지 해.

箇箇有文岩下轉  저마다 문채 있어 바위 아래 구르니

以紙難貫反愁于  문장으로 표현 못해 도리어 근심하네.

 

삼선암(三仙岩)

岩有三方仙各遊  바위 세 곳에 각기 신선 노닐어

景光隨詠作風流  경광 따라 읊조리며 풍류에 짓네.

淡淡雲捲聳蒼空  담박한 구름 걷히니 창공에 우뚝하고

隱隱霞深傍古邱  은은히 노을 깊이 옛 언덕의 곁이네.

玉露祥風非俗世  이슬 맺힌 단풍은 속세가 아니고

琪花瑤草近瀛洲  아름다운 풀과 꽃은 영주(瀛洲)에 가깝네.

相連鼎足千秋立  솥발 서로 이은 듯 천 년간 우뚝

令爾每吟莫甚愁  네게 매번 읊게 하니 근심 사라지네.

 

발연사(鉢淵寺)

有寺鉢淵已古寺  발연사 이미 옛 절이 되었지만

寺中第一景光新  절중에서 경치는 가장 새롭구나.

白雲疊疊西山上  서산에는 희 구름이 겹겹이고

滄浪洋洋東海濱  동해가엔 푸른 물결이 드넓네.

拜佛漸消今世慮  예불 드리니 세속의 근심 점차 사라지고

聽鍾始覺遠方人  종소리 들으니 멀리서 온 나그네라네.

橋連眼鏡多奇怪  안경교와 연결되어 기괴함이 많으니

一見久吟可認眞  한번 보고 오래도록 읊조리니 진경이네.

 

천선대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다(登天仙坮望東海)

有海洋洋太古容  바다 드넓어 태고의 모습이니

如論水國可爲宗  수국을 논의하자면 으뜸이 될 수 있네.

雲開萬里明開鏡  만리에 구름 걷히니 거울 펼친 듯 밝고

嶼立千層妙起峰  천 층 섬이 솟으니 봉우리 일어난 듯 오묘하네.

皓月淸風成夢鷺  시원한 바람에 흰 달빛에 백로는 꿈을 꾸고

淡烟斜日弄珠龍  석양의 엷은 안개는 여의주를 희롱하는 용이네.

怒濤觸石興還沒  성난 파도 바위에 부딪혀 일어났다 사라지고

到耳寒聲冷欲冬  귓전 들리는 차가운 소리 차갑기가 겨울 같네.

 

안경교(眼鏡橋)

髣髴虹形正掃烟    무지개와 같은 모습 안개를 쓸어버리니

鉢淵古蹟是仙緣  발연사 옛 자취 신선을 만난 인연이네.

輪似圓環奇奇在  바퀴는 둥근 고리 같아 기이함이 있고

影如明月團團連  그림자는 밝은 달처럼 둥글둥글 이어졌네.

築沙築石小蹊上  작은 시냇가에 모래와 돌을 쌓았고

無柱無樑碧澗邊  푸른 시냇가에 기둥도 들보도 없다네.

眼鏡稱名能對眼  안경이라 이름 하나 눈에 쓸 수 있으랴

老人開眼更靑年  노인이 눈을 뜨니 다시 청년이 되네.

 

조탑동(造塔洞)

乘興景隨始到今  흥에 겨워 경치를 따라 이제야 도착하니

暮年詩賦步深林  늘그막에 시 읊조리며 깊은 숲 거니네.

東西栢立雲常擁  동서에 우뚝한 잣나무 구름이 항상 에워싸고

左右塔高俗不侵  좌우에 높은 탑 세속에서 침범하지 못하네.

淸澗水光看似鏡  맑은 시내의 물빛 거울처럼 보이고

丹楓鳥語聽如琴  단풍 속에 새소리 거문고처럼 들리네.

岐路龍盤通一店  갈래 길 구불구불 한 주막으로 통하여

暫時休憩却塵心  잠시 쉬노라니 속세의 마음 사라지네.

 

태상동을 유람하다(遊太上洞)

入洞景光秋勝春  동구의 경치 가을이 봄보다 낫고

靈靈水石掃烟塵  영롱한 수석은 안개와 티끌 쓸어 버렸네.

閣道星辰今不遠  각도(閣道)의 별들 지금 멀지 않고

太淸日月卽其隣  하늘의 해와 달도 바로 이웃이네.

雲裡暫臨雖有樂  구름 속에 잠시 임하여 비록 즐거움이 있으나

世間虛老愧無眞  세간에서 덧없이 늙으니 참 없음이 부끄럽네.

少年學得偸閒久  젊어 공부하면서 한가로움을 엿본 지 오래되었으니

半是仙人半俗人  신선인 듯 속인인 듯하네.

 

칠성대를 유람하다(遊七星臺)

始步此坮正掃烟  칠성대에 오르니 안개 걷히고

七星相列怳如天   북두칠성이 하늘에 펼쳐진 듯.

牽牛織女東西在  견우성과 직녀성이 동서에 있고

熒惑長庚左右連  형혹성과 장경성 좌우에 이어졌네.

出雲遠照銀河上  구름 나타나 멀리 은하수 비추고

現斗漸流太極邊  북두칠성 나타나 점점 태극으로 흐르네.

靈境應知非俗世  신령한 지경 속세가 아님을 알겠거니

肛橋幾降赤松仙  항교 타고 몇 번이나 적송선(赤松仙)이 내려왔는가.

 

외금강문(外金剛門)

奇石作門在峽東  기이한 돌로 만든 문 산골짜기 동쪽에

寒山肯與寺門同  차가운 산이 기꺼이 절문과 함께 하네.

往來猶勝南齊荊  왕래는 오히려 남제(南齊)의 형(荊) 땅보다 낫고

出入怳如西楚鴻   출입은 흡사 서초(西楚)의 홍문(鴻門) 같네.

無限烟霞淸澗上  무한한 안개 노을 맑은 시냇가요

有情楓栢白雲中  유정한 단풍과 잣나무 흰 구름 속에

金剛內外形容怪  금강산 내외의 형용 기괴한데

秋雨霏霏夕日紅    가을비 부슬부슬 석양은 붉네.

 

만상정(萬相亭)

始到此亭鳥語聽  만상정에 도착하니 새소리 들리고

夕陽久住日亭亭  석양에 오래 머무니 해는 아득하기만

東西花草紅而白  동서의 화촉 붉거니 희거니

上下栢楓丹又靑  상하의 잣나무 단풍나무 울긋불긋하네.

畵閣玉峰環立檻  화각엔 옥 봉우리 난간을 두른 듯

唳雲松鶴舞來庭   구름에 우는 소나무의 학은 춤추며 뜰로 날아드네.

無塵詩眼徘徊久  티끌 없는 시인의 눈 오래 배회하니

千態萬姿各輸形  천태만상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네.

 

육화정에서 쉬다(休憩六花亭)

亭名雖帶四時雪  정자의 이름 사계절 눈을 띠고 있지만

春暖秋涼不絶琴   따뜻한 봄 시원한 가을 거문고 끊이지 않네.

非寒宜詠騷人趣  춥지 않다면 마땅히 시인의 정취 읊조리고

無氷可舒君子心  얼음 없다면 군자의 마음을 펼칠 수 있으련만

畵棟依山流水活  화려한 용마루 산에 의지하니 흐르는 물 콸콸

玉欄出谷白雲沉   옥난간 골짜기를 벗어나 흰 구름에 감기네.

吾家當夏應蒸熱  우리 집 여름 맞아 찌는 듯이 더울테니.

歸拾六花欲換金  눈을 주워 가서 돈으로 바꾸고자 하네.

 

온천을 가다(行溫泉)

溫水天然出溫井  천연 온수 온정리에서 나와

諸君欲泳杖催頻  여러 사람 목욕하려고 지팡이 재촉하네.

初下洗纓今日汗  처음 내려가 갓끈을 씻으니 오늘은 땀이요

更臨濯足萬山塵  다시 발을 씻노라니 온산의 먼지네.

湧流不熱神尤快  솟구치는 물 뜨겁지 않아 정신은 더욱 상쾌하고

淡泊無寒意益新  담박하고 차지 않으니 뜻이 더욱 새롭네.

衣冠整齊同立畔  의관을 정제하고 함께 물가에 서니

五朋映水鏡中人  물에 비친 다섯 친구 거울 속의 사람이라.

 

온천 앞 통진(溫泉前通賑)

特立金剛一隅地  금강산 한 모퉁이 땅에 우뚝이 솟아 있으니

非關引水又關村  물을 긷는 것 아니라 마을과 관련된 것이라네.

怪奇機械思難測  기괴한 기계 생각해도 추측하기 어렵고

巧妙形容口不言  교묘한 형용은 이루 말할 수 없네.

源湧無寒殊品質  솟구치는 물 차지 않으니 좋은 품질이고

玉流最溫別乾坤  옥 같은 물결 가장 따뜻하니 별천지네.

天工人造應同理  하늘의 조화 사람의 솜씨 같은 이치이니

有意暫看通眞元  유의하여 잠시 보니 근원은 통하네.

 

외금강 공회당(外金剛公會堂)

溫井有堂稱以公  온정리 당집 공(公)이라 일컬으니

幾時多會是山東  언제 이 산 동쪽에 많이 모였는가.

十柱載樑長揷地  열 개의 기둥에 들보를 얹고 땅 깊이 박았는데

四簷如翼半飛空   네 처마가 날개를 펼친 듯 허공을 날아가네.

三五夜回應照月  보름밤이 돌아오면 달빛이 비추고

數千年去自淸風  수천년이 흘러도 절로 맑은 바람이네.

遠客偸閒今到覺  먼 나그네 한가함을 엿보다 이제야 깨달으니

海西石上白雲中  바다 서쪽 돌 위 흰 구름 속이라.

 

얼음을 지치는 곳(乘氷場)

揚揚乘氷勝乘馬  득의 양양 얼음을 지치니 말 타는 것보다 좋고

相換隣儕出小扉   서로 동료를 부르며 작은 사립문을 여네.

如步淸溪非濕襪  마치 맑은 시내를 건너는듯하나 버선 젖지 않고

似行明鏡又重衣  맑은 거울 위를 걷는듯하나 옷을 더 걸쳤네.

氣侵凜凜霜風起  기운 늠름함을 침범하여 서리바람 일어나고

光照纖纖夜月輝  빛이 가느다랗게 비치니 저녁달의 광채네.

疑陸疑河天上立  육지인 듯 바다인 듯 천상에 서서

跌顚或恐一鞭揮  넘어질까 두려워 한 번 채찍을 휘두르네.

 

신계사에 이르다(到新溪寺)

別有乾坤有一寺  또 다른 천지에 절 하나 있으니

遠方佳客景隨來  먼 지방 나그네 경치 따라 왔네.

入門神道黃金佛  문에 들어서니 신도(神道)에는 황금 불상이요

出洞鐘聲白日雷  골짜기를 나서니 종소리 대낮의 우뢰라네.

左右樓閣雲霧掃  좌우의 누각에 구름 안개 사라지고

東西水石畵圖開  동서의 수석 그림을 펼친 듯하네.

相傳儒佛同源道  유가와 불가의 도는 근원이 같다고 전해지니

世慮自消勝酒盃  세상 근심 사라지니 술잔 보다 낫네.

 

방당에서 고기를 바라보다(方塘觀魚)

方塘步上靜無塵  방당 위를 걷자니 고요하여 먼지하나 없고

碧水觀魚客意新  푸른 물에 물고기 바라보니 나그네 마음 새롭네.

山影倒中游玉尺  산 그림자 드리운 물 속 노니는 한 자의 물고기

柳烟凝下躍銀鱗  버드나무 아래서 뛰노는 은비늘의 물고기

喁喁潑潑閒吟久    뻐끔뻐끔 펄떡펄떡 한가로이 읊조리고

圉圉洋洋喜看頻    느릿느릿 휙휙 기뻐하며 자주 바라보네.

誰識斯間眞趣在  누가 이 사이에 진정한 흥취 있음을 알까

風輕日朗半仙人  바람 스치고 해는 맑으니 선인인 듯하네.

 

문필봉을 바라보다(望見文筆峰)

掃塵特立寺門東  절문 동쪽에 티끌을 씻어버리고 우뚝 솟아

隱隱影邊太極通  은은한 그림자 언저리 태극(太極)과 통하네.

文制何年吟李白  문장으로 언제 이백(李白)을 읊조리며

筆歌昨夜夢王翁  글씨로는 어젯밤 왕희지(王羲之)를 꿈꾸었네.

接隣蒼海仙遊地  이웃한 푸른 바다 신선이 노니는 땅이요

聳出丹霞玉削峰  우뚝 솟은 붉은 노을 옥을 깎은 듯 한 봉우리

君子賢人應繼出  군자와 현인 응당 계속 나오니

古來元氣振儒風  예부터 원기가 유풍(儒風)을 진작 시키는구나.

 

단풍을 읊다(詠丹楓)

不黃不翠今何處  황금빛도 비취빛도 아니니 이곳은 어디인가

第一金剛萬谷斜  제일 금강산 만 골짜기에 비껴 있네.

沾瀑長條凝玉溜  긴 가지에 폭포가 날리니 옥구슬 맻힌 듯

拂風丹葉勝春花  바람에 흔들리는 단풍은 봄꽃보다 낫네.

紅杏片時開古院  붉은 살구는 잠시 고원(古院)에 피고

海棠十里照明沙  해당화 피어 명사십리를 비추네.

數叢如採吾庭種  몇 떨기 캐어 우리 집 정원에 심으면

後日應爲錦繡家  후일에는 금수가(錦繡家)가 되리라.

 

사선봉(四仙峰)

遠上此峰心不分  멀리 있는 이 봉우리 마음에 분변할 수 없더니

方知掃除世塵紛  분분한 속세의 티끌  쓸어버렸음을 알겠네.

千年白石層層佛  천년 묵은 백석은 층층이 불상이요

萬里靑山疊疊雲  만리에 뻗친 청산은 겹겹이 구름이네.

淸風瑤草含春碧  맑은 바람에 아름다운 풀 봄빛을 머금어 푸르고

暮日琪花帶月芬  해질녘 향긋한 꽃은 달빛을 띠고 향기롭네.

借問四仙何處在  묻노니 네 명의 신선은 어디에 있는가

却消俗累意欣欣  세속의 얽메임 사라지니 마음은 기쁘네.

 

집선봉(集仙峰)

此峰始上訪仙官  이 봉우리 올라와 선관을 방문하니

無限景光樂不支  무한한 경광에 즐거움 헤아릴 수 없네.

壯觀峰巒豪傑像  장관인 봉우리들 호걸의 형상이요

櫛枇玉石美人姿  즐비한 옥석 미인의 자태라네.

渾消冉冉塵心累    얽매인 속세의 마음 모두 더없이 사라지니

不覺陶陶祥日移  상서로운 해가 빨리 옮김을 깨닫지 못하네.

相集幾時能散否  서로 모였다가 어느 때 흩어졌는가

遠遊俗客詠遲遲  멀리서 온 속세의 나그네 읊조리며 천천히 걷네.

 

옥류동(玉流洞)

飽聞玉流入洞遊  구슬이 흘러 골짜기로 들어간다 듣고 유람하니

水流化玉石角流  물이 흘러 구슬 되고 돌 뿌리로 흐르네.

紛紛似霰零幽谷  어지럽게 싸라기 날리듯 깊은 계곡에 떨어지고

箇箇如珠轉古邱  낱낱의 구슬처럼 옛 언덕에 구르네.

靜閒有訝靑天外  고요하고 한가로워 푸른 하늘 너머인 듯

淨潔何論白鷺洲  맑고 깨끗함은 어찌 백로의 물가를 논하랴.

不老乾坤人豈老  세상은 늙지 않는데 사람은 왜 늙는가

少而不樂老而愁  젊어서는 즐겁지 않더니 늙어서는 근심하네.

 

관음폭포(觀音瀑)

觀音飛落自何峰  관음폭포 어느 봉우리로부터 날아 떨어지는가,

凜凜氣侵却訝冬  서늘한 기운 침범하니 도리어 겨울인 듯

水色石連沉彌勒   물빛은 바위에 연이어 미륵불을 잠그고

波聲空起似寒鍾  물소리 허공에 일어나니 찬 종소리인 듯.

詩士閒吟淸趣足  시인은 넉넉한 맑은 정취 한가로이 읊조리고

俗風恐通白雲封  속세 바람 불어와 흰 구름을 봉해버릴까 염려되네.

道原深遠同儒彿  도의 근원 심원하여 유불이 한결 같으니

消遣塵心久住筇   세속의 마음을 씻어내고 오랫동안 지팡이를 머무네.

 

옥녀봉(玉女峰)

玉女稱名最有愛  옥녀로 이름한 것 가장 좋으니

何年倘或自人家   언제 누구로부터 불렀던 것인가.

坐看吟詠烟光闊  앉아서 보고 읊조리니 안개 낀 광경 드넓고

起舞歌謠日影斜  일어나 춤추며 노래하니 해 그림자 비껴

山上團圓如夜月  산 위는 둥글어 밤에 뜬 달인양

雲間秀麗勝春花  구름사이로 수려함은 봄꽃보다 낫네.

千萬峰中惟第一  천만 봉우리 가운데 제일이니

怳然白鳥夢平沙   흡사 백조가 모래에서 꿈을 꾸는 듯하네.

 

음양석(陰陽石)

此石怪奇異凡石  이 바위 기괴하여 다른 돌과는 다른데

難分畫夜兩儀通   밤낮으로 두 모양 되는 것 분별하기 어렵네.

日照陽邊光怳惚   해가 양지를 비추면 빛은 황홀하고

月臨陰裡影玲瓏  달빛이 음지에 임하면 그림자 영롱하네.

東西瀑布層岩下  동서로 걸린 폭포는 층층 바위 아래요

左右楓林秀嶺中  좌우에 펼친 단풍 숲은 빼어난 고개 안이네.

浩大乾坤調理否  넓고 큰 하늘이 만들었는가

熱寒其氣自生風  열기와 한기 절로 바람이 일어나네.

 

수정봉(水晶峰)

萬千風景畵屛裡  천만의 풍경은 그림 병풍 속이니

晶秀一峰似水回  맑고 빼어난 봉우리 물이 돌아나가는 듯.

銀姿閃閃梨花發  은빛 자태 반짝반짝 배꽃이 만발한 듯

玉態淡淡鏡面開  옥빛 형상 맑고 맑아 거울을 펼친 듯.

如非冬沼寒氷結  겨울 연못에 찬 얼음 맺힌 것은 아니건만

疑是月沙白鳥來  달빛 모래에 백조가 찾아든 듯하네.

積雪怳然非又雪   쌓인 눈 몽롱하나 또한 눈 내리는 것 아니니

故看緩步杖無催  짐짓 천천히 걸으며 보고 재촉하지 않네.

 

천지를 가다(行天池)

已見地池始見天  이미 지지(地池)를 보고서 천지를 보니

天光倒映與雲連  하늘빛은 그림자 드리워 구름과 연이었네.

蒼波日月明明裡  푸른 물결에 해와 달은 밝디 밝고

白水星辰熒熒邊  별들은 백수에 반짝이네.

低立南山流底隔  낮게 선 남산은 물결을 격해 있고

不遐北斗岸前懸  멀지 않는 북두성은 언덕에 매달려 있네,

淨潔洗膓東海勝   정결하고 흉금을 씻는데 동해 보다 나으니

心神快闊覺登仙  심신이 쾌활하여 신선이 된 듯하네.

 

팔담에 오르다(上八潭)

次第有潭度幾秋  차례로 담소가 있으니 몇 해가 지났는가

白雲千里萬峰頭  흰 구름 천리에 뻗친 만봉의 정상 이네.

波聲遙聞靑天外  물소리는 멀리 푸른 하늘 너머에서 들려오는 듯

水色淸如白鷺洲  물빛은 백로의 물가처럼 맑네.

槿域道分晝宵湧  우리나라 도를 나누었건만 밤낮으로 솟아나고

伏犧卦劃古今流  복희씨 괘를 그렸으나 고금에 흐르네.

相連四倍名傳八  넷이 서로 연이어 배 되어 팔담이라 전하니

遠客遊吟不下邱  멀리서 온 나그네 유람하며 내려가지 않네.

 

구정봉(九井峰)

有一猶難況有九  하나도 오히려 어렵건만 하물며 아홉이니

一峰九井未問先  구정봉을 미리 묻지 마라.

石形潛水玲瓏玉  바위 형상은 물에 잠기니 영롱한 구슬이요

雲影倒波上下天  구름 그림자 물결에 드리워 상하로 하늘이네.

淨潔何論臨曲沼  정결함에 어찌 곡소(曲沼)에 임하는 것을 논하랴

淸凉莫說向林泉  청량함은 임천(林泉)을 향해 말하지 말라.

鏡面高開遐邇映  거울 수면 높이 펼쳐 멀건 가깝건 비추니

千層泰岳洗塵烟  천층 태악에 티끌과 연기 씻어내네.

 

구룡대(九龍臺)

九龍臺上九龍遊  구룡대 위에 아홉 용이 노닐었으니

何暇自來大海流  어느 때에 와서 큰 바다로 흘러가는가.

晴日弄珠千樹影  맑은 날엔 천수의 그림자에서 여의주를 희롱하고

黑雲治水萬峰邱  먹구름 들면 만 봉의 언덕에서 물을 다스리네.

楓林怳似靑天外   단풍 숲은 흡사 푸른 하늘 너머요

瀑布元非白鷺洲  폭포는 본래 백로의 물가 아니라네.

變化無窮飛或躍  변화가 무궁하여 나는 듯 뛰어오르는 듯

見人幾舞此山頭  사람을 보고 몇 번이나 산의 정상에서 춤추었는가.

 

비봉폭포(飛鳳瀑)

凡鳥羞群名以瀑  뭇 새와 무리 짓기 부끄러워 폭포로 이름하니

囂塵不浼是閒機    떠들썩한 속세에 더럽히지 않아 한가한 기미로다.

刷毛每弄淸風動  깃털을 쓸어내며 매번 희롱하니 청풍은 불어오고

垂翔長鳴落照輝  날개를 드리우고 길게 우니 낙조는 빛나네.

雲樹莫論孤鶴舞  구름 낀 나무는 외로운 학의 춤을 말하지 마라

月沙猶勝白鷗飛  달빛 모래는 백구가 날아가는 것보다 낫네.

何年出自丹山穴  어느 해 단산의 굴에서 나와

簿暮隨流石角歸  해질녘 물결 따라 돌부리로 돌아가는가.

 

관폭정을 유람하다(遊觀瀑亭)

有瀑有亭兩可觀  폭포도 있고 정자도 있어 모두 볼만하니

我遊雖俗是仙遊  내 유람 속되지만 신선의 놀음이네.

雲間淡泊眞珠落  구름사이로 맑디맑은 진주가 떨어지고

岩上分明白玉流  바위 위에는 선명한 백옥이 흐르네.

水石何論雙鳳闕  수석은 어찌 쌍봉궐을 논하랴

風烟莫說岳陽樓  풍연(風烟)은 악양루를 말하지 말라.

光陰一去重難到  시간은 한번 가면 다시 이르기 어려운데

未樂靑春恨又愁  청춘을 즐기지 못해 한스럽고 근심스럽네.

 

구룡연(九龍淵)

景裡此淵第一景  경치 속에 이 연못 제일가는 풍경이니

層岩絶壁白雲邊  층암과 절벽은 흰 구름 주변에 있네.

因風飛溜眞珠落  바람에 날리는 물줄기는 진주가 떨어지는 듯

觸石走波玉索連  바위에 부딪혀 달리는 물결은 구슬을 연이은 듯.

淸勝林泉輪滿月  임천(林泉)보다 맑아 둥근 달 가득하고

圓如九鼎影沉天   구정(九鼎)처럼 둥글어 하늘 그림자 잠기네.

何年龍出何時去  어느 해 용이 나왔다가 어느 때 떠났는가.

淺水生苔細化烟  얕은 물가엔 이끼 자라 가는 연기가 되네.

 

벽석을 읊다(吟碧石)

石皆白白爾胡碧  바위는 모두 희고 흰데 너는 어찌 푸른가

倘或誰家入畵屛   혹시라도 누구의 그림 병풍에 들어갔는가.

急流江上應不轉  강가의 급류에도 응당 구르지 않고

稱號陶令尙難醒  도령(陶令:도연명) 칭호에서 깨어나기 어렵네.

獨依寂寂丹霞鎖  홀로 적막함에 의지하여 붉은 노을에 잠기고

孤立亭亭細草冥  외로이 우뚝 솟아 가는 풀은 어둡네.

非玉非金看益怪  옥도 황금도 아닌데 볼수록 괴이하니

可移移置我家庭  우리 집 정원에 옮겨 놓을 만하네.

 

거듭 철망교를 지나다(再渡鐵網橋)

建設網橋鐵與木  철과 나무로 망교를 건설하니

九龍瀑布直流邊  구룡폭포 곧장 흐르는 주변이네.

客臨雲上難看地  나그네 구름 위에 오르니 땅을 보기 어렵고

人渡半空不遠仙  사람이 허공을 건너니 신선세계도 멀지 않네.

屹屹有樑因石掛  높고 높은 다리 바위에 걸려있고

輕輕無柱接天懸  기둥도 없이 가벼워 하늘에 매달렸네.

搖繩兩岸飛來態  줄이 흔들려 두 언덕에서 나는 모양

怳似鞦韆出柳烟    흡사 그네가 버들 안개 속에서 나오는 듯.

 

푸른 잣나무를 읊다(詠蒼栢)

落落森森最直然  드높고 빽빽하여 가장 곧으니

傲霜凌雪已多年  눈서리 무릅쓰고 이미 여러 해를 지냈네.

岩上亭亭橫瀑立  바위에 우뚝 폭포에 비껴 서서

雲間㭗㭗與楓連    구름사이로 어렴풋이 단풍과 연이어 있네.

雨晴密葉霞來擁  비 개인 빽빽한 잎엔 이내가 감싸고

風歇長條鳳或眠  바람 그친 긴 가지엔 봉황이 잠드네.

節似孤松陰似竹  절개는 외로운 소나무요 음기는 대나무 같아

蒼蒼不變四時緣  푸르름 변함없이 사시에 둘러 있네.

 

사슴을 보다(見麋鹿)

不隣獅虎好麟侶  사자와 호랑이 이웃 않고 사이좋게 기린을 사귀니

其性仁哉久伏幽  그 성품 어질어 오랫동안 그윽한 곳에 엎드려있네.

濯濯肥形眠谷裡  윤기 있는 살진 모습으로 골짜기에서 잠들고

呦呦喚類下萍洲    울음소리로 무리 불러 평주로 내려오네.

擅權秦國誰云馬  진나라의 권력을 휘두르던 그 누가 말이라 했는가,

奔怒燕軍豈比牛  성을 내던 연나라 군대는 어찌 소에 견주었는가.

從爾入山詩意闊  너를 따라 산에 들어오니 시 지을 마음 넘치는데

蕪菁歲月自然流  무정한 세월은 절로 흘러가네.

 

선승을 만나다(逢禪僧)

一團和氣怳如春   한 무리의 온화한 기운 흡사 봄인 듯

不近衆人不遠人  대중을 가까이하지도 사람을 멀리하지도 않네.

崇佛誦經非俗士  부처 숭상하고 불경 외우니 속세의 선비 아니요

吟風弄月是仙隣  바람에 읊조리고 달빛 희롱하니 신선과 이웃하네.

能通道術山中老  도술에 능통한 산중의 노인이요

自餐烟霞世外身  스스로 산수에 사는 세상 밖의 신세라네.

淸白心思無所願  청백한 심사라 바라는 바 없어

獨禪百歲只成眞  유독 백세토록 참선하며 참을 이루려 하네.

 

삼일포를 유람하다(遊三日浦)

勝地如斯別有天  이 같은 승경지는 별천지라

擅名水石白雲邊  수석으로 이름 떨친 흰 구름 주변이네.

琪花怳惚依如畵   향긋한 꽃 황홀하여 흡사 그림인 듯

瑤草臭微半化烟  아름다운 풀 푸른빛으로 연기로 화한 듯.

波闊周回三十里  물결은 드넓어 둘레가 삼십 리요

仙遊歲去幾千年  신선은 노닐고 떠난 지 수천 년이네.

閒鷗不識余心樂  한가한 갈매기 내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晴日無心傍岸眠  맑은 해는 무심하게 언덕 주변에서 잠드네.

 

백사장을 지나다(過白沙場)

踏盡萬峰下海城  만봉을 두루 밟고서 바다로 내려오니

沙場連白又平平  백사장 연이였고 또한 평평하네.

脚勞猶甚汚泥過  다리는 진흙탕 지날 때보다 더 피로하고

跡細怳如積雪行   발자국은 눈 쌓인 곳을 지난 듯 작네.

塵雜着衣看不見  먼지와 섞여 옷에 달라붙으니 보이지 않고

風飄落地聽無聲  바람에 날려 땅에 떨어지니 소리도 들리지 않네.

尤遲步步雖多憊  더욱 더디게 걸어 피로는 많지만

鷗鷺忽隨更有情  갈매기와 해오라기 문득 따르니 더욱 정이 생기네.

 

기선을 타다(乘汽船)

乘船斜日始浮海  배를 타고 해질녘에 바다로 나서니

非走非飛去箭如  달리는 것도 나는 것도 아니지만 화살과 같네.

十里沙中徒步後  십리 모래밭(明沙十里)을 도보한 다음이요

萬峰雲裡踏山餘  만봉 구름 속에 산을 밟은 나머지라.

章坮莫說馳肥馬  장대에서 살진 말 달리던 일 말하지 말라

線路何論上汽車  철로에서 기차 탄 것을 어찌 논하랴.

流泝扣舷歌皓月    물살을 오르고 뱃전 두드리며 밝은 달을 노래하니

春園醉入勝看花  봄 동산에 취해 꽃을 보는 것보다 낫네.

 

해금강을 유람하다(遊海金剛)

太古金剛陸海連  태고에는 금강산 바다와 육지 연이었고

扣舷流泝浩蕩邊    뱃전을 두드리며 물살 오르니 드넓은 바다라네.

波起千層聲似霹  물결은 천 층을 일으키고 물소리 벽력이 울린 듯

靄濃十里隔如烟  안개는 십리에 자욱해 연기에 가로막힌 듯.

天浮上下應無地  하늘에 배를 띄우니 상하로 땅이 없고

人在半空不遠仙  사람이 허공에 있으니 신선세계 멀지 않네.

江山風月誰爲主  강산풍월은 누가 주인인가

取用文章萬古年  문장에 써서 만고에 전하리.

 

해금강문을 보다(見海金剛門)

海門始到日如年  해금강문에 이르니 하루가 일년 같은데

晴景非常樂浩然  맑은 경치 비상하여 즐거움은 넘치네.

高似玉峰因碧渚  옥봉처럼 높이 푸른 물가에 말미암고

立如牛角聳蒼天  쇠뿔처럼 우뚝 푸른 하늘에 솟아 있네.

北低南屹雲烟擁  북은 낮고 남은 높아 구름과 안개 감싸고

上矩下圓水石連  위는 네모지고 아래는 둥글어 수석이 연이었네.

此地幽閒多別景  이곳 그윽하고 한가로와 별경 많으니

沙鷗刷羽鷺閒眠  갈매기 깃털 쓸어내고 해오라기 한가로이 잠드네.

 

사공암을 보다(見司空岩)

平生遁世隱萍水  평생 속세를 떠나 평수에 은거하니

取適不離萬頃波  낚시를 즐겨 만이랑 물결을 떠나지 않았네.

烟裡淸風搖棹詠  안개 속 맑은 바람에 노 저으며 읊조리고  

海濱明月扣舷歌   바닷가 밝은 달빛에 뱃전 두드리며 노래하네.

千里泛行居似舶  천리 길을 떠나 배에서 살고

百年寄趣老於河  백년의 정취를 붙여 물가에서 늙어가네.

魚鰕爲侶隣鷗鷺  물고기와 새우 벗하고 갈매기와 해오라기 이웃하니

景物兼看勝事多  경물과 좋은 일 보는 것도 많네.

 

백로를 읊다(咏白鷺)

每伴閒鷗一色齊  한가로운 갈매기와 짝하여 흰색으로 나란히

體雖如雪不寒提  몸은 눈처럼 희나 추위는 걸맞지 않네.

怳似靑山雲唳鶴    흡사 푸른 산 눈 속에 학이 우는 듯

肯同白屋曉鳴鶴  새벽녘 초가에서 우는 닭소리 같으랴.

夜因明月溪聲立  밤에는 밝은 달빛에 시내에 서 있고

時向淸風海岸拪   때때로 맑은 바람을 향해 해안으로 깃드네.

漁子莫侵魚弄際  어부들아 물고기와 희롱할 때 침범하지 말라

驚飛堪聽上天啼  놀라 하늘로 날아오르며 우는 소리 어찌 들으랴.

 

청학을 읊다(咏靑鶴)

或縞或黃各異形  희기도 누렇기도 저마다 모양이 다른데

長鳴莫說鷰鸝聽    제비 꾀꼬리의 긴 울음소리 말하지 말라.

飛來明月雙翔玄  밝은 달빛에 날아드니 두 날개 검고

舞下白雲一點靑  흰 구름에 춤추며 내려오니 한 점 푸른빛이네.

驚夢頻頻風韻急  거센 바람소리에 자주 꿈을 놀라고

閒眠往往樹陰冥  어두운 나무 그늘에 왕왕 한가로이 잠드네.

太淸遊戱應多日  하늘을 유희함도 응당 여러 날이러니

空唳幾捿道士庭   부질없이 울며 도사의 뜰에 얼마나 깃들었는가.

 

촉대암(燭臺岩)

臺上有岩岩上燭  누대 위의 바위, 바위 위에 등불

金剛盡日古如今  금강산 하루 종일 고금이 한결 같네.

如花不落春將暮  꽃이 떨어지지 않아도 봄은 장차 저물고

無漏何關夜已深  시각에 상관없이 밤은 이미 깊어가네.

怳似明星懸北斗   흡사 밝은 별인 양 북두성에 매달려 있고

宜非漁火照楓林  고깃배 불빛 아니건만 단풍 숲을 비추네.

晝宵耿耿連蒼海  밤낮으로 빛나 푸른 바다에 연이어

立石爲隣影相沉   선바위 이웃하여 그림자 서로 잠기네.

 

해금강 선바위(海金剛立石)

石非工造金剛東  바위는 조물주 솜씨 아니어도 금강 동쪽에 있어

非塔非峰聳碧空  탑도 봉우리도 아닌데 푸른 하늘에 솟아 있네.

離山久立波光裡  산과 떨어져 물결 속에 선 지 오래고

接海獨高水色中  바다에 접해 홀로 물빛에 우뚝 하네.

照日岩花含雨露  햇빛 비치는 바위의 꽃은 비와 이슬 머금고

秀雲松葉老風霜  구름 드리운 솔잎은 바람과 서리에 시드네.

天將巧手斯間立  하늘이 교묘한 솜씨로 이곳에 세워

遠客騷人眺望同  멀리서 온 나그네와 시인 다 같이 조망하네.

 

총석정(叢石亭)

叢石爲亭擅我東  총석에 정자 세워 동방에 떨치니

古人觀償後人同  고인이 감상하고 후인도 함께 하네.

三千里上惟奇景  삼천리에 기이한 경관이요

六十尺餘聳碧空  육십 척 남짓 푸른 하늘에 솟아 있네.

隣老探來淸夜月  이웃 노인 찾아오니 맑은 밤 달빛이요

遠賓吟咏夕陽風   멀리서 온 나그네 읊조리니 석양에 바람이네.

塵間樓閣何能比  세상의 누각 어찌 견주겠는가,

海岸名區世界通  해안의 명소 세상에 알려졌다네.

 

금강산 전경을 읊다(金剛山全景吟)

雄峰怪石掃塵埃  웅장한 봉우리 기괴한 바위 티끌먼지 쓸어버려

萬瀑千潭又百坮  만폭(萬瀑)과 천담(千潭), 백대(百坮)로다.

火體五行金局抱  화체(火體)는 오행의 금국(金局)으로 포괄하고

物形三月牧丹開  물형(物形)은 삼월의 목단이 피는 듯.

半山半水陰陽合  산과 물 절반으로 음양이 합하고

連海連天日月回  바다와 하늘 연이어 해와 달이 운행하네.

無限景光誰不取  무한한 풍광을 누가 취하지 않으랴

名區盡醉古人盃  명소는 모두 취한 고인의 술잔이네.

 

금강산을 이별하다(別金剛山)

金剛風景四時春  금강산 풍경 사계절 봄빛이니

所恨平生早未隣  평생 한은 일찍 이웃하지 못함이네.

明鏡情含難挽客  명경대 정을 머금어도 나그네 붙잡기 어렵고

鳴淵聲咽遠離人  오연담 물소리 멀리 사람을 이별하네.

天仙臺古挑懷幾  천선대의 옛스러움 얼마나 생각할까

萬物相寄入夢頻  만물상의 기괴함 자주 꿈에 보이리라.

別意不忘今日事  이별해도 금일의 일 잊지 않고

更臨後日倍情新  후일 다시 오면 정은 더욱 새롭겠지.

 

배추밭을 지나다(過菘田)

連野菘田第一菜   연이은 들판의 배추밭 제일가는 채소

暫看吟詠已斜陽  잠시 보고 읊조리는데 이미 해는 저무네.

黃黃金葉秋風秀  누런 황금 잎사귀 가을바람에 빼어나고

白白玉莖夜露長  흰 옥 줄기는 밤이슬에 자라네.

多數壯丁荷鍤採   다수의 장정들 삽을 메고 뽑아

嬴錢大價載車行   돈 벌러 온 큰 장사치 차에 싣고 가네.

取來少婦如供旨  가져오는 젊은 아낙네 공물을 바친 듯

堂上惟宜老姑情  당상에선 응당 늙은 시어머니 마음이네.

 

경성역에 내리다(下京城驛)

已過咸鏡下京城  이미 함경을 지나 경성에 내리니

千里行裝在此輕  천리 행장은 여기서 가볍네.

半夜燈明如畫白   한밤중 등불 밝아 대낮 같고

九秋景滿似春濃  석 달 가을에 풍경 가득하여 봄빛이 한창인 듯.

故國運機何處去  고국의 운기는 어디로 갔는가

丈夫心事自然平  대장부 심사 절로 평안하네.

同車十日親而敬  수레를 함께 한 십일 동안 친하고 공경하니

五友方知舊誼情  다섯 벗의 옛 정의를 알았네.

 

남산공원에 오르다(登南山公園)

南山步上漢陽望  남산 걸어서 올라 한양을 바라보니

五百年朝一夢如  오백년 조정이 한바탕 꿈만 같네.

雲樹城中雙鳳闕  구름 낀 나무는 성안의 쌍봉궐(雙鳳闕)이요

蛛絲路上萬人家  거미줄 같은 노상에는 만인가(萬人家)로다.

衣冠晈玄隨時變   의관은 희고 검어 수시로 변하는데

花草碧紅古院斜  화초는 울긋불긋 고원에 비껴 있네.

東亞德明天運受  동아시아의 덕은 밝아 천운을 받았으나

金陵感柳又殷墟  금릉은 버들에 감격하니 또한 은허로다.

 

경성역에서 잠시 추담과 이별하다(京城驛乍別秋潭)

久約同行今不行  동행하자던 오랜 약속 지금 지키지 못해

我離君住意何平  나 떠나고 그대 머무니 뜻이 어찌 평안한가.

有期明日天安驛  내일 천안역에서 만나길 기약하고

分手斜陽舊帝城  저물녘 옛 제성(帝城)에서 이별하네.

遠路一朋千顧誼  먼 길의 한 벗은 천 번 돌아보는 정의이고

孤燈半夜萬端情  한밤중 외로운 등불은 만 가지 정이로다.

早起寒窓遙望北  일찍 일어나 찬 창으로 멀리 북쪽을 바라보니

跫聲已寂但風聲   발자국 소리는 이미 적막하고 바람소리만.

 

천안역에서 추담을 만나다(天安驛逢秋潭)

相分千里更逢隣  이별한지 천리 길에 다시 만나 이웃하니

花似一年再到春  일 년에 다시 봄이 다다른 꽃인 듯.

今日暫爲車上客  오늘 잠시 수레 위의 나그네가 되고

昨宵頻作夢裡人  지난 밤 자주 꿈속의 사람이 되었네.

摻手驛場知誼重   역에서 손을 잡으며 두터운 정의를 알았고

擧盃旅館吐情眞  여관에서 술잔 들며 진정을 토로하네.

天安連袂雖吟樂  천안에서 서로 만나 즐거움 읊조려도

又別奈何錦水濱  또한 금수(錦水)가에서 어찌 이별하리오.

 

송헌이 내 노정의 피로를 위로하다(松軒慰余路憊)

高節靑靑莫與儔   높은 절개 푸르고 푸르러 짝할 수 없는데

秀孤不變四時春  수려하고 우뚝함은 변함없이 사계절 봄빛이네.

危岩恐跌頻摻手   위태로운 바위에서 넘어질까 자주 손을 잡아주고

絶壁嫌顚獨輔身  절벽에선 엎어질까 유독 몸을 보좌했네.

語語同行知誼重  동행했던 일 말하며 두터운 정의를 알았고

戀戀相伴測情眞  서로 짝함을 그리워하며 진정을 헤아리네.

願余難步徐徐向  원컨대 나는 걷기 어려워 천천히 향하리니

心正平生守五倫  마음을 바르고 평생 오륜을 지키시게.

 

강가에서 계은과 이별하다(江上別溪隱)

從遊至老自靑春  청춘부터 종유하며 노년에 이르니

雖隔一山卽比隣  한 산을 격해 있으나 바로  이웃이네.

暫別今時江上驛  잠시 지금 강 가의 역에서 이별하고

應爲他夜夢中人  응당 다른 날 밤 꿈속에 그대를 만나리라.

似隨蹤跡疑看久   발자국 쫓아가듯 오랫동안 바라보고

如聞語言訝顧頻  목소리라도 들은 듯 자주 돌아보리라.

六十光陰流水速  60년 세월은 흐르는 물보다 빠른데

遊期更在菊花新  유람하자는 약속은 새로 국화꽃 필 때라네.

 

백마여관에서 홍고사 한표를 만나다(白馬旅館逢洪高士名漢杓)

白馬相逢白髮新  백마강에서 상봉하니 백발은 새롭고

溫情和氣怳如春   따뜻한 정과 온화한 기운은 흡사 봄날인 듯.

威儀不啻英豪容   체모는 영웅호걸의 모습뿐 아니요

動靜是眞鄭重人  행동은 참으로 점잖고 묵직한 사람이네.

三日共行連袂久  삼일 간 함께 행동하며 자주 자리를 마주했고

兩宵同樂詠詩頻  이틀 밤 같이 즐기며 자주 시를 읊조렸네.

今雖知晩交猶密  지금 늦게 그대를 알았으나 사귐은 친밀하고

談水評山好作隣  산수를 평하며 즐겨 이웃이 되네.

 

금강가에서 송헌과 이별하다(金剛上別松軒)

君我相逢二八春  그대와 나 상봉하니 이팔청춘이요

相從百歲是芳隣  백세토록 상종하니 향기로운 이웃이네.

九秋暫作金剛客  가을날에 잠시 금강산의 나그네 되었고

千里更歸錦北人  천 리길 돌아오니 금강 북쪽의 사람이네.

深慮時時吟處起  깊은 생각에 때때로 일어나 읊조리고

喜顔夜夜夢中頻  기뻐하는 얼굴은 밤마다 꿈에 자주 보이리라.

敎吾責善應多感  착한 일 하라고 권했으니 매우 감사하며

四十年來誼益新  사귄 지 40년 이래 정의는 더욱 새롭네.

 

 

 

다천시고

 

 

 

            雪風難奪天然操

            蘭不隱香全室淸

            盆土如今拳幾積

            三千疆外別區成

 

            눈바람도 천연의 지조를 빼앗기 어렵고

            난은 향기 감추지 않아 온 방이 맑네

            화분의 흙 지금까지 몇 줌이나 쌓았던가

            삼천리 강토 밖에 특별한 구역을 이루었네

 

다천에서 읊다(茶泉吟)

春意異凡木      봄기운이 보통나무와는 다르니

祇宜松竹如      다만 소나무 대나무에 잘 맞네.

飯時多調味      식사 때엔 입맛 돋구는 것 많고

恒飮尙有餘      마시는 것엔 오히려 남음이 있네.

 

恒飯飮茶香不生  항상 먹고 마시는 밥과 차엔 향기도 없는데

頤毛何事老書聲   수염 난 채 어찌 늙도록 책을 읽는가?

臨流黙會寸心坐   흐르는 물 앞에서 묵묵히 마음 모아  앉으니

鑑底無爲萬像明  거울 아래 무위의 만상이 밝네.

 

 

자포자기를 경계하다(戒自棄)

美酒要人還伐性  좋은 술이 사람을 붙드는 것은 도리어 본성을  헤치게 되고

好花誘眼易傷心  좋은 꽃이 시야를 유혹하는 것은 쉽게 마음을 상하게 하네.

心惟活物惟難檢  마음은 본디 살아 있는 것인데 다만  살피기가 어려우니

愼必操身如履臨  신중하게 몸을 다스림을 반드시 살 어름 판을 걷듯 해야 하리.

 

스스로를 경계하다(自警吟)

天生動植人有慧  하늘이 동식물을 내었지만 사람만이  지혜로운데

耳目常危必愼之  보고 들음이 항상 위태로우니 반드시 신중해야하리.

自古先民這裏做  예로부터 선민(先民)은 저 속에서 이루어 졌으니

操心不惰老於斯  조심하고 나태하지 않으면서 여기에서 늙어야하리.

 

 

왜놈이 창씨개명을 강요하다(島夷强喝創氏)

  섬 오랑캐가 강탈해간 것이 삼천리 강토뿐만이 아니다. 오백 년의 예악문물을 남김없이 말살했다고 하겠다. 그러나 오직 빼앗지 못한 것은 곧 성씨의 근본이었다. 성씨의 근본은 윤리의 한 대강(大綱)이다. 그런데 갑자기 강탈을 당하니 비통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島夷奪略, 不惟是三千疆土. 五百年禮樂文物, 可以抹殺無餘. 而惟不見奪者, 乃姓本也. 姓本是彛倫之一大綱, 而遽爾見奪, 痛何可言?)

 

痛乎姓亂古無之  비통하구나 성씨의 난리는 예로부터 없었는데

率獸食人民莫知  짐승 좇아 사람을 잡아먹어도 백성들은 모르네.

木石自依猶勝似  목석처럼 스스로 의지함이 오히려 견디는 듯한데

寧言矢死忍胡爲  차라리 죽기를 맹서해야지 어찌 왜놈이 될 것인가.

 

자긍을 경계하다(戒自矜)

加人一識眼無人  사람이 한 가지 지식을 얻으면 안하무인이 되어

言禰人無知我人   사당에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말하네.

此病在心無善劑  이 병이 마음에 있으면 치료할 약도 없으니

也將聖訓戒諸人  또한 성인의 교훈으로 여러 사람을 경계하네.

 

난세의 행장(亂世行藏)

厲揭宜乎否   임기응변의 처세가 마땅하지 않겠는가

莫知淺且深  그러나 물이 깊은지 얕은지를 모르겠네.

直尋雖不枉  바른 찾음에 굽히지 않으니

苟合豈吾心  남에게 영합하는 것이 어찌 나의 마음이리오.

 

봄을 보내며(餞春)

五十始知難送春  오십 살에 비로소 봄을 보내기 어려움을 아니

祗餘今日謾尋眞   남은 세월 오늘에야 마음껏 참된 즐거움을 찾네.

天時不可人情輓  천시는 인정 어린 만가가락과 맞지 않는데

第待微陽一線新  다만 가는 햇살 한 줄기가 새롭네.

 

봄(春)

眞樂在春誰與俱  참된 즐거움 봄에 있는데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野人不答問樵夫  시골사람 대답 않으니 나무꾼에게 물어보네.

不須彫刻天然態  천연의 자태를 조각할 필요는 없으니

一理通開萬物圖  만물도(萬物圖)에 한 이치가 통해 열렸네.

 

방장산을 오르다(登方丈山)

  대개 사람의 다리 힘은 강하고 약함이 서로 같지 않다. 그러나 한 걸음을 나아가면 곧 한 걸음을 얻게 되고, 또 한 걸음을 나아가면 또 한 걸음을 얻게 된다. 걷고 걸어 점차 올라가면 스스로 멈출 수 없어서, 마땅히 기력이 다하는 폐단이 없을 터이다. 그러므로 힘이 미치지 못함을 어찌 근심할 것인가? 학문도 이와 같으니 열심히 나아가야 한다.

  (蓋人之脚力, 强弱不同科, 然進一步便有一步之得. 又一步亦有一步之得. 步步漸登不能自已, 則宜無氣匱力竭之弊. 何患乎力之不及乎哉. 學亦類是, 勉旃旃.)

 

裏面難看心興會  산 속은 보기 어려우나 마음에 흥이 나고

表儀不動意相通  자태의 위엄 흔들리지 않아 뜻이 서로 통하네.

出塵玩屐登高立   속세 떠나온 나그네 높이 올라와 서니

萬疊煙雲揷一峰  만 겹의 안개구름에 한 봉우리 꽂혀 있네.

 

답동을 방문하여 읊다(訪畓洞吟)

- 방장산의 남은 기슭이다(方丈餘麓) -

四山磊磊與天齊  사방 산은 무더기로 하늘과 나란하고

履低雲深一路迷  신발 아래 구름 깊어 한 길에서 헤매네.

實際桃源知在此  참으로 무릉도원이 여기 있음을 아는데

以何俗杖謾相尋   어찌하여 속세의 지팡이로 함부로 찾는가.

 

회갑날의 유감(甲日有感)

- 을미년(乙未) -

竊念我生今幾年  나의 생애 헤아리니 지금 몇 살이던가

年年增歲又增年  해마다 나이 먹고 또 한 해를 보태었네.

學求未獲心空戁   학문 구함에 얻은 것 없어 마음이 공연히 부끄럽고

食息虛經六十年  먹고 놀면서 헛되이 육십 년을 보냈네.

 

주역을 읽다(讀易)

卦畵變通微妙在  괘가 변통을 그려내니 미묘함이 있고

玩評形外物生新  형상 밖을 살펴 평하니 사물의 생이 새롭네.

此心卽與乾坤合  이 마음은 곧 건곤과 더불어 합해지고

和氣能容萬八春  창기가 능히 만팔의 봄을 용납하네.

 

난 화분에 적다(題蘭盆)

  사람이 사물을 사랑함은 그 물건마다 사랑스러워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대개 난은 향초이기 때문에 옛사람들이 사랑함이 많았다. 그런데 화분의 흙에 심은 것은 사랑하는 바가 남보다 많기 때문이다. 하물며 지금 우리나라 강토가 모두 섬 오랑캐에게 강탈당했음이랴! 그래서 다만 이 한 화분의 의미는 참된 난의 마음에다 옛 나라의 한 삼태기의 흙을 특별히 보존하고자 한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그 흙이다.

  (人之愛物, 非其物物愛而愛之也. 蓋蘭香草, 古人愛之者多矣. 而盆土種之, 所以愛多於人耳. 矧玆東土盡爲島夷所奪, 而祗是一盆, 獨葆舊國一簣土於眞蘭之心. 吾所以愛以其土也.)

 

雪風難奪天然操  눈바람도 천연의 지조를 빼앗기 어렵고

蘭不隱香全室淸  난은 향기 감추지 않아 온 방이 맑네.

盆土如今拳幾積  화분의 흙 지금까지 몇 줌이나 쌓았던가

三千疆外別區成  삼천 리 강토 밖에 특별한 구역을 이루었네.

 

대학을 읽다(讀大學)

乘暮荷歸山更月  저녁에 나무 지고 돌아오니 산은 더욱 달빛 들고

達曉大讀夜新天  새벽까지 대학을 읽으니 밤이 새날이 되었네.

簡心精畜修身劑  정성스런 마음으로 정밀하게 축적함이 수신의 약이니

萬事從知一絡連  만사가 하나로 이어졌음을 알겠네.

 

중용을 읽다(讀中庸)

無物難將天理驗  사물이 없다면 천리를 증험하기 어렵고

非文不可道心傳  문장이 아니면 도심을 전할 수가 없네.

以吾符契毫無間  이것으로 나의 부계로 삼아 조금도 어긋나지 않으리니

餘力誠求五十年  남은 힘으로 오십 년을 성심 다해 구하리라.

 

조선의 매국괴수(朝鮮賣國魁)

倭酋於我共爲讐  왜놈의 두목은 우리 모두의 원수인데

媚賊開門罪益浮  적에게 아첨하여 문을 열어준 것은 죄가 더욱 크다.

那可千秋無正筆  어찌 천추에 바른 붓이 없을 건가?

人人得誅快吾羞  사람마다 매국노를 주살하여 우리 수치를 씻으리라.

 

한양을 추억하다(憶漢陽)

三千槿域長春日  삼천 리 강산 우리나라 긴 봄날인데

詎料今番有此時   어찌 지금의 이런 때가 있을 것을 알았겠는가.

不戒履霜其漸遠  살얼음 밟듯 정치하라는 경계 점차 멀어 졌으니

漢城秋色共人悲  한성의 가을빛을 모든 사람이 슬퍼하네.

 

 

경술년에 읊다(庚戌吟)

年方十六忽閹茂   세월이 16년이 흘러 문득 엄무(戌)년이 되었는데

春蕨無端日日長  봄 고사리 일없이 하루하루 자라네.

糜骨難忘恩澤在   백골이 부서져도 은택을 잊을 수 없어

丹心冲血獨深像   단심의 충혈에 홀로 깊이 상심하네.

 

夷有夏無天不弔  오랑캐만 있고 하나라는 없는데 하늘은 위로도 않고

痛斯難忍所懷長  이것을 통한하니 품은 생각 견디기가 어렵네.

今雖共戴親愉在  지금 비록 함께 한 하늘을 이었으나 부모가 살아 계시니

那得雙全義不傷  어떻게 양쪽을 보존하여 의리를 헤치지 않을 것인가.

 

두견새를 읊다(詠鵑)

聞鵑春夜獨登樓  두견새소리 들으며 봄밤에 홀로 누대 오르니

不寢難堪故國愁  잠 못 이루며 고국에 대한 수심을 참을 수 없네.

所恨同吾何所訴  한스러움 나와 함께 어디에 하소연할 것인가

空山無語月千秋  빈 산은 말이 없고 달빛만 천추에 빛나네.

 

덕수궁의 동원에서 이완용의 시를 보고 속이 상하여 짓다(德壽宮苑見完用詩感傷吟)

自賊其心不類人  스스로 도적 되는 그 마음은 남들과 다르니

千秋義鉞痛中新  천추의 의로운 도끼가 통한 속에 새롭네.

嗚呼彼黍今如是  아아! 저 기장 밭이 지금 이와 같은데

德壽宮前草自春  덕수궁 앞엔 풀들은 절로 봄빛이네.

賣國榮身苟不人  나라 팔아 영달함은 진정 사람도 아니니

春秋筆鉞滿腔新  춘추의 붓 도끼가 가슴 가득 새롭네.

槿區海島分夷夏  무궁화나라 바다 섬, 오랑캐와 하(夏)로 나뉘는데

天地純陰春不春  천지가 온통 그늘지니 봄도 봄빛이 아니네.

 

  이완용의 시에 “일본과 조선을 어찌 따지랴, 두 땅이 한 집 되니 천하의 봄이로세.”라고 하였다.(完用詩:“扶桑槿域何論態, 兩地一家天下春”云)

 

봄날 우연히 적다(春日偶題)

- 기미년(己未)-

槿天風雨遽秦春  무궁화 하늘에 비바람 몰아쳐 갑자기 진나라 봄이 되니

羣物生心感益新   만물의 생기에 감개가 더욱 새롭네.

動植無知猶自若  동식물들은 무지하여 오히려 태연자약한데

奈吾腔血備吾身  어찌하나 내 끓는 피 내 몸속에 있음을.

 

百花千草自爲春  모든 화초는 절로 봄빛인데

但恨槿籬猶未春  다만 무궁화 울타리만 아직 봄이 아님이 한스럽네.

自此春來春不似  이로부터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으리니

那時更見舊王春  언제나 옛 왕조의 봄을 다시 보겠는가.

 

경신년 봄에 한성에 머물다(庚申春留漢城)

願把黃河一滌塵  황하를 들어 먼지를 씻고자 바라건만

劒霜觸目感傷新  서리 같은 검 눈을 찔러 슬픔이 새롭네.

山容水色渾如昨  산 모습과 물빛이 완전히 어제와 같으니

樹樹猶含故國春  나무마다 오히려 옛 나라의 봄을 머금은 듯하네.

 

한강에서 노닐며 절구 두수를 짓다(遊漢江二絶)

春寒尙峭雁驚秋   봄추위 아직 차가와 기러기는 가을인가 놀라는데

百感層生一棹頭  뱃머리에서 온갖 감회가 층층이 생겨나네.

日暮謾挑西望眼   석양에 서쪽을 부질없이 바라보니

蒼天遠遠水空流  푸른 하늘 아득히 강물은 덧없이 흘러가네.

 

江深無底月千秋  바닥없을 듯 강은 깊은데 달빛 천추에 비추고

百草愁生古渡頭  온갖 풀이 수심 자아내는 옛 나루 앞이네.

泛泛孤舟春滿載  둥실둥실 외로운 배는 봄을 가득 실으니

我懷惟溢水同流  내 회포 넘쳐나 물과 함께 흘러가네.

 

임진강가에서 즉석으로 짓다(臨津江上口號)

碧江如練秋波淨  푸른 강은 비단처럼 펼쳐져 가을 물결이 맑은데

一帶特明高麗鏡  한줄기 밝은 빛은 고려의 거울 같네.

寫照丁寧水國開  햇살 비춰 정녕 물나라가 열리니

停笻細玩先天景   지팡이 멈추고 선천의 풍경을 가만히 감상하네.

 

만월대(滿月臺)

  고려의 옛터에는 신봉문(神鳳門) ․ 창각문(閶閣門)이 있고, 문안에는 회경전(會慶殿) ․ 동행각(東行閣) ․ 서행각(西行閣) ․ 송남재(松南齋)가 있고, 재의 우측에는 팔선궁(八仙宮) ․ 팔각관(八角館)이 있고, 그 밖에 차를 마시는 찻집이 있다

  (高麗舊址有神鳳門 ․ 閶閣門, 門外有慶會殿 ․ 東行閣 ․ 西行閣 ․ 松南齋, 齋右有八仙宮 ․ 八角館, 外喫茶店.)

 

月落空臺聞杜鵑  빈 만월대에 달 지고 두견새 소리 들리는데

松南秋色正凄然  송남재의 가을빛 진정 처량하네.

民風世態如今古  풍속과 세태는 옛날과 같은데

雨露不霑高麗天  비이슬도 내리지 않는 고려의 하늘이네.

 

삼가 숭양서원을 살펴보다(奉審崇陽書院)

天高地厚道吾東  하늘 높고 땅 두텁다고 우리나라를 말하며

戴髮人生仰慕同  머리 달린 사람들은 우러러 숭상함이 같다네.

大義難容偏壤小  치우친 작은 땅에서 대의가 용납되기 어려웠으나

千秋芬苾永無窮  천추의 향기는 영원히 무궁하리라.

 

선죽교(善竹橋)

  다리 좌측에는 절의를 세운 사실을 기록한 비가 있고, 비 우측에는 조선에서 표창한 비가 있고, 비 아래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있고, 다리 우측에는 충성의 핏자국이 남아있다

  (橋左立節事實碑, 碑右國朝褒典碑, 碑下下馬碑, 橋右有忠痕)

 

善竹猶靑孤竹春  선죽(善竹)은 오히려 푸르고 고죽(孤竹)의 봄인데

同春千載比爲隣  봄을 함께 하니 천 년이 가까운 이웃이네.

天高大義難容寫  하늘처럼 높은 대의는 그려내기 어려우나

地厚貞忠終不倫  땅처럼 두터운 곧은 충절은 끝내 없어지지 않았네.

印石有光明白日  비석에 광채 있어 밝은 대낮인데

崇碑褒典命斯仁  높은 비석의 표창은 명령이 인자 했네.

崧陽百世英靈在  숭양(崇陽)땅 백세 동안 영령이 남았으니

磵水淸淸不劫塵  개울물 맑고 맑아 먼지를 겁내지 않네.

 

의사 안중근(義士安重根)

三軍不奪有斯人  수많은 군대로도 마음 빼앗지 못할 사람이니

腔血一符常目秦  혈서로 쓴 맹서문 지니고 항상 오랑캐를 노리었네.

白日爭光忠膽大  해와 함께 빛을 다툴 만큼 충성의 담력은 커서

拳中發電打風塵  손에 쥔 권총을 발사하여 바람먼지 일으켰네.

 

북수화(北首花)

天然北首花      천연스런 북수화여

莫向島夷春      왜놈의 봄으로 향하지 말라.

吾恨爾知否      나의 한을 너는 아느냐

槿籬猶未春      무궁화 울타리는 아직도 봄이 아니라네.

 

삼가 송산정사의 운에 차운하다

(謹伏次松山精舍韻)

自然松立自然山  자연히 솔숲이 서서 자연히 산이 되니

厚重宜非造次間  두텁고 장중함이 짧은 세월 아니라네.

誠簣惟勤眞積累   성심껏 삼태기를 부지런히 날라 진적을 쌓으니

貞心不屈惹淸閒  곧은 마음 굴하지 않고 맑은 여유 일으키네.

堂高潤把光風味  집은 높고 매끄러워 풍광의 맛을 지녔고

室暖薰滋霽月顔  방은 따뜻하고 향기로워 맑은 달의 모습이 있네.

長翠難將花葉驗  긴 푸르름은 꽃 이파리로 징험하기 어려운데

春來孰與採薇還  봄이 오니 누구와 함께 고사리를 캐서 돌아올까.

 

왜놈들이 남경을 침공하다(島夷犯南京)

如今陸沈或無前  지금처럼 나라 망한 것 예전엔 없었으니

倭稱皇帝五十年  왜놈들 황제라고 칭한 것이 오십 년이네.

幸有蔣公能奮禦  다행히 장공이 있었다면 떨치어 막았을 터인데

春秋尊攘義當然  춘추의 존왕양이(尊王攘夷) 의리가 마땅하네.

 

나주향교(羅州鄕校)

- 유회(儒會) -

檀箕千載道吾東  단군 기자의 천년 역사라고 우리나라를 말하며

日月倂明仰慕同  해와 달이 함께 밝듯 모두 우러러 숭상하네.

可敬牲儀曾有制  공경스런 희생의 의식 일찍부터 제도가 있는데

僅存半禮尙遺風  겨우 남은 절반의 의례에 오히려 유풍이 있네.

 

泰山高出諸雲集  태산이 높이 솟아 모든 구름 모이고

大海深流萬舶通  대해가 깊이 흘러 모든 배가 통하네.

祗幸斯文終不墜  다행히 유학이 끝내 무너지지 않았으니

天長地厚永無窮  하늘 길고 땅 두텁게 영원히 무궁 하네.

 

영양정사의 원운에 차운하다(永陽精舍原韻)

萬川共照懷中月  모든 시내 함께 밝음은 가슴속의 달빛 때문이고

一室長靑肚裏春   한 방이 오래 푸른 것은 뱃속의 봄 때문이네.

物理推許心自玩  사물의 이치를 받드니 마음이 스스로 완상하고

庭蕉敷葉細生新  마당의 늘어진 파초 이파리 작게 돋아나 새롭네.

 

거경(居敬)

宅心主敬士能居  마음을 집 삼고 공경함을 주인 삼아 선비가 거처하니

仁義棟樑禮智墟  인의를 대들보로 삼고 예지를 터로 삼았네.

一滓聊無眞不僞  한 티끌도 없으니 진실로 거짓이 아니고

百原推極實如虛  모든 근원 끝까지 추구하니 진실로 남김이 없네.

目前兢兢淵深若  눈앞엔 두려운 깊은 못이 있는 듯이 행하고

履低常常氷薄諸  발아랜 항상 얇은 얼름을 밟듯 행하네.

白采甘和容易受  배추는 맛있게 먹을 수 있게 김치 담고

有餘多讀古人書  여유 있어 고인의 서적을 많이 읽네.

 

교남 가는 길에 덕천정을 방문하다

(嶠南行路德川亭)

- 율계(栗溪) 정옹(鄭翁)이 장수(藏修)하던 곳이다 -

  일찍이 율옹(栗翁)이 유학의 중대한 임무를 지고 있음을 듣고, 의문 난 것을 가지고 가서 뵙고 묻고 배워서 유익함을 얻고자 했다. 그러나 조금도 그럴 겨를이 없었다. 마침 이렇게 높은 곳을 오게 되어, 덕의를 뵙고 원하는 바를 듣게 되었다. 유연히 중용에 ‘심(心)’ 운으로 내 마음을 표현한다.

  (曾聞栗翁擔負斯文之重任. 卽擬拜問. 顧傝願益, 汨沒拂脚無暇. 適玆嶠行, 獲拜德儀, 聞可之願. 油然於中庸拈心. 韻以表微忱.)

 

道線惟微逐旋尋  도선이 가늘어서 쫓아가 찾고

眞源覓去去尤深  진원 찾아가니 갈수록 심원 하네.

宏談熟聽消塵累  굉장한 말 익히 들으니 티끌이 사라지고

一髮無間黙會心   한 터럭의 틈도 없이 묵묵히 마음을 모으네.

 

매화 아래의 벽에 적다(題梅下壁上)

不春世界早知春  봄이 아닌 세계에서 미리 봄을 아느니

預奪天工功效新  하늘의 조화를 미리 빼앗으니 솜씨가 새롭네.

心上繡梅從可玩  마음속에 수놓은 매화 완상할 만한데

淸葩萬點發天眞   맑은 꽃이 만개 점으로 천진함을 피워냈네.

 

매화 그림에 적다(題畵梅)

- 병서(倂書) -

  사람이 여러 사물을 사랑함에는 도(道)가 있으니, 마땅히 널리 사랑하여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물이 사랑할 만한 것인가? 사랑과 증오는 정에서 나오는 것일 뿐이다. 어떤 사물에 느낌이 있으면 정이 되고, 그리고 정은 본성에 근본 하여 나온다. 사랑은 이 정에 이르고, 증오 또한 이 정에 이르러서 각자 그 바름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른 마음으로 공부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하는 바는 그 바름을 얻기 어렵다. 지금 저 매화나무는 맑아서 사랑할 점이 몹시 많다. 다만 진토에 심어 놓는다면 비록 훌륭한 매화의 자질이라 하더라도 사랑할 점이 없을 것이다. 지금의 천지가 뒤집힌 것을 보면 한줌의 옛 나라의 흙도 남아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 흙을 그리지 않음은 내가 사랑하는 바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人於諸物愛之有道, 宜非博愛而愛之也. 然則那物可愛, 愛與惡所以情之發爾. 感於物而爲情, 而情本由性而出. 愛低是情, 惡底是情, 而各得其正者也. 然不有正心上工夫, 其所愛也, 得其正難矣. 今夫梅木之淸者, 愛之者, 靡不多有. 但塵土之種, 雖有明梅之資, 無足可愛也. 目今玄黃飜覆, 未有一坏舊國土, 此土不畵, 余所以愛之者是爾.)

 

畵梅成格眞梅若  매화 그려 격조를 이루니 진짜 매화와 같은데

月滿不虧工益嘉  달빛 가득히 이지러지지 않아 솜씨 더욱 훌륭하네.

一點開時幾下手  한 점 꽃을 피울 때마다 몇 번이나 돌보았는가

看看益妙倒枝花  보면 볼수록 더욱 묘하게 가지와 꽃을 드리웠네.

 

학포형이 은거하는 별장에 부치다

(贈鶴圃余兄隱居別業)

  동(洞)을 청학(靑鶴)이라고 이름 한 것은 오래되었다. 사람은 지금사람이고 땅은 옛날의 땅인데 단 하루 만에 만나게 되니, 그 고금의 간격이 몇 천년인지 모르겠다. 몇 천년 동안 땅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속세 밖에서 감추어 있었고, 지금 이후에도 속세 밖에서 감추어 있을 터인데, 다행히도 나의 산인(山人)께서 은거할 별장을 지어 이 땅에다 비장하였네.  대개 운림(雲林) ․ 천석(泉石) 등의 공공물은 마땅히 먼저 얻을 자가 이를 얻어서 스스로 은거한다. 그 이름을 감추면 더욱 드러나는 법이어서 다시 수습하는 것이 좋으리라. 다만 옹(翁)의 뜻은 어떠하신지?

  (洞以靑鶴名, 古矣. 人今地古, 遇如朝暮. 今古相間, 未知幾千載矣. 幾千載間, 地不遇人而藏在塵表. 今而後藏在塵表, 幸有余山人仍作隱居別業, 抑地秘也歟. 蓋雲林泉石公物, 宜先得者得之而身苟隱矣. 莫若隱其名而益著, 更收拾之不如矣. 惟翁意如何.)

 

人生無僞是爲眞  인생이 거짓 없이 이처럼 참됨을 이루니

磵飮淸淸瓢味新  개울물 맑고 맑아 바가지 물맛이 새롭네.

花藥肯添泰雨露  꽃과 약초가 기꺼이 태평의 비이슬을 더하니

心山一部自然春  마음과 산의 일부가 자연히 봄이로세.

 

봄을 보내다(餞春)

無語難堪餞      말없이 전별하기 어려운데

前期歲更新      앞의 세월이 다시 바뀌었네.

一生難再者      일생에서 다시 기약하기 어려운 것은

祗是我靑春      다만 나의 청춘뿐이구나.

 

전참봉 한공을 추도하다(追輓韓公前參奉)

天予天奪或無私  하늘이 주고 빼앗는 것에 조금도 사사로움이 없다지만

爲惜斯仁壽止斯  인자한 사람의 수명이 여기에 그치니 애석하네.

泉閟悠悠難復作   구천은 아득하여 다시 살아나기 어려우니

光山秋色共人悲  광산 땅의 가을빛 속에 모든 사람 슬퍼하네.

 

송산정사에서 수세하며 읊다(松山精舍守歲吟)

- 병자(丙子)년 -

深深黙契重如山   깊고 깊은 묵계는 산보다 무거워서

天度無違一髮間  천도는 한 터럭의 틈도 어긋나지 않네.

爲惜寸陰今始覺  촌음이 아까움을 지금 비로소 깨닫는데

終經夜半歲新還  이 밤의 반을 보내면 새해가 돌아온다네.

 

임회정 생일잔치에서 짓다(林晦亭晬宴賡和)

萬鍾不換一安康  부귀를 편안함과 바꾸지 않는 법이니

修福由人降百祥  복을 닦음도 사람으로 인해 좋은 일 내려오네.

尙德全家無俗味  덕을 숭상하니 온 집에 속된 맛이 없고

崇文古宅露積光  글을 숭상하니 오래된 집에 쌓인 공명 드러나네.

世傳孝友他非寶  효도와 우애 대대로 전하니  남은 보배로 여기지 않지만

趣寓琴書焉用觴  거문고와 글에 취미 있으니 술을  마시겠는가.

惟感劬勞翁意在   오직 부지런함에 노인의 뜻이 있으니

深深寸草報春長  우거진 짧은 풀들 긴 봄을 알리네.

 

정축년 송산정사에서 수세하다

(丁丑守歲于松山精舍)

欲守流光靜認山  흐르는 세월을 지키려고 조용히 산을 보는데

一宵相屬兩年間  한 밤이 두 해의 사이를 서로 잇네.

惟今苟要新知益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식 더함이고

平素敢爲暇日閒  평소 과감한 행동에도 한가한 날을 보냈네.

尋常受業徒添齒  매일의 수업에 다만 나이만 더하였고

四十無聞祇厚顔  사십 나이에 이름도 못 낸 채 얼굴만 두껍네.

差喜寒呼猶得過  겨울의 소리 약간 즐거운데 오히려 지나가니

陽春從此萬邦還  따뜻한 봄이 이로부터 만방에 돌아오리.

 

해바라기(葵花)

- 기미(己未)년 3월 -

苟以忠花稱      진실로 충성화라 불리는데

何須向日開      어찌하여 필히 해를 향해 피었는가.

笑看蜂蝶戱      벌 나비의 장난을 웃으며 보며

謾酌酒三盃   세 잔의 술을 마구 마시네.

 

경암을 읊다(警庵吟)

滿腹誠心在      뱃속 가득 성심이 있어

一生宜有餘      일생에 마땅히 남음이 있네.

祇惟心自警      다만 마음을 스스로 경계하여

多讀古人書      옛사람의 서적을 많이 읽네.

 

人必先誡意      사람은 반드시 뜻을 경계해야지

何須以警居      어찌 필히 거처를 경계하랴.

做爲難盡善      하는 일 진선하기 어려우니

更得審詳餘      다시 상세히 살펴야만 하네.

 

조카를 훈계하다(戒姪子)

允宜性率眞      진실로 성품이 진솔해야 하니

差失卽非人      조금만 어겨도 곧 사람이 아니네.

竹軒遺訓嚴      죽헌(竹軒)공이 남긴 가르침 엄하니

誠祖貽謨新      성조(誠祖)가 물려주신 계책 새롭네.

徒文難必德      단순한 글공부는 덕을 이루기 어렵고

善辯豈爲仁      말만 잘하는 것으로 어찌 인을 이루겠는가.

苟以吾言妄      만일 나의 말을 망령되이 여긴다면

不能堅持身      자신을 견지할 수 없으리.

 

경진년 송산정사에서 수세하다

(庚辰守歲于松山精舍)

爲愛先生年益隆  선생의 연세 더욱 높아짐을 사랑하지만

願言天賜更遲廻  하늘의 내려주심 더욱 더디기를 바라네.

從知來歲康寧漸  새해에는 점차 강녕할 것을 알겠으니

含翠松軒和氣來  푸르름 머금은 송헌(松軒)에 온화한 기운이 오네.

 

삼가 인일시에 차운하다(謹伏次人日詩)

- 칠언절구 1수, 오언절구 1수. 신사년 정월 -

(1)

幸今人日惟康濟  다행히 지금의 인일(人日)을 평안히 보내니

扶植斯文任在躬  유학을 지탱할 임무가 자신에게 있네.

規戒丁寧常在耳  경계의 말씀 항상 귓가에 있어

欲其聞道不爲聾  그 도를 듣고자 귀먹지 않았네.

 

(1)

有誰同樂者      함께 도를 즐길 자가 누구인가

懇懇學眞儒      간절하게 참된 유자를 배우네.

曠土惟人在      넓은 땅에 이 사람이 있어

千秋道不無      천추에 도가 없지 않네.

 

화개(花開)

- 하동(河洞)에 있다. 병자년 봄 정월 -

頭流山盡春長在  두류산에 온통 봄이 영원하여

千載花開洞不秋  천년 동안 화개동엔 가을이 없다네.

百里耽香非浪跡  백 리 길 향기 찾아오니 어지러운 자취 아닌데

吾遊敢擬昔人遊  내 유람을 감히 옛사람에 견주네.

 

쌍계사(雙溪寺)

- 서쪽에 세이암이 있다(西有洗耳庵) -

擎石爲門鎭到頭  바위를 받들어 문을 삼아 입구를 눌렀고

先賢遺躅尙今留   선현이 남긴 자취 지금까지 남아있네.

寺慊近俗雙溪合  절은 세속과 가까움을 꺼려 두 개울이 합쳐지고

庵下染塵洗耳流  암자는 세속을 싫어해 귀를 씻는 물길이 있네.

客來只詠詩三軸  나그네가 와서 다만 시 세 두루마기를 읊는데

仙去空餘鶴一樓  선인은 떠나고 부질없이 학일루(鶴一樓) 남아 있네.

禪房懸月天然照  선방에 걸린 달은 천연스레 비추어

千古淸名永不休  천고의 맑은 이름 영원하리.

 

동정호(洞庭湖)

- 악양(岳陽)에 있다 -

東望無東只有山  동쪽을 바라보니 동쪽은 없고 산만 있는데

楚頭吳尾隔斯間  초(楚)땅 머리와 오(吳)땅 꼬리가 격해 있네.

自古文章多絶作  예로부터 문장에 뛰어난 작품이 많아

洞庭風月不曾閒  동정호의 풍월은 한가한 적이 없었네.

 

봉황대(鳳凰臺)

- 호수의 북쪽에 있다 -

鳳凰臺上有神仙  봉황대 위에 신선이 있는데

不識臺名幾許年  누대 이름 몇 해나 지났는지 모르네.

鳳去臺空名宛在  봉황 떠난 누대는 비어 이름만 남았으니

悠悠世事已先天  덧없는 세상일은 이미 옛날이네.

 

노전(蘆田)

蘆田何事碧山深  노전(蘆田)은 어찌하여 푸른 산 깊이 있는가

訪鶴山人枉貴心  학산인(鶴山人)을 찾아오니 귀한 마음 공손하네.

仙駕悠悠那可問  신선 수레는 유유하여 어떻게 물어보겠는가

白雲流水杳難尋  흰 구름 흐르는 물 아득하여 찾을 수 없네.

 

정산인의 별거에 적다(題鄭山人別居)

- 구례(求禮) 방장산(方丈山)에 있다 -

百里相逢若有緣  백 리 길의 상봉이 인연이 있는 듯하여

白雲深處暮炊然  흰 구름 깊은 곳에 저녁연기가 나네.

那不綢桃煩客杖  어찌 복사꽃을 감추지 않고 지팡이 번거로운가

靑山四合別開天  푸른 산이 사방으로 합쳐져 별천지라네.

 

한가하게 지내다(閒居)

  무자년 봄에 악양(岳陽) 시목동(柿木洞)으로 들어가 소요하며 즐겼다. 전날 족형  금하(琴下)와 동반하여 노전(蘆田) 심점(心點)에 갔는데 거처할 만했다.

  (戊子春, 入于岳陽柿木洞, 逍遙自適. 前日, 與族兄琴下同伴于蘆田心點, 可居.)

 

山接惟可樹爲巢  산이 접하여 오직 나무로 집을 이루었는데

塵脚何煩物外交  속세의 발길 어찌 물외의 교유를 번거롭게 하는가.

開戶明光來素月  열어놓은 문은 밝은데 흰 달빛이 들고

汲泉新味掛寒瓢  길러온 샘물은 맛있는데 찬 바가지가 걸려있네.

淸露池邊濃蓮葉  연못가의 맑은 이슬은 연잎에서 짙고

微風園裏聽松梢  동원의 미풍소리 소나무 끝에서 듣네.

以吾今日時如遇  나하고 오늘부터 때때로 만나자고 하지만

器小無包奈斗筲   그릇 적어서 포용 못하니 작은 국량을 어찌하리.

 

화첩에 적다(題畵帖)

千花百草正融融  온갖 꽃과 풀이 진정 화락하게

葆得長春一帖中   한 첩 가운데 긴 봄을 보전하여 얻었네.

若有天工如是造  마치 조물주 조화를 부린 듯하여

其何桃李片時紅  그 어찌 복사꽃 오얏꽃의 한 때의 붉음에 비기랴.

 

붕당을 읊다(朋黨吟)

周而惟不比      두루 화합하고 편협하지 말라는

聖訓益精微      성인의 훈계 더욱 정미한데.

一自朋論後      한 차례 붕당론 이후

東邦無是非      동방에는 시비소리가 없네.

 

同道異論宜不可  도를 같이 하며 논의를 달리함은 옳지 않은데

蘭生東國恐無眞  동국에 난이 자라났으나 참됨이 아닌 듯하네.

東云東可西云可  동인은 동인이 옳고 서인은 서인이 옳다하나

我是朋論以外人  나는 붕당론 밖의 사람이네.

 

정월 대보름날 밤에 달을 바라보다(元宵望月)

東望迢迢眼界平    동쪽을 바라보니 아득하게 시야가 고르고

明光忽透一輪成  밝은 빛 갑자기 통하여 한 둥근 바퀴를 이루네.

太滿如斯因自戒  이처럼 달 둥글어 스스로의 경계로 삼으니

晴雲無礙夜俱明   맑은 구름 막힘없어 밤이 온통 밝네.

 

부여에서 송학리의 족제 우섭에게 부치다

(扶餘, 寄松鶴里族弟遇涉)

惠我丁寧感族誼  나에게 베푼 은혜에 정녕 친족의 정의가 감개한데

瓊琚況復賑斯行   하물며 이 여행에 귀한 여비까지 베품이랴.

仙扉云遠心相近  신선의 사립문은 멀다지만 마음은 서로 가까운데

一髮難容兩地情  조금도 두 사람의 정을 나누기가 어렵네.

 

惇誼深深難可忘  돈독한 정의 깊어서 잊기 어려운데

如何更作一番行  어떻게 다시 한 번의 행차를 마련할까.

川原山澤猶重疊  강과 들과 산택이 첩첩이 쌓여

不及肚中眷縮情   마음속의 쌓인 정을 보낼 수가 없네.

 

만은의 벽에 적다(題晩隱壁上)

世降宜其祿不干  세상이 어지러워 마땅히 그 녹봉을 구하지 않으니

隱居耕讀兩兼難  은거하여 밭 갈고 독서함에 양쪽을 겸하기 어렵네.

萬鍾寧奪林泉樂  부귀로도 어찌 임천(林泉)의 즐거움을 빼앗으리

一飯猶能口腹歡  한술 밥에도 배 따뜻한 기쁨이 있다네.

珍藏書籍由來久  소중히 간직한 서적은 유래가 오래인데

淵畜圖籤自此寬  깊이 쌓아둔 도첨(圖籤)은 이로부터 많으리라.

家雖淸素文爲富  집안은 비록 맑게 비었지만 글이 풍부하여

矣矣多錢猶未安  많은 돈이 오히려 편안하지 못하네.

 

무인년 재경회를 송산정사에서 하다

(戊寅再庚會于松山精舍)

盛炎一曝煮庚時  모진 더위 한차례 쏟아져 경시(庚時)를 덥히고

繞郭煙生日亦遲  성곽 두르며 연기 피는데 해는 또한 더디네.

伏地陰金宜畏縮  땅에 서린 가을 기운에 마땅히 외축되니

不干霜漸必無疑  서리를 바라지 않아도 반드시 내리리라.

 

삼가 선선생을 애도하다(伏輓先先生)

喬嶽猶輕吾道重  높은 산도 오히려 가벼운데 우리 도는 무겁고

先生所佩玩誰誰  선생의 지닌 바를 누구누구가 애완하나.

大原出後因相續  큰 들로 나온 후 서로 이어지니

天理固然難可違  천리는 굳건하여 어기기가 어렵네.

 

설날 아침(正朝)

至誠無息是眞天  지극한 정성에도 말없는 것이 진정한 천리인데

一理循旋孰使然  한 이치를 좇아 도는 것 누가 그리 시켰는가.

湯餠只惟添齒愧  탕병을 앞에 두고 다만 나이 더한 것 부끄러운데

兒孫總列拜新年  아이와 손자들 모두 열 지어  새해 인사를 올리네.

 

영양정사에서 수세하며 읊다(永陽精舍守歲吟)

寡謏徒生何有益   쓸모없는 생에 무슨 이익이 있으리오

撫躬自惜只增年  몸 어루만지며 나이만 먹는 것을 스스로 애석해하네.

以吾覺非今差晩  내 스스로 잘못을 깨닫지만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

五十光陰在眼前  오십의 세월이 눈앞에 있네.

 

정월 초하루(正朔)

盈虛一理妙然深  차고 비는 한 이치의 묘함이 깊어서

晦朔以天通古今  회삭의 날로 고금에 통하네.

推詳歷數如視掌  역수(曆數)를 상세히 따져봄이 손바닥 보듯 하니

統乎六合契吾心  육합(六合)에 통합되고 내 마음에 합치 되네.

 

근본에 힘쓰다(務本)

領擧裘隨常有經   옷깃을 치키면 갖옷이 따름은 항상 조리가 있으니

行行萬里出由扃   만리를 가는 것은 문을 나섬으로부터 비롯되네.

學之最功斯爲大  학문의 가장 큰 공은 이런 점이 가장 크니

聖訓丁寧汗簡靑  성인의 훈계 정녕 한간이 푸르네.

 

건곤(乾坤)

陰陽妙合方生物  음양이 묘하게 합쳐져 생물이 생기고

理氣源流各受形  이기(理氣)의 원류에 따라 각자 모습을 받았네.

大始推知因自得  대시(大始)를 미루어 깨달음을 이로 인해 자득하고

闇通神氣啓心靈  신기(神氣)에 묵묵히 통하여 심령을 계발 하네.

 

동지(冬至)

坤陰受胎細生新  곤음(坤陰)이 수태하니 작은 생명 새롭고

一氣無形闇透眞  한 기운이 형체 없이 남모르게 진기에 통하네.

微效益知君子長  미효(微效)를 더욱 아니 군자의 큼이오

心天養得太和春  심천(心天)을 길러 얻으니 태화의 봄이로세.

 

우리의 도(吾道)

綜合天人理不殊  하늘과 사람이 종합되는 이치가 다르지 않으니

萬科惟一厥中求  만 가지 조목의 한 이치를 그 가운데서 구하네.

百千經劫平常在  온갖 일을 격음은 평상시에 있는데

行道鮮人道豈無  도를 행하는 조선 사람에게 도가 어찌 없겠는가.

 

가을밤(秋夜)

萬樹楓紅秋色生  만 그루 단풍 붉어 가을빛 생겨나니

看山益愛養心淸  산을 보는 것 더욱 사랑스러워 마음이 맑아지고.

披雲高出團團月  구름 열고 높이 솟은 둥근 달이 뜨니

大驚夜昏天下明  어두운 밤에 천하가 밝음에 몹시 놀라네.

 

방장산의 유거(方丈幽居)

- 갑신년 -

山明水麗智異東  산 밝고 물 수려한 지리산 동쪽

泉石怡然鄕土同  샘과 바위들 기쁘게도 향토가 같네.

縱使凡全生楡界  가령 몸 온전히 변방에서 산다 해도

忍堪草偃尙秦風  풀들 누워서 진나라 바람을 향함을 어찌 참으리.

靑山裏面尋難繹  푸른 산은 안팎을 찾아도 찾기 어렵고

活水源頭會不窮  맑은 물의 근원은 보려 해도 끝이 없네.

憂樂兩忘眞畜味  근심과 즐거움을 다 잊으니 참으로 묘미가 있어

春光滿載一家中  봄빛이 한 집안에 가득 하네.

 

하남서당(河南書堂)

  등촌(登村)에 있다. 터를 잡고 신축하여 그 당에 이름을 붙였는데, 또한 그 동네의 이름을 지어 인전리(仁田里)라고 하였다.

  (在登村. 占基新築, 名其堂. 又名其洞曰仁田里.)

 

缺界尋眞途道遲  이그러진 세상에서 진리 찾아가는 길 더디어

斗筲志業更無爲   작은 국량의 지업(志業)이 다시 무위가 되네.

秦春不入花猶在  진의 봄이 들어오지 않아 꽃이 아직 남아있고

西歷倒行蓂自違  서력이 거꾸로 행하니 명협이 스스로 어긋났네.

萬壑整齊心上檢  만 골짜기 가지런해 마음으로 점검하고

千峰會合掌中推  천 봉우리 모이어서 손바닥으로 헤아리네.

山吾黙契人知少   산과 나의 묵계를 남이 아는 것 적고

好面相須雨霽時  좋은 모습 서로 기다리니 비 갤 때이네.

 

미국과 소련이 왜구를 물리치고 거짓으로 조선독립이라 이름하다

(美蘇逐倭寇假名朝鮮獨立)

  서울 이북은 소련이 관할하여 김일성이 다스리고, 서울 이남은 미국이 관할하여 이승만이 다스리게 되었다. 통한스럽다! 우리나라가 차례로 왜놈에게 강탈을 당하여, 치욕이 군부와 얼자에게까지 미치고, 신하의 열혼과 충혼이 지하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한 지 삼십 육 년이다. 경술년부터 을유년까지 작은 터럭까지 빼앗아가는 가혹한 정치를 다하였다. 유사 이래 백성이 나서 자신의 성씨를 쓰지 못하고, 자신의 양식을 먹지 못하고, 오직 입고 먹는 것이 곧 죄였으니, 역사에 자신의 역사가 있겠는가? 나는 이런 까닭에 왜놈들이 강제로 창씨를 강요하던 날 통분하여 “목석처럼 무지하여 오히려 좋게 생각하는데, 어찌 죽기를 맹서해야지 차마 오랑캐가 되리오.”라는 구절을 읊었다. 억지로 참으며 통한을 머금으니 강혈이 모두 붉어졌다. 다행히 지금 우리 조선이 다시 선다고 하니, 명분이 정당하여, 미처 죽지 못한 사람의 통한에 약간 위로가 된다.

  (京以北, 蘇管領而金日成主之. 京以南, 美管領而李承晩主之. 痛矣, 我國遞爲島夷所奪, 辱及君父孽子. 被臣子烈魂忠魂泣血地下, 今三十六年矣. 自庚戌至乙酉, 細毛苛政猶歇後. 有史以來, 民之生也, 不姓其姓, 不食其食, 而惟衣食是罪者, 史有其史乎. 余以故島夷强喝創氏日, 痛吟. 木石無知猶勝似, 寧言矢死忍胡爲之句. 强忍含痛而腔血盡赤矣. 幸今我朝鮮更立云. 名則正矣. 小可慰. 未亡人之通恨乎)

 

生靈無罪生於罪  생령이 죄도 없이 죄에서 태어나

生若不生三十年  탄생이 태어나지 않음만 못한 삼십 년이었네.

自此有生還有世  이로부터 삶이 있으니 또한 세상이 있어

槿春更看漢江邊  무궁화의 봄을 한강 가에서 보네.

 

타향살이 삼 년에 옛 마을의 복사꽃과 버들을 추억하다

(僑居三載憶舊巷桃柳)

  금안동(金鞍洞)은 나의 선조 문정공(文靖公) 설재(雪齋) 정가신께서 창건한 곳인데, “골목의 버들과 동원의 복사꽃 몸소 심으니, 봄이 오니 응당 주인이 돌아옴을 기다리네”라는 시구가 남아있다.

  (金鞍洞, 我先祖文靖公虛齋所創, 而有詩巷柳園桃親手種, 春來應待主人還之句.)

 

天包地含同雨露  하늘이 싸고 땅이 머금어 비이슬을 같이 하니

他鄕一樹萬枝春  타향의 한 그루 나무 만 가지에 봄이네.

舊園桃柳今猶在  옛 동원 복사꽃과 버들은 지금도 남았는데

因作山中不老春  그로 인해 산중의 불로춘을 짓네.

 

퇴도선생 언행록(退陶先生言行錄)

- 절공복유(竊恐伏惟) -

春暖天晴日      봄기운 따뜻하고 하늘 맑은 날

物生非强然      만물이 자람은 강제가 아니네.

言行由我道      언행은 나의 도(道)로부터 유래하니

鳶飛魚躍淵      매가 날고 물고기 뛰는 깊은 못이네.

 

삼가『기언』을 열람하다(奉覽記言)

기언은 미수 허목선생의 문집이다. 그의 도학과 문장이 모두 이 책에 실려 있다. 진실로 말학(末學)이 감히 헤아릴 수 있는 바가 아니지만 글의 뜻을 대략 이와 같지 않나 하고 두렵게 생각해볼 뿐이다.

(記言, 眉叟先生集. 其道學也, 其文章也, 盡載此書. 固非末學之所敢窺測, 而文義槪猶是爾, 竊恐伏惟.)

 

粹然眞正味      수연하여 진정 참된 맛이 있는데

不苟飾綃紗       구차히 비단으로 꾸미지 않았네.

塵脫山如玉      티끌 없는 산은 옥과 같고

謄晴梅始葩       맑게 그린 매화 비로소 꽃이 피었네.

 

대동사 예성식운으로 읊다(大東祠禮成韻)

謹將祀典享春秋  삼가 제사절차로써 봄가을에 제향하니

名節東邦不讓頭  뛰어난 예절로 동방에서 선두를 양보하지 않네.

爵禮燭明三獻坫   작례에 촛불이 삼헌(三獻) 올리는 대[坫]를 밝히니

漏聲鍾報五更樓  물시계 종소리 들리는 삼경의 누대이네.

英靈儼若千年在  영령들 엄숙하게 천 년 세월에 있고

德性薰陶百世流  덕스러운 훈도는 백 세대에 흐르네.

秉彛由中同景仰  윤리 지키는 일 마음으로부터 함께 우러르니

賢勞有暇盍簪遊   현부가 근면하니 한가한들 어찌 부인이 놀리오.

 

봉공을 추도하다(追悼奉公)

天然賦稟厚於公  천연스레 내린 품성이 공에게 두터워서

實履河陰孝悌風  진실로 하음(河陰)의 효제의 유풍을 실천했네.

恒言不出規矩外  항상 하는 말은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아

遺法惟新渾室中  남긴 법도 온 집안에 새롭네.

 

임회정을 추도하다(追悼林晦亭)

公惟知我我惟知  공은 나를 알고 나도 공을 아니

心府天然玉色輝  마음이 천연하게 옥빛으로 빛났네.

奄棄茶奉雖可悼  다봉(茶奉)으로 버려졌음은 슬퍼할 만하지만

厭看時事莫如歸  시사를 살펴보면 돌아옴이 나았네.

遺言在室家風暖  유언이 집에 있어서 가풍이 온화하고

餘蔭覆庭蘭茁肥  남은 음덕 마당을 덮어 난의 줄기 살졌네.

地下必逢三義魂  지하에서 반드시 세 의로운 혼을 만나리니

讐冠驅逐快談之  발분하여 적을 쫓던 일 유쾌히 말하리라.

 

김초운 형의 초도일에 화답하다

(金兄樵雲初度日和)

勤儉着脚瑞原春  근검을 발에 붙이니 서기 어린 들에 봄이 오고

孝悌家聲動四隣  효제하는 가풍은 사방 이웃을 감동 시키네.

序立多男翻彩舞   차례로 선 많은 아들들 색동옷 입고 춤추니

孝心滿袖慰雙親  효심이 소매에 가득하여 양친을 위로 하네.

 

강씨추원제(姜氏追遠齊)

仁基孝礎起心頭  인의 터와 효의 주춧돌에 마음을 일으키니

別界有天山更幽  별세계의 하늘 있어 산이 더욱 그윽하네.

墓道千年神可衛  묘도는 천년 동안 신령이 호위하고

齊名百世水同流  나란한 이름들 백세 동안 물과 함께 흐르네.

樑含好月無塵燭  대들보는 좋은 달빛 머금으니 속세의 초가 필요 없고

棟立淸風不老秋  용마루는 맑은 바람 속에 서서 늙지 않는 가을이네.

陟降英靈多錫類  오르내리는 영령들이 내려주는 것 많으니

福源滿室亦無求  복의 원천 제실에 가득하여 다시 구할 것이 없네.

 

송석정의 원운에 차운하다(次松石亭原韻)

隱居不要苟求名  은거에는 명리를 구할 필요가 없으니

亭子如今子孝成  정자가 지금 자식의 효성으로 이루어 졌네.

摠理煙雲園裏會  모든 안개구름을 이끄니 동원에 모이고

謾將山水匣中鳴   마음껏 산수를 이끄니 거문고 소리 울려나네.

簞心供飯秋新熟  단사표음의 마음으로 공양하니 새 곡식 추수하고

瓢味宜晨夜啓明  바가지의 물맛은 새벽이 좋으니 밤에 새벽을 여네.

朝出檢知多少事  아침에 나가 크고 작은 일들을 점검하고

案書猶帶暮歸情  책상의 서적이 있어 저녁에 돌아오는 정이 있네.

 

이긍재의 원운에 차운하다(次李兢齋原韻)

鑑不爲人本賁明  성찰은 남을 위함이 아니니 큰 밝음에 근본하고

也將勤愼戒平生  또한 근신으로 평생을 경계하네.

福難易獲勤家積  복은 쉽게 얻지 못하니 부지런한 집에 쌓이고

德必無形善地盈  덕은 반드시 형태는 없으나 착한 곳에 넘치네.

蘭畜庭心和氣暖  난이 마당 중앙에 자라 온화한 기운 따뜻하고

樑含春味渾覃淸  대들보는 봄기운 머금고 온통 맑음을 펼치네.

恁他兢底多能了  이러한 그의 신중함은 능히 이룸이 많고

臨履如常用摯誠  항상 행하는 일에 지성을 다하네.

 

약헌의 원운에 차운하다(次藥軒原韻)

環今民病沈  지금 백성의 병이 깊은데

醫藥正無名  치료할 약은 진정 이름도 없네.

惟茲治心劑   오직 여기에서 마음을 치료할 약을 조제하니

妙然一室明  묘하게 한 방이 밝네.

 

이만은의 생일시에 차운하다

(次李晩隱晬宴韻)

由生如再舊惟新  다시 태어난 것 같아 옛날이 새로운데

孝感非他感厥親  효도의 감개는 다름 아닌 그 부모를 감동케 했네.

繞砌芬華孫葉富   섬돌 두른 향기로운 꽃엔 자손 이파리가 많고

渾家光景子枝春  온 집안의 햇살엔 자손 가지의 봄이네.

淸閒不讓安貧宅  맑은 여유를 사양하지 않는 안빈낙도의 집안이고

荒穢難浸種德人  티끌도 침범 못하는 덕을 심은 사람이네.

天賦若私豐有得   하늘이 내린 것 사사로운 것 같이 풍부하게 얻었고

五福兼全衛一身  오복을 모두 지니고 한 몸에 둘렀네.

 

초운의 원운에 차운하다(次樵雲原韻)

隱居晩卜小溪東  은거지를 만년에 작은 개울 동쪽에 정하니

流水桃花網裏紅  흐르는 물의 복사꽃 그물 속에서 붉고.

日暮鋤懸晉代月  석양에 호미 쥐니 진(晉) 때의 달이 걸려있고

夜深案潔董生風  밤 깊어 책상 정결하니 동생(董生)의 바람이 부네.

雲林畜景茶園富  구름숲에 햇살 쌓여 차밭이 부유하고

芋栗供盤藤屋豊  토란 도토리를 쟁반에 올리니 등나무 집이 풍요하네.

這裏靑山心與會  저 속의 푸른 산 마음에 맞으니

春光獨葆氣融融   봄빛이 홀로 봄기운 화락함을 지녔네.

 

耕雲採取自西東  구름 속에서 밭 갈고 채취함을 서쪽 동쪽에서 하는데

只怕春光履底紅   다만 봄빛이 발아래서 붉은 것이 두렵네.

馴鶴有餘吟白日  학을 길들이며 여유 있어 대낮에 읊조리고

尋芳無事步淸風  방초 찾으며 일없어 막은 바람 속을 걸어가네.

琴歌邀月天心會  거문고노래로 달을 부르니 천심과 합쳐지고

瓢吟滌塵山味豐   물마시고 읊조려 속기를 씻어내니 산의 정취 풍부하네.

聊訪仙扉松下問  신선의 사립문을 방문하여 소나무 아래에서 묻는데

但聞招隱一聲融  다만 은자를 부르는 한 소리의 화락함을 듣네.

 

이두헌의 벽에 적다(題李斗軒壁上)

淸軒依斗碧山深  맑은 창 북두성에 의지하니 푸른 산이 깊고

屋子天然主宰臨  집은 천연스러워 주재자가 임했네.

農圃除荒惟種福  농포를 가꾸어 오직 복을 심고

良田鋤穢謾揮金   양전을 김매어 금빛을 휘날리네.

松陰着地因風步  솔 그늘 땅에 드리워 바람 속을 걸어가고

蘿影透門邀月吟  담장이 그림자 문에 비쳐 달을 불러 시를 짓네.

雲物幾何翁自得  좋은 경치 어찌 노인께서 혼자 얻었는가

春光富有却虛心  봄빛 부유하니 도리어 마음을 비웠네.

 

소나무 사랑(愛松)

愛松靡特愛其松  소나무 사랑은 그 소나무만 사랑함이 아니네

雪幹蒼髥化伏龍  눈 쌓인 줄기와 푸른 수염 서린 용이 되었네.

高節亭亭長百木  높은 절개 정정하여 모든 나무의 장이니

繁華桃李不能容  번화한 복사꽃과 오얏꽃을 용납할 수 있으랴.

 

무궁화 사랑(愛槿花)

扶桑忽奪槿區春  왜놈들이 갑자기 무궁화 세상의 봄을 앗아가니

蕭艾皆春獨不春  쑥대들은 모두 봄인데 홀로 봄이 아니네.

三十六年花猶未  삼십 육년 동안 꽃이 피지 않았는데

一枝更看漢城濱  한 가지의 꽃을 한성의 물가에서 다시 보네.

 

하남서당에서 여러 좋은 벗들에게 주다

(河南書堂與諸益)

爽氣山明閒夜月  상쾌한 기운의 산이 밝아 밤 달이 한가롭고

眞心磵澈霽曉天  진심 어린 개울 맑아 새벽하늘 개었네.

以何雲物時來照  무슨 풍광이 때마다 와서 비추는가

來去元非所召然  오고 가는 것 원래 부른 바가 아니네.

 

 

금하 족형을 애도하다. 자는 행숙이다

(哭輓琴下族兄, 字行淑)

服儒十世錦之陽  금강의 북쪽 열 세대 동안 유생의 옷을 입으니

仁里平安一草堂  인자한 마을의 평안함이 한 초당에 있네.

親執琴書從藏匣  몸소 지녔던 금서(琴書)는 갑 속에 간직되고

手裁花木自生香  손수 심었던 꽃나무에선 절로 향기가 나네.

英靈在室靑山靜  영령은 방에 있는데 청산은 조용하고

咳唾生風白日長  기침하는 바람 속에 대낮이 기네.

物不副誠誠不腆   제물은 성심을 돕지 못하니 많이 차리지 않았고

祗將流水奠淸觴  다만 흐르는 물로 맑은 술잔을 올리네.

 

세상을 탄식하다(歎世吟, 倂小序)

  세상이란 넓은 하늘 아래 백성들이 거주하는 장소이다. 옛날에 목우인(木偶人)이 있었고 또한 토우인(土偶人)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인형이 된다면 차라리 목우인이 되어야지 토우인이 되지 말아야 함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도리어 목우인이 토우인에게 기롱을 당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밝은 햇살만 나오고, 비가 아직 내리지 않아서 그런 것인가? 만약 은혜로운 비가 쏟아져서 흙이 되고 진흙으로 무너져서 흙덩이와 섞여버린다면, 어떻게 목우인의 우측에 나란히 설 수 있겠는가? 지금의 온 세상을 보면 비가 오기 전이라서, 토우인들이 야소(耶蘇, 기독교)를 배워서 그 근본에 보답할 줄 모르고, 천주(天主)에 의지하여 하늘 두려운 줄을 모른다. 예의염치는 모두 월인(越人)이 장보(章甫)를 걸치고 관(冠)을 쓴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 장보는 흡사 목우인이 기롱을 당하는 것과 같은데, 아직까지 항변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달콤한 비가 쏟아지는 은혜로운 교화의 날을 보겠는가?

(世者, 所以普天之下, 黎民所居也. 古者, 有木偶人, 亦有土偶人. 與其同是爲偶, 寧爲木偶人, 不可爲土偶人者, 明矣. 而反以木偶人見譏於土偶人, 抑何哉? 杲杲出日, 雨未下而然也. 苟惠霈下降, 塗成泥壞, 與土壤同處, 則以何比立於木偶人之右乎哉? 目今擧世, 雨未前, 土偶人學耶蘇而不知其報本, 侍天主而不知其畏天, 禮義廉恥盡爲越人章甫而冠. 其章甫者, 恰似木偶人之見譏, 而未嘗有言拒者, 那可以見甘霈惠化之日乎?)

 

出言必稱天無命  말을 하면 반드시 천명이란 없다고 하며

利舌云工大亂眞  날카로운 혀로 교묘하게 참됨을 크게 어지럽히네.

縱使土氓因作孼  설령 우매한 백성을 얼자로 만들 수는 있겠지만

千秋不犯讀書人  천추에 독서인을 범할 수는 없으리라.

 

나주정씨계세도를 읊다(羅州鄭氏系世圖吟)

厥始渾如天種樹  그 시원(始源)은 완전히 하늘이 심은 나무 같은데

開花敷葉自然春  꽃 피고 잎이 나니 자연히 봄이네.

彼枝此幹同元氣  저 줄기와 가지는 같은 원기인데

萬顆齊垂一樣新  만 과실이 나란히 드리워 한 모습이 새롭네.

 

회포를 펴다(敍懷)

晴窓春夢我先知  맑은 창가의 봄꿈을 내가 먼저 아니

錦峀淸風白日輝  비단 빛 산굴의 맑은 바람 속에 햇살이 밝네.

山靜無言明月合  산은 조용히 말없는데 밝은 달빛 합쳐지고

物生如繡製針微  사물들 자수처럼 생겨나니 바느질 솜씨 미묘하네.

筆心妙化龍頻屈  붓끝의 묘한 조화에 용이 빈번히 서리고

簞味惟新秋正肥  밥맛이 새로우니 추수가 비옥하네.

園蓄幾何人不識  전원에 간직된 것이 얼마인지 남들은 모르는데

千花百草恁芳菲  수많은 화초들의 향기가 넘치네.

 

포은선생(圃隱先生)

道不立人人立道  도가 사람을 세우는 게 아니라 사람이 도를 세우니

一心四大五常頭  일심으로 사대오상(四大五常)의 앞에 있네.

東方千載先生在  동방의 천년에 선생이 계셨으니

善竹淸風高麗秋  선죽교의 맑은 바람 부는 고려의 시절이었네.

 

면암선생(勉庵先生)

吾道在身忠義重  우리의 도(道)가 그 몸에 있어서 충의가 무거운데

那堪屈腰扶桑頭  어찌 왜놈의 땅에서 허리를 굽힐 수 있겠는가.

海天渺邈東無路  바다 하늘은 아득하여 동쪽 길 없는데

白日照心明滿再  밝은 해 마음 비추니 밝음이 다시 가득하네.

 

파리장서 면우선생(巴里長書, 俛宇先生)

夷有夏無難忍痛  오랑캐만 남고 중화는 망하여 고통을 참기 어려운데

一言觸目萬邦人  한 마디 말에 눈길 주는 만방의 사람들.

筆華燦爛經天地  붓끝 찬란하게 천지를 지나니

大義千春春復春  천추의 대의 봄과 봄으로 이어지네.

 

조선열사 이준(朝鮮烈士 李儁)

痛言一發動天地  통한의 말 한번 내서 천지를 움직이고

大叱讐寇奸閼心  원수의 왜놈들의 간악한 마음을 질타하였네.

披出義肝何所訴  의로운 간담을 꺼냈었으나 어디에 호소하나

網常故國暮春深  강상의 고국은 저무는 봄만 깊었네.

 

조선의사 윤봉길(朝鮮義士 尹奉吉)

衝天義勇滿身流  하늘을 찌르는 의로운 용기 온몸에 흘러

爆殺讐寇渠在頭  원수의 왜놈을 폭살하는데 어찌 앞장을 섰던가.

快雪綱常千古恥  강상의 우리나라 천년의 수치를 통쾌하게 설욕하고

九泉痛哭講春秋  구천에서 통곡하며 춘추의 역사를 강론하네.

 

충신 민영환(閔忠臣泳煥)

立朝遽是再中人  입조하여 나라를 중흥시킬 사람이었는데

哀我臣民自辱身  우리 백성들은 스스로 희생함을 애도하네.

忠刃堪傷忠義血  충성의 칼날 충의의 피를 상하게 하니

竹生天地綱常春  대나무 천지에 돋아서 강상(綱常)의 봄이네.

 

늙은이의 회포(老懷)

厚土能容此一身  두터운 땅이 이 한 몸을 능히 용납하여

生長倫彛渾然春  우리 도덕 속에서 생장하니 혼연히 봄이로세.

稟氣高懸人我在  품부 받은 기질 높이 매달려 남과 내가 있는데

人是其人我是人  남은 곧 그 사람이고 나는 곧 이 사람일 뿐이네.

 

심학(心學)

學不之他專用誠  배우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성심이니

惟求愈篤老平生  오직 구함을 더욱 돈독히 했던 늙은이의 평생이었네.

此心卽與天心照  이 마음을 곧 천심에다 비추니

一點無雲白日明  한 점 구름도 없이 해가 밝네.

 

영모재에서 여러 벗들에게 주다(永慕齋贈諸益)

春天暖日淨無雲  봄 날씨 따뜻한 날 맑아서 구름도 없고

廳事從容遠世紛  관청일 조용하여 세속의 분주함과 머네.

年老爲君將有以  연로하여 그대 위함에 방도가 있으니

欲將心樂與人分  장차 마음 즐거움을 남과 함께 나누려하네.

 

악양루(岳陽樓)

洞庭浩浩適淸秋  동정호 넓고 넓은 맑은 가을인데

方丈白雲山盡頭  방장산과 백운산 모두 머리맡에 있네.

呌鴈低飛沙上月    우는 기러기 낮게 날고 모래밭에 달이 떠서

古今同照岳陽樓  고금의 악양루를 동시에 비추네.

 

영모재에서 여러 벗들에게 주다. 4회

(永慕齋, 贈益友. 四度)

(1)

孝友同田會一春  효우(孝友)들 함께 밭 갈며 한 봄에 모이니

當行路低用工新  가는 길 아래 공들임이 새롭네.

新餘更着惟新地  새로움 넘치게 새 땅에 펼쳐지니

滿室淸風不累塵  온 방에 맑은 바람 먼지도 없네.

 

(2)

天日照心明透牕   하늘의 해 마음 비추어 밝음이 창에 스미는데

錦城雲物第無雙  금성(金城)의 풍경은 세상에서 제일이네.

衆芳與我宜同胞  여러 꽃들 나와 함께 마땅히 동포가 되니

肚裏有春經萬邦   뱃속에 봄이 있어 만방을 지나네.

 

(3)

春意深深見物知  봄기운 깊고 깊음을 사물을 보고 아니

益新昨未日遲遲  새로움은 어제가 아닌데 해는 더디기만 하네.

昫經心學如親炙   경서를 익히는 심학은 직접 가르침을 받는 듯

語黙爲師萬世垂   말과 침묵을 스승 삼아 만세에 드리우네.

 

(4)

雖惜寸陰日不居  비록 촌음의 날조차 머무르지 않음이 애석하지만

九十春光半有餘  구십일 봄빛이 반이나 남았네.

器中飯味猶經旨  그릇 속의 밥맛이 경서의 뜻과 같으니

愼勿放過書自書  신중히 허송세월 하지 말자고 스스로의 글을 쓰네.

 

봄날 우연히 적다. 3회(春日偶題, 三度)

(1)

春天和氣正融融  봄날의 온화한 기운 진정 융융한데

綠樹成陰也自風  초록 나무가 그늘을 이루어 또한 절로 바람이 부네.

萬物生生開我有  만물이 자라고 자라서 나의 소유 열어놓으니

不求自得渾然豐   스스로의 얻음을 구하지 않아도 혼연하게 풍요롭네.

 

(2)

俗塵恐染掩柴扉  속세의 먼지 물들까 싶어 사립문 닫았는데

鷰愛新春故不飛   제비도 새봄을 사랑하여 일부러 날지 않네.

暖日聊將山水樂  따뜻한 날 산수의 즐거움을 누리려고

耕雲飽腹賞春還  구름밭을 갈며 배불리 봄을 구경하고 돌아오네.

 

(3)

契我春光四面來  마음 즐겁게 봄빛이 사방에서 오니

靑山如畵繡屛開  푸른 산은 그림같이 수 병풍을 벌려놓았네.

酒宜四禮難全廢  술은 사례(四禮)에 마땅하여 완전히 폐하기 어려우니

百拜相酬戒一盃  백배(百拜)하고 술을 따라며 술을 경계하네.

 

영모재에서의 작은 모임, 5수

(永慕齋小會, 五首)

(1)

世事蒼黃假若眞  세상 일 창황하여 거짓인 듯 참인 듯한데

粹然天理一如新  수연한 천리가 한결같이 새롭네.

書中自有經綸策  글 속에 절로 경륜의 계책이 있으니

奈止山棲鹿氶隣   어찌 산 속에 살며 사슴과 이웃할 뿐이겠는가.

 

(2)

天生道器一於文  하늘이 낸 도기(道器)는 문채가 한결 같은데

厥德如何聖狂分  그 덕이 어찌하여 성인과 광인으로 나뉘는가.

最是人居庶物上  오직 사람이 만물의 위에 있으니

瑞禽不必驚鳥羣   상서로운 새가 모든 새들을 놀라게 할 필요가 없네.

 

(3)

萬鍾不換樂吾園  부귀로도 내 정원의 즐거움을 바꾸지 않으니

千態物形皆一源  천연스런 자태의 사물의 모습이 모두 한 근원이네.

戒以稷金惟日省  기장과 황금 경계하여 다만 매일 살피니

靑山對我亦無言  청산이 나를 마주하여 또한 말이 없네.

 

(4)

溪心達海碧流長  개울은 바다에 도달하여 푸른 물이 길고

蘭谷生風白日香  난의 골짜기에 바람 부니 대낮에 향기 나네.

眞樂在何人不識  참된 즐거움 어디 있는 줄을 사람들은 모르는데

澹然世味也相忘  담연하게 세상맛을 또한 서로 잊었네.

 

(5)

鶯花柳葉際新晴  앵두꽃과 버들잎 가는 새롭게 맑고

山藥生芽半夏生  산약은 싹 트고 반하(半夏)가 자랐네.

出水秧針如繡錯  물 밖으로 나온 모는 수놓은 듯하고

鳴春布穀報曉情  봄을 노래하는 뻐꾹새가 새벽 정을 전하네.

 

의정원에 여자가 들어가다(女登議政院)

  정(政)자는 바르다는 뜻이다. 곧 한 나라의 바른길을 의미한다. 그런데 만약 남녀가 함께 그 길을 가서, 내외가 서로 권력을 다툰다면, 곧 이것은 천지와 음양이 변하는 것이다. 어찌 한 나라의 바른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政字, 正也. 一國之正路也. 而苟男女同其路, 內外互爲奪權, 則是天地陰陽之變耳. 那可謂一國之正路乎?)

 

先王法典有禁闈   선왕의 법전에는 궁궐 출입을 금하는 법이 있고

天地陰陽敢不違  천지와 음양은 감히 어길 수가 없다네.

國政本非閨裏事  국정은 본래 규중의 일이 아니고

冕冠著女古來稀  면류관 쓴 여자는 예로부터 드물었다네.

 

영모재에서 여러 벗을 경계하다(永慕齋戒諸益)

養神定性莫如朝  정신을 양성하고 성정 살피는 것은 아침이 좋으니

水智山仁正不寒  물의 지혜 산의 인애가 진정 한심하지 않네.

心整一身能率氣  마음 정연한 이 한 몸 능히 기(氣)를 거느리니

寬舒愼勿宋人苗  널리 펴서 송나라 사람의 알묘조장을 경계하네.

 

근심을 풀다. 3수(釋悶, 三首)

(1)

東昇朝日暮西移  동쪽에서 솟은 아침 해는 저녁에 서쪽으로 지고

由出萬機難必知  드러나는 만기(萬機)를 반드시 알기가 어렵네.

天地有人人莫重  천지에 사람이 있어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은

五常極峻得其宜  오상(五常)이 지극히 높아 그 마땅함을 얻었네.

 

(2)

所求何事老於書  무슨 일을 구하려고 책 속에서 늙는가

顧寔常常禮率初  이 변하지 않는 예의 처음을 돌아 보려함이네.

琴上論心來好月  거문고에서 마음 헤아리니 좋은 달이 오고

從知胸佩玉儲壺  이로부터 알겠으니 가슴속에 옥 쌓인 병을 지녔네.

 

(3)

春蕨自生宜陟西  봄 고사리 절로 자라서 마땅히 서산에 오르니

以何十載碧山棲  어찌 십 년간을 푸른 산에 사는가.

野田豊穰民求飽  들밭에 풍년드니 백성들 배부름을 구하고

此世獨無夷與齊  이 세상에서 홀로 오랑캐와 함께 하지 않네.

 

영모재에 머물며 여러 수를 읊다. 5수

(永慕齋居諸吟, 五度)

(1)

天修正路一通街  하늘이 닦은 바른길이 한 길에 통하니

絃誦聲中有是齋  글 읽는 소리 속에 이 영모재가 있네.

眞樂直非雲物役  참된 즐거움은 다만 풍경 구경이 아니니

春光盡拾不盈懷  봄빛을 모두 거두어도 가슴에 차지 않네.

 

(2)

春牕夢覺羲皇人   봄 창가에서 꿈 깨니 희황인(羲皇人)같은데

我衷悠悠今不辰  내 마음 유유하여 오늘도 그때가 아니네.

貧苟自安難可樂  가난 편히 여기니 즐거움이 어려울 것인가

日三省顧檢其身  하루 세 차례의 반성으로 자신을 점검하네.

 

(3)

六旬虛老讀書園  육순 동안 독서원(讀書園)에서 헛되이 늙으니

言出皆中孰不言  하늘 말이 모두 맞는다면 누가 말하지 않겠는가.

萬事勿求誠實外  만사를 성실 밖에서 구하지 말 것이니

福從善地入其門  복은 착함에서 자신의 문으로 들어오는 법이네.

 

(4)

林泉固守一身安  임천(林泉)을 고수하여 한 몸이 편안하니

行藏元無有二端  행장(行藏)엔 원래 두 가지가 없다네.

裘葛擧今非法服   의복은 모두 지금의 법복(法服)이 아닌데

奚童還笑舊衣冠  어찌 어린아이들이 도리어 옛 의관을 비웃는가.

 

(5)

墨呑筆花生紫雲  먹을 머금은 붓이 붉은 구름 피우니

淸香滿室臭難分  맑은 향이 방에 가득하여 냄새를 구분하기 어렵네.

從知萬理泉流若  이로써 아나니 만 가지 이치는 샘의 흐름과 같음을

力服惟人敢不勤  힘으로 굴복시키려 해도 사람만은 움직일 수 없다네.

 

동해송행(東海頌行)

陟州陸沈幾多年  척주(陟州:삼척)가 침수된 것 몇 해였던가

病慱禹貢千載前   우공(禹貢)의 천 년 전을 근심하네.

稼穡無苗民艱食  농토에 싹도 나지 않아 백성들은 먹지도 못하고

桑麻不雨海相連  뽕과 삼밭엔 비는 오지 않고 바닷물만 이어졌네.

適茲文敎崇儒術   이곳에 문교가 이르러 유술을 숭상하는 것은

天降先生德業全  하늘이 선생을 내어 덕업을 온전케 하였네.

頌義極微神感服  칭송의 의리 지극히 미묘하여 신이 감복하고

鐫辭至妙道機宣  새긴 글 지묘하여 도기(道機)를 폈네.

勒犀遠害非吾道  소를 멍에 지워 멀리 해를 끼침은 우리 도가 아닌데

堪作神羞李比肩  신의 제물을 만드니 이씨와 비견하네.

東海無潮元理在  동해의 해일 없음은 원래 이치가 있으니

一毫不用壓勝鞭  한 터럭도 쓰지 않고 채찍을 억눌렀네.

寔平水土先後在  이 나란한 물과 땅은 선후가 있으니

允合乾坤造化權  진실로 건곤의 조화의 법에 합당하네.

天人同德順其理  하늘과 사람의 같은 덕은 그 이치를 따름이니

禹貢比諸功孰賢  우공(禹貢)과 비교하면 누가 더 현명한가.

 

선죽행(善竹行)

齊天松嶽特崢嶸   하늘과 나란한 송악산 특히 높은데

景色猶含忍痛情  풍광은 오히려 아픈 마음을 머금고 있는 듯하네.

遺痕宛有君臣義  남은 흔적엔 완연히 군신의 의리가 있고

正氣能容河嶽精  정기는 능히 강과 산악의 정수를 받았네.

貞心高處淸風動  곧은 마음 높은 곳엔 밝은 바람이 불고

恩典隆時白日晴  은전(恩典)이 융성했을 때 밝은 해가 맑았네.

想像先生當日事  선생의 당시의 일을 상상하니

大名宇宙一身輕  우주의 큰 명성이 한 몸에 가벼었네.

滿月臺空月空滿  만월대는 비었는데 달빛만 공연히 가득하고

靑山惹出杜鵑聲  푸른 산은 두견새의 소리를 이끄네.

千古淸儀今可尙  천고의 맑은 의용 지금도 드높아서

比諸孤竹德猶宏  외로운 대에 비교하면 덕이 오히려 높네.

 

옛 벗을 생각하다(憶舊友)

詩不煩吟酒不肴  시를 번거롭게 읊지 않고 술은 안주도 없지만

德將猶臭是全交  덕이 진정 향취 나니 곧 온전한 사귐이네.

巖高千尺雲齊擁  바위는 천 길이나 높아 구름이 나란히 감싸고

寒月松梢白鶴巢  찬 달빛 어린 소나무 끝엔 흰 학이 둥지를 틀었네.

 

자견음(自遣吟)

白髮逢春益可煙  백발 머리로 봄을 만나니 더욱 가련한데

滿庭物色好風煙  온 뜰의 물색은 풍광이 곱네.

口中井井緘金黙   입안은 반듯하여 금실로 꿰매어 침묵하고

心工圓圓警柝懸  마음 씀은 원만하여 경탁(警柝)을 매달았네.

百感從消三省裏  모든 불안 하루 세 번 반성함에 사라지고

些憂先防九容前  작은 근심은 구용(九容) 앞에서 막히네.

惟天特與吾眞樂  다만 하늘이 나에게 참된 즐거움을 주니

眞樂何須以管絃  참된 즐거움을 어찌 악기로 이루겠는가.

 

부질없이 적다(徒文)

荊棘開花那不芳  가시나무에 꽃 피었는데 어찌 향기가 없는가

難支數日復荒凉  며칠도 못 가서 다시 황량하네.

筆爲物誘文猶飾  붓은 물색에 이끌리어 문채를 수식하니

大義誰能皮裏藏  대의를 누가 능히 거죽 속에 담았는가.

 

봄날 우연히 적다. 절구 3수

(春日偶題, 三絶)

(1)

春光幾吸老山間  봄빛을 노산(老山)에서 얼마나 들이켰던가

松菊不爲桃李班  소나무와 국화는 복사꽃 오얏꽃과 무리 짓지 않네.

喬嶽云高今可陟  높은 산을 높다고 하나 지금 오를 수 있는데

道其在邇亦難攀  도는 가까이 있지만 또한 오르기가 어렵네.

 

(2)

日新無惡是能全  매일 새롭게 악한 일 없는 것이 몸을 온전히 함이니

其發渾如溫出泉  그 나옴은 혼연하게 온천이 솟는 것 같네.

健筆一揮無可敵  굳센 붓을 휘두르니 적대할 사람 없고

江河直決策詩鞭  장강과 황하 곧장 터진 듯 시의 채찍을 휘두르네.

 

(3)

滿園春色不知千  정원에 가득한 봄빛 시절을 모르는데

花事那堪問杜鵑  꽃들 속에서 어찌 두견새를 물을 수 있겠는가.

百物求吾挑筆興  모든 사물 나에게 시 짓는 흥취를 요구하니

題詩可惜日三錢  시 지음에 매일 삼전(三錢)을 버림을 애석해 하랴.

 

세상을 탄식하다. 칠언절구 1수, 율시 1수

(歎世吟, 七絶一, 律一)

(1)

不要一生名姓高  일생에서 이름 높음을 구하지 않는데

有朋來遠適淸醪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맑은 술이 적합하네.

西風亂吹東無日  서풍이 어지럽게 부니 동쪽엔 해도 없는데

改出牝晨多女豪  암탉이 울어 새벽이 오니 여자 호걸이 많네.

 

(11)

世事頻煩全失籌  세상일 자주 번거로워 헤아릴 수 없는데

謂吾夏日着冬裘   나에게 여름에 겨울 갖옷을 입고 있다고 하네.

指揮孰有知王道  지휘하는 사람 중 누가 왕도를 아는가

朝路人無見冕旒  조정에선 면류관을 볼 사람이 없네.

倀失前王仁政洽   전왕(前王)의 인정(仁政)의 은택이 무너지고

紛拏西戎虐風浮  서쪽 오랑캐의 잔학한 바람만 떠서 뒤섞이네.

心天惟一人皆有  심천(心天)은 유일하게 사람 모두에게 있는데

我獨無心戴白頭  나는 홀로 무심하게 백발만 이고 있네.

 

봄날에 회포를 펴다. 절구 5수(春日敘懷, 五絶)

(1)

未見夭夭百日花  싱그러운 백일화를 아직 보지 못했는데

庭松最愛月梢斜  마당의 소나무 끝에 달빛 기우는 것을 가장 사랑하네.

淸潭如練渾無滓  맑은 못은 비단결로 전혀 찌꺼기도 없어서

澈底方看水底沙  맑은 바닥의 물아래 모래를 드려다 보네.

 

(2)

百事勿爲無實花  모든 것에 과일 없는 꽃이 되지 말 것이니

朝霑香露夕陽斜  아침엔 향기로운 이슬에 젖고 석양엔 기울어.

如將桃李榮華做  복숭아 자두의 화사한 꽃을 피우듯 하니

孰若精金陶汰沙  모래에서 정갈한 금을 일러내는 것과 어떠한가.

 

(3)

世事暮陰朝復陽  세상일은 저녁엔 어둡고 아침엔 밝은데

靑山今古一如常  청산은 고금에 항상 같네.

寔由厚重無他理  여기서 중후함이 일어나니 다른 이치가 없고

靜裏安安一草堂  한 초당에서 조용하고 편안하네.

 

(4)

綠樹成陰上戴陽  푸른 나무가 그늘 이루어 위에 햇볕을 이니

四時光景不干常  사시의 광경은 법을 어기지 않네.

野人休說塵間事  시골사람은 속세의 일을 말하지 말라

多蓄書聲肯是堂  많은 독서소리 이 당 안에 있네.

 

(5)

物各有天陰包陽  사물은 모두 천리가 있으니 음이 양을 담고

惟新一氣日常常  오직 새로운 기운 날로 일정하네.

千間大廈渾無我  천 칸의 큰집은 모두 나의 것이 아니니

左右詩書月一堂  좌우에 시서 늘어진 달빛 어린 한 당이네.

 

자산. 비이슬에 동시에 젖었는데 초목은 피지 않았다(紫山, 雨露同霑, 草木不化)

春不似春如赤城  봄이 봄 같지 않은 것이 마치 적성(赤城)과 같은데

土黃正色是天成  흙 누른 것은 바른 색이니 곧 하늘이 이룬 것이네.

多年風雪還爲苦  다년간의 풍설이 오히려 괴로움이 되니

化被那時草木生  어느 때나 조화 입어 초목이 피려나.

 

인전서당에서의 대화(仁田書堂小話)

風月常常几案留   풍월이 성대하게 궤안에 머무니

宜乎詩饌暫消憂  시의 재료에 마땅하여 잠시 근심을 푸네.

山中不有無花日  산중에 꽃 없는 날이 없지만

最愛黃花待有秋  국화를 가장 사랑하여 가을을 기다리네.

 

强得忍和心上留  힘껏 인화(忍和)를 얻어 마음에 머물러 두고

憂前先愼必無憂  근심 전에 먼저 신중하게 근심이 없도록 해야 하네.

芬芳最話君休說  향기로운 꽃이 대화에 최고라고 그대 말하지 마오

松柏霜侵不畏秋  송백은 서리 내리는 가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네.

 

금성산에 오르다. 2회(登錦城山, 二度)

(1)

草香猶濕昔人遊  옛사람 노닌 곳에 풀 향기 젖어있고

喬嶽巖巖鎭一洲  높은 산은 드높게 한 고을을 눌렀네.

衰脚因笻艱艱着   쇠잔한 다리로 지팡이 집고 어렵게 들러보는데

立於止處更無求  길 그친 곳에 서니 다시 오를 곳이 없네.

 

(2)

碧立常常太古天  변치 않는 태고의 하늘에 푸르게 서 있으니

不知萬劫幾經年  만겁의 세월 몇 번이나 지냈는지 모르겠네.

禹籌未及神功在  우의 헤아림 미치지 못한 곳에 신공이 있는데

只惜中華欠一邊  다만 애석하구나. 중화의 한 변두리가 비었네.

 

송은당 원운에 차운하다(次松隱堂原韻)

節操攸同柏悅從  절조가 같아서 잣나무가 기쁘게 따르니

木中君子莫如松  나무 중에 군자는 소나무가 제일이네.

根生化茯宜仙劑  뿌리가 자라 복령으로 변하여 선약이 되고

葉貫細針繡地容  잎은 가는 바늘처럼 땅의 얼굴에 수를 놓네.

敎子有餘因馴鶴  자식 교육에 여유 있어 학을 길들이고

讀書乘暇亦治農  독서하는 한가한 시간에 또한 농사를 짓네.

採樵頻入雲深處  구름 깊은 곳에서 땔나무 들여오니

忘面照心君與儂   얼굴 몰라도 마음 통하는 그대와 나일세.

 

영모재 벽에 적다. 절구 4수

(題永慕齋壁上, 四絶)

(1)

讀書聲出猶聞道  독서소리 나오니 도를 듣는 듯하고

立德門深若在師  덕을 세운 문이 깊어 스승이 있는 듯하네.

春夢終收須靜裏  고요함 속에서 봄꿈을 거두고

西天獨步日星知  서천(西天)으로 홀로 감을 해와 별만이 아네.

 

(2)

文能負富不憂貧  글이 부귀를 감당하니 가난을 근심하지 않고

健筆含華任得眞  굳센 붓이 영화를 머금어 진(眞)을 얻네.

心上亦惟天地在  마음 위에 또한 천지가 있으니

四時仁洽物生新  사시의 인자한 은택에 사물이 새로 돋네.

 

(3)

寔由秉彝是天休   참으로 윤리로써 행하니 곧 천휴(天休)이고

遵道化民猶速郵  도를 따라 백성을 교화함은 빠른 우편과 같네.

好善苟能如食飮  착함을 좋아함이 음식을 먹는 것처럼 능하니

人皆堯舜又何憂  사람 모두가 요순과 같아 또 무엇을 근심하랴.

 

(4)

物生如繡覆前庭  만물이 수처럼 피어나 앞뜰을 덮으니

山水屛開挹地靈   산수의 병풍을 열고 땅의 신령함을 붙들었네.

操筆記秋霜菊老  붓을 들고 가을 서리 속의 국화의 늙음을 기록하니

大冬松柏也靑靑  한 겨울의 송백 또한 푸릇푸릇하네.

 

인전서당에서 여러 벗에게 경계하다. 악양에 있다(仁田書堂戒諸益, 岳陽)

公私未克兩相長  공사를 마치지 못한 것 둘 다 오래인데

塵染焉能浼我堂   먼지가 어찌 우리 서당을 더럽힐 것인가.

着地有身期善事  땅 디딘 몸이 있어 좋은 일 기대하는데

仰天觀日祗明光  하늘 우러러 해를 보니 다만 밝을 뿐이네.

情如屈慾形先役  정은 욕심을 굽히니 몸이 먼저 일을 하고

言必由眞口卽香  말은 반드시 참됨으로 하니 입에서 향내 나네.

工益惟新新養氣  공부는 더욱 새로우니 양기(養氣)가 새롭고

乾坤在是任吾行  건곤이 여기 있어 나의 행실 맡기네.

 

근심을 풀다(消愁)

心如鏡面不生塵  마음은 거울 면처럼 먼지가 일지 않으니

玉色焉能浼櫝淪    빛이 어찌 더러운 함에 빠질 것인가.

萬水千山皆友我  온 산수가 모두 나에게 벗하니

百年一日會無人  백년간 하루도 만날 사람이 없네.

宿憂暫遣琴書裏  오랜 근심을 잠시 금서(琴書) 속에서 풀고

眞樂自甘泉石隣  참된 즐거움에 스스로 천석(泉石)의 이웃됨이 즐겁네.

枕溪自作山人夢  개울을 베고 스스로 산사람의 꿈을 꾸니

雲龍施雨木魚鱗  운룡(雲龍)이 목어(木魚)의 비늘에 비를 뿌리네.

 

술을 마시며 스스로 위안하다(酌酒自慰)

酌酒慰心心自寬  술 따라 마음을 달래니 마음이 절로 풀리고

雲安勝味動香瀾  구름 안온한 승경의 맛 향기가 널리 일고.

國將乏材宜無藥  나라 장수에 인재 없는 것은 마땅히 약이 없는데

天不棄人恒戴冠  하늘이 사람을 버리지 않으니 항상 관을 쓰고 있네.

白頭閱歲難堪老  백발로 세월 지내니 늙음을 감당하기 어렵고

霜鬢經春那劫寒   흰 귀밑머리 봄을 지내니 어찌 추위가 겁나겠는가.

從今謾作桑楡計   지금부터 상유(桑楡)의 계책을 세우리니

聊吸烟霞晩爇餐   연하(煙霞)를 들이키며 저녁에 밥을 짓네.

 

고민을 풀다(釋悶)

臨淸流坐一高歌  맑은 개울 앞에 앉아 한차례 크게 노래하니

溪性東流不小斜  개울은 동쪽으로 흘러 조금도 기울지 않았네.

胸中海闊淵淵水  가슴속의 바다 넓어 깊고 깊은 물이 있고

心上春芳處處花  마음엔 봄이 향기로워 곳곳에 꽃이 있네.

山色更新千載景  산 빛은 더욱 새로워 천년의 경치인데

書聲大曉萬人家  독서소리 만인의 집을 크게 깨우치네.

道同天地文爲器  도는 천지와 같고 글은 도구가 되니

愼勿一毫徒尙華  삼가 한 터럭도 헛되게 화려함을 숭상하지 마오.

 

성의(誠意)

心機渾與天機動  심기(心機)가 혼연하게 천기(天機)와 유동하니

春意誠通三六宮  봄기운이 진실로 삼육궁(三六宮)에 통하네.

天敎潛示河馬背  천교(天敎)는 하수의 말 등에 은밀히 보이었고

乾元微透洛龜中  건원(乾元)은 낙수의 거북 등에 은미하게 통하였네.

愼獨宜非爲屋漏  신독(愼獨)은 마땅히 옥루(屋漏)가 되어서 안 되고

灑掃不是潔房櫳   쇄소(灑掃)는 방안의 창살만 깨끗이 함이 아니라네.

身外全無吾道在  몸 밖에 우리의 도가 전혀 없으면

纔差只恐踏虛空   조금만 어긋나도 다만 허공을 밟는 것처럼 두렵네.

 

정심(正心)

覺闕深衛一靈臺  궐문 깊이 한 영대(靈臺)를 호위함을 깨달으니

大廈千間洞豁開  큰 집 천 칸이 활짝 열리네.

山色本靑朝雨洗  산 빛은 원래 푸른데 아침 비에 씻고

玉形若潔石磨來  옥의 몸은 정결한데 숫돌로 갈아왔네.

壺中儲月恒無晦  병 속에 달빛 쌓으니 항상 어둠이 없고

鏡裏印星終不垢  거울 속에 별빛 찍혀 끝내 먼지도 없네.

顧是常常如是做  이 변치 않음을 돌아보고 이처럼 하니

便同天地氣融毅  곧 천지와 더불어 기가 융의(融毅)하네.

 

수신(修身)

湯盤日沐日遲遲  탕임금의 그릇에서 매일 목욕하니 날은 더디고

舊昧益新猶拓菑   옛 맛이 더욱 새로워 묵정밭을 개간하는 듯하네.

凡叢莫儔霜老菊   초목은 서리 속의 늙은 국화에 짝하지 못하고

百卉難敵日傾葵  꽃들은 해를 향하는 해바라기를 대적하지 못하네.

言能作善猩尤麟  말이 능해 선을 이루니 원숭이가 기린을 탓하고

韶苟如簧鳳失鸝   소가 구차하여 황과 같으니 봉황이 꾀꼬리를 잃네.

萬善從來誠一字  모든 선이 성(誠) 한 글자로부터 나오니

上天不恃更何疑  상천을 믿지 못하고 다시 무엇을 의심 하는가.

 

영모재에서 신축년 홍렬과 밤에 대화하다

(永慕齋, 與辛丑鴻烈夜話)

書中苟活我其人  책 속에서 구차하게 사는 것 내가 그 사람인데

奈此樽空客此辰  어찌하나 이 술잔 비었는데 이날 손님이 왔네.

蘭若透香金友在  난과 두약의 향기 스미는데 김우(金又)가 있고

雲如又霽商星新  구름 또한 개었는데 상성(商星)이 새롭네.

 

舊顔更看天將月  옛 얼굴 다시 보는데 하늘이 달을 이끌고

細話深通夜亦晨  정다운 대화 깊이 통하는데 밤 또한 날이 새네.

昂悵臨分宜難寫    슬프게 이별에 임함을 묘사하기 어려운데

歡心倉卒富還貧  즐거운 마음이 창졸간에 부유했다가 빈곤해지네.

 

생광명(生壙銘)

禀得有自 품부 받아 얻은 것 스스로에게 있으니

人孰無天    어느 사람에게 천성이 없겠는가.

存養不精    존양(存養)이 정밀하지 못하면

鮮或能全    능히 보전함이 드물다네.

恐陷此窠 이 굴이 막혀버릴까 두려우니

操執鞏堅    조심스럽게 붙잡아 굳게 묶어서

祇夕乾乾    다만 종일 부지런히 정진해야 하리.

日星確然    해와 별이 확연하니

知天修命    천명을 알아서 닦아야 하네.

孰後孰先    무엇을 뒤로하고 무엇을 앞으로 할 것인가

遠宗退陶    멀리 퇴도(退陶)선생을 본받으나

未獲口傳    직접 가르침을 받지 못하네.

緖餘欲窺    실마리를 잘 살펴서

治絲織前    베를 짜기 전에 실을 다듬어야 하니

不誠胡獲    성실하지 못하면 어찌 얻을 수 있으리오.

縷縷心鐫    하나하나 마음에 새겨서

重責孰任    중책을 누구에게 맡기랴.

力擔不肩    힘껏 지고 남에게 맡기지 않으면

泰山若攀    태산도 오를 수 있으리라.

奈庸奮拳    어찌 주먹을 불끈 쥐고

外求何求    밖에서 무엇을 구하랴.

以是終年    이로써 남은 생애 보내리니

齒髮敢棄    이빨과 머리칼 빠지면

壙斯吉阡    여기 좋은 언덕에 광(壙)을 파리.

 

입동일에 옛 벗을 생각하다(立冬日懷舊友)

初寒特設小春扉  첫추위에 소춘(小春)의 사립문을 특별히 설치하니

戶外霜風不怯衣  문 밖의 서릿바람에도 얇은 옷이 겁나지 않네.

黙契雖深知己少   묵계는 비록 깊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적고

面交愈熟會心稀  면식은 더욱 익숙하나 마음 맞음이 드무네.

靑山胎靜主流水  청산은 고요함을 머금고 흐르는 물을 주관하고

白日胞陽通萬機  태양을 양기를 머금고 만기에 통하네.

養氣浩然天在我  호연한 기를 기르니 하늘이 나에게 있고

時無今古厥中歸  때에는 고금이 없으니 그 속으로 돌아가네.

 

김춘파의 원운에 차운하다(次金春坡原韻)

世帶光山不老春  대대로 광산(光山)의 늙지 않는 봄을 지니고

積書致富富潤身  책 쌓아 부를 이루니 그 부가 몸을 윤택하게 하였네.

用蘭爲德心常暖  난으로써 덕을 삼으니 마음이 항상 따뜻하고

有菊題詩筆超塵  국화로써 시를 지으니 붓은 티끌을 초월하였네.

滿腹文華香一室  뱃속 가득한 문화에 온 방에 향기 나고

蘊中櫝美戒今辰   함 속에 축적한 아름다움으로 오늘을 경계하네.

試看歲首排元理  세월의 첫머리에 원리(元理)가 늘어짐을 보니

萬化生新又日新  온갖 조화 새롭고 또 날로 새롭네.

 

화수회에서 다정히 대화하다. 4수

(花樹會情話吟, 倂小序. 四度)

  천지간에 윤리를 품부 받아 성품을 이룬 것은 오직 사람뿐이다. 그래서 주부자(朱夫子:주자)는 “천지는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고 일찍이 말했다. 나는 천지에게 귀함을 받는 것은 사람이 곧 천륜의 그릇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그 그릇이 충실하지 않다면 사물에서 의리를 취할 수 있겠는가! 우리 정씨(鄭氏)는 윤리 속에 뿌리를 붙이고 칠팔 백년을 지내면서 지엽이 무성하였다. 이는 윤리의 꽃나무라고 해도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찌 도생(倒生)의 사물로써 비견할 수 있겠는가? 생각건대 정사․임인년의 성대한 일은 고금이 비록 다르지만 천륜의 펼침이 한결같았다. 지금 그 모임의 체(體)는 천륜의 강령이고, 그 모임의 용(用)은 천륜의 낙사(樂事)인데, 체용이 모임의 대화 가운데서 겸비되니, 이는 윤리의 나무가 천륜의 꽃을 피움이 마땅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오늘로써 옛날을 보면 꽃이 옛날만 못하다. 선조의 그늘이 두텁지 못하고 점차 얇아져서 그런 것인가? 무궁화 꽃이 늙은 것은 향기를 홀로 떨치지 못하여 그런 것인가? 우리나라의 교목의 꽃들을 둘러보면 의연히 남은 것이 드물다. 다만 우리의 오늘의 꽃은 아마 선조의 그늘이 드리운 바가 아니겠는가? 각자가 그 선조의 덕을 추념하여 한결같이 같고자 하여 꽃을 피우고 꽃을 피우니, 우리 정씨의 한 나무의 꽃이 마땅히 나라의 영화이다. 이를 시로 써서 권면한다.

  (天覆地戴, 禀得倫彛而爲性者, 惟人是已. 故朱夫子嘗言, “天地以人爲貴.” 余恐見貴於天地者, 人是天倫之器. 今其器不充而以物取義也歟! 我鄭氏托根於秉彛之中, 歷七八百이而枝葉茂著, 是可謂秉彛之花樹, 可也. 而那可以倒生之物比肩子. 仰想丁壬盛事. 今古雖殊天倫之敘一矣. 今夫會之體天倫之綱領, 會之用天倫之樂事, 體用兼備於會話之中. 是秉彛之樹, 發天倫之花宜矣夫. 然以今視古, 花猶不如, 抑先蔭不厚而漸薄歟. 槿花老矣. 香不獨振而然歟. 環視東土喬木之花, 依存者鮮矣. 惟吾今日之花, 亦其非先蔭攸曁乎. 各自念厥先德, 一有如之者, 而花而復花, 則吾鄭一樹之花, 宜焉. 邦國之榮華矣. 勉乎書系以詩.)

 

(1)

天宜裁培錦城春  하늘이 마땅히 재배하니 금성(錦城)의 봄인데

萬歲光榮非一辰  만세의 광영이 단 하루만이 아니네.

情話薰生通氣臭  정다운 대화 속에 향기 나서 기취(氣臭)가 통하고

口香暖動叙心眞   입 향내 따뜻하여 마음의 진실을 펴네.

太平亭古年華富  태평정(太平亭) 예스러워 세월이 풍요롭고

無慍堂深德蔭新   무온당(無慍堂) 깊어서 덕음(德蔭)이 새롭네.

感悅誠尋靈根始  기뻐하며 지성으로 신령한 뿌리의 기원을 찾으니

同園桃李也相親  같은 동원의 복사꽃과 오얏꽃 또한 서로 친하네.

 

(2)

座生英德動千秋  여러 젊은이들 영덕하여 천추를 움직이고

會是於花最好辰  꽃밭에서의 모임 가장 좋은 날인데.

萬顆雖紅香以貴  만과(萬顆)는 비록 붉으나 향기가 귀하고

百枝相屬氣爲眞  백지(百枝)는 서로 이어져 기질이 참되네.

情如雲疊心田濶   정은 첩첩한 구름 같아 심전(心田)이 드넓고

胸挹風淸誼路新   가슴은 맑은 바람 껴안아 의로(誼路)가 새롭네.

都却從今宜有戒  모두 지금부터 마땅히 경계할 게 있으니

親難踈易勉相親   친족은 소홀하기 어려우니 서로 친하기를 권면하네.

 

(3)

無人强勉自然春  억지로 권면하는 사람 없어도 자연히 봄인데

將欲年年有此辰  장차 해마다 이런 날만 지니려고 하네.

天意如斯公道在  이 같은 하늘의 뜻 공도(公道)에 있으니

物形受胎各心眞  수태(受胎)한 사물의 모습 각자의 마음이 참되네.

淸香願作平生佩  맑은 향기를 평생의 패옥으로 삼고자 하니

薰氣惟傳百世新  훈기(薰氣)는 다만 백세(百世)에 전하여 새롭네.

親屬莫如同根出  친속(親屬)에는 한 뿌리에서 나온 친족이 제일이니

勿違倫彛彛中親  윤리를 어기지 말고 윤리 속에서 친애해야 하리.

 

(4)

此春願造一邦春  이 봄을 온 나라의 봄으로 조성하고자

第待萬和方暢辰  다만 만화방창(萬化方暢)의 날을 기다리네.

叢葉成陰靑寫影  무성한 이파리 그늘 이루어 푸른 그림자 드리우고

千梢掛錦畵難眞  나무의 끝은 비단을 매단 듯 본모습 그리기 어렵네.

明倫花發園桃舊  윤리 밝히는 꽃이 피니 동원의 복사꽃 오래되었고

秉彛天蒼巷柳新  윤리 지닌 하늘 푸르니 골목의 버드나무 새롭네.

會是元居庶物上  이 모임 모든 사물의 위에 첫째이니

念先厥德厥中親  선조의 덕을 생각하고 그 속에서 친애해야 하리라.

 

 

정사년의 화수회를 추억하며 삼가 원운을 따라 짓다(追感丁巳花樹會情話吟, 謹步原韻. 倂小序)

  사람에게 친족이 있는 것은 사물에게 같은 종류가 있는 것과 같으니, 하늘의 이치가 그러하므로 그것을 막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같은 친족이면 남보다도 정의가 두터운 것은 그 기질이 같기 때문이다. 모임을 화수라고 한 것은 그 뜻을 취한 것인데, 다만 꽃과 잎만을 가져온 것이다. 그러므로 일찍 피었다가 곧 시들어 버림을 군자가 깊이 경계해야 할 바이다. 그 경계해야 할 바를 모르고서, 단지 더불어 즐기기만 하는 것은 선조들이 즐겁게 대화했던 본 뜻이 아닐 것이다. 마땅히 나무의 태어난 바의 이치를 완미하여, 무엇이 줄기가 되었고, 무엇이 가지가 되었는지를 안 연후에야 그 천륜의 바른 길에 가까울 것이다. 아! 오늘 꽃나무가 함께 즐기는데, 향기를 떨치지 못하고, 줄기와 가지 또한 무리들의 순서가 없다. 나의 느낀 바는 말하지 않을 뿐이다.

  (人而有族, 物之有類. 天理然而莫之遏也. 是以族一則誼重於人. 氣同故耳. 會以花樹取義, 然但以花葉則來矣. 早發旋萎, 君子之所深戒也. 不知其所以戒, 而祗是和悅則宜非先世悅話之本旨爾. 卽當玩味於樹之所由生之理, 而何者爲幹? 何者爲枝? 然後庶乎知其天倫之正路矣. 噫, 今花樹之同樂, 薰香不振, 幹枝亦無倫屬之序. 不肖之所感發, 而不言者爾.)

 

千秋金鏡鏡中人  천추에 금경(金鏡)이 있어 거울 속의 사람인데

一是生長花樹春  모두 함께 생장하는 꽃나무의 봄이네.

感極先天桃柳景  선천(先天)의 복사꽃 버들의 경치에 감격하니

香葩露葉掛星辰   향기로운 꽃과 이슬 젖은 이파리가 별처럼 걸려있네.

(감히 임진(壬辰)년의 친족의 모임 시운에 차운하다(敢次壬辰族會韻))

 

大同惇睦是有因  대동(大同)의 화목함은 이유가 있으니

會誼丁寧啓後人  모임의 정의(情誼)가 정녕 뒷사람을 계발한 것이네.

情話像如千載鑑  다정한 대화는 천년 동안 넘치듯 하고

香風感動百年春  향기로운 바람은 백년의 봄을 감동 시키네.

筆精寫畵天倫照  붓으로 정밀하게 그려내니 천륜이 비추고

手澤含華族誼新  손은 윤택하게 꽃을 머금으니 친족의 정 새롭네.

玩詳一編多銘佩  이 한 편을 완상하니 명심하여 패용함이 많으니

秉彛何嘗親灸親  윤리 지킴에 어찌 몸소 가르침이 있던가.

 

다천에서 읊다. 절구 2수(茶泉吟, 二絶)

(1)

源出至海通晝夜  물의 근원 바다에 이르러 주야로 통하고

那將善蓄洽人心  어떻게 착함을 쌓아 인심을 흡족히 할까.

有餒潛及裘夫利    주림이 있으면 몰래 구부(裘夫)의 이익에 미치니

不要茶香救渴涂   차의 향기가 갈증을 구할 필요는 없으리라.

 

(2)

泉脈油然能湧瀉  천맥(泉脈)이 유연하게 물을 쏟아내니

不期宜會海天心  해천(海天)의 마음에 맞기를 기약하지 않네.

學誠切要以斯做  성실함의 절요(切要)를 배우는 것 이로써 하니

茶若帶香飯涂涂    차는 향기로운 밥의 물방울을 지닌 듯하네.

 

농암에서 읊다(聾菴吟)

與天通氣品其人  하늘과 통하는 기운 그 사람에게 품부하니

所性幾鮮能率眞  받은 성품 선명하여 능히 참됨을 이끄네.

萬物日新取洽露  만물도 날로 새롭게 흡족한 은택을 취하는데

矧惟不愼戒吾身   하물며 우리의 몸을 경계하지 않으랴.

 

강선계회를 읊다(講先契會吟)

開鏡鬱林開一堂  거울을 연 듯한 울창한 숲에 한 채의 당을 여니

恒居愛僻錦之陽  일정한 거처 변두리를 사랑하니 금성산 남쪽이네.

交情無數山重疊  교유한 정은 무수하여 산처럼 중첩되고

先誼難分水共長  선조의 정의 구분할 수 없어 강물과 함께 길다네.

硯腹不像通海闊  연복(硯腹)이 상하지 않아 바다의 넓음과 통하고

詩心只恐漏春光  시심(詩心)에 다만 봄빛이 스며들까 걱정이네.

主賓相敬酬爲禮  주인과 손님이 서로 공경하며 수작이 예의를 이루니

禮飮先宜戒濫觴  예의 있는 음주에는 술잔 넘침을 경계 하네.

 

여러 벗들과 옥산에 올라 봄을 전별하다

(與諸益, 登玉山餞春)

七十年光夢裏承  칠십 년 세월을 꿈속에서 이어받았는데

爲誰以餞玉山升  누구를 위해 봄을 전별하려 옥산(玉山)에 올랐는가.

巖巓詳步安笻屐 바위 조심스레 걸으니 지팡이와 나막신 평안하고

崗脊危登戒騎乘  언덕은 가파라서 말 타고 오르는 것 경계 하네.

踏宜可憐孤燭秉  마땅한 곳 밟아가니 외로운 촛불 든 것 가련하고

拾紅自愧露肩增  붉은 꽃 줍고 드러난 어깨 많아짐이 부끄럽네.

雖云明日如今日  비록 내일이 곧 오늘이라고 말하지만

日不再晨春不恒  하루도 다시 오지 않으며 봄도 영원하지 않다네.

 

나주정씨 세계도. 칠언절구

(羅州鄭氏世系圖, 七絶)

厥始渾如天種樹  그 기원은 혼연히 하늘이 심은 나무 같아서

開花敷葉自然春  꽃 피고 이파리 돋으니 자연히 봄이네.

彼枝此幹同元氣  저 가지 이 줄기가 같은 원기(元氣)인데

萬顆齊垂一樣新  만과(萬顆)가 나란히 드리워 한결같이 새롭네.

 

일농의 원운에 차운하다. 임인년 봄

(次一聾原韻, 壬寅春)

頭戴槿天新建舍  머리에 무궁화 하늘을 이고 새로 집을 지으니

胸中獨葆小中華   가슴속에 홀로 소중화(小中華)를 보전했네.

枕邊流水琴心動  침상 흐르는 물소리에 거문고 타는 마음 일어나고

塵表靑山鏡面斜  티끌 없는 푸른 산은 거울 면에 비끼고

雲物自家肚裏畵   풍치 있는 자기 집은 마음속의 그림 이네.

詩書靜體眼前花  시서를 조용히 체득함은 눈앞의 꽃 같네.

晴朝香燭如親灸  맑은 아침 향기로운 촛불은 직접 가르침과 같아

慕聖其誠小不差  성인을 사모하는 정성은 조금도 차이 없네.

 

금성산에 오르다. 임인년 봄, 고창의 사인과 함께 ‘산(山)’자 운으로 짓다

(登錦城山, 壬寅春, 與高敞士人, 步山字韻)

初知山外更無山  처음엔 산 너머에 다시 산이 없는 듯했는데

高着山皆眼下山  높은 곳의 산이 모두 눈 아래의 산이 되었네.

天工雖妙非工簣   조물주 솜씨 오묘하나 삼태기로 쌓은 것 아니니

泰山不若我心山  태산은 내 마음의 산만 못하다네.

 

양동정사기 걸려 있는 현판은 일부러 기록하지 않는다(揭板故不錄)

心正靑山重  마음이 바르니 푸른 산이 무겁고

意誠流水長  뜻이 성실하니 흐르는 물이 기네.

書中眞滋味  책 속에 참된 재미가 있으니

瓠飮口生香  바가지 물에도 입에서 향내 나네.

 

대한을 읊다. 절구 2수(大寒吟, 二絶)

(1)

中虛天地人爲實  중허(中虛)의 천지에서 사람들은 실하지만

天地窮陰孰不寒  천지의 궁음(窮陰)에 누가 춥다하지 않겠는가.

潛玩一陽添一線  한 양기를 몰래 놀려서 한 줄기를 첨가하니

陽春一氣不曾寒  양춘의 한 기운에 춥지가 않네.

 

(2)

履霜初漸人知寡  서리 밟는 것 처음 줄었는데 사람들은 모르고

寒沍窮陰歲大寒   추위의 궁음(窮陰) 속 세월은 대한(大寒)이네.

未奪山心春尙在  산의 마음을 빼앗지 못해 봄은 아직 남아 있고

特靑千古幾經寒  천고의 특별한 푸름은 몇 번이나 추위를 지났나.

 

양동정사에서 임인년 입춘에 읊다

(良洞精舍, 壬寅立春吟)

千年共照將來日  천년을 함께 비추어 내일이 되려는데

萬世相榮不盡春  만세(萬世)에 서로 번영하여 무한한 봄이네.

東出朝陽含吉慶  동쪽에서 뜬 아침 햇살은 길조를 머금었고

壬寅月德建陽新  임인년 월덕(月德)은 양기를 세움이 새롭네.

 

양동정사에서 임인년 섣달 그믐날에 짓다

(良洞精舍, 壬寅除夕)

歲去一除今又除  세월이 흘러 모두 없어져 오늘 또 제야인데

天時有四也宜除  때에는 사계절이 있는데 또 응당 없어졌네.

大冬雪裏陽來復  한 겨울 눈 속에 양기가 다시 회복하니

要見春和願是除  봄의 온화함을 보려고 이 제야에 소망하네.

 

대명동에서 읊다(大明洞吟)

水石無塵洞大明  물과 바위에 티끌 없어 동구가 몹시 밝은데

大明洞上月晴明  대명동 위 달은 맑고 밝네.

晨村在下東幾曙  새벽 마을은 아래 있어서 동쪽은 거의 밝았는데

祇願東天國大明  다만 동쪽 하늘의 나라가 몹시 밝기를 바라네.

 

계묘년 설날 아침 유감(癸卯正朝有感)

歲色不恒新起年  세월의 빛은 영원하지 않아 새해가 일어나니

應知天地理皆然  마땅히 천지의 이치 모두 그러함을 알겠네.

陰陽交繡無終始  음양은 수를 놓은 듯 처음과 끝이 없고

日月相推有後先  해와 달은 번갈아 떠오르니 앞뒤가 있네.

昨是除宵流水去  어젯밤은 제야인데 흐르는 물처럼 지나가고

今爲春首四時連  오늘은 봄의 첫머리로 사계절이 이어졌네.

兒孫祝我康寧壽  어린 손자들이 나의 강녕한 수명을 축하하는데

湯餠幾迴未死前   죽기 전까지 떡국이 몇 번이나 돌아오겠는가.

 

                                                                                                  html by 逸軒公15世孫 June 5,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