述先裕后 :조상을 계승하고 자손을 잘되게 함.先世記錄들을 奉讀하십시요. image(gif) 만듬:문정공24세손 병선

대종회장25대-27대
창주공15세손

광훈(光勳)


만든 후손
발전연구위원
간사.25대∼
일헌공15세손

병선(昺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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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第四編 先世遺稿
行狀및 墓碣銘

 

 

 

思禮堂公行錄
(사례당공행록)

[역문]公(공)은 ①素履醇朴(소리순박)하고 學識(학식)이 精明(정명)하였으며 忠孝(충효)는 그의 庭訓(정훈)이오 詩禮(시례)는 그의 世業(세업)이다. 學問(학문)은 ②濂洛(염락)을 硏究(연구)하였고 孝道(효도)는 曾子(증자)와 閔子騫(민자건)에 符合(부합)하였다. ③四勿(사물)의 法度(법도)는 百源(백원)의 行實(행실)이니 오직 한집안의 法度(법도)가 될 뿐 아니라 鄕黨(향당)에도 이를 본받을 것이다 하였다.

어려서 父母(부모)를 잃고 奉養(봉양)치 못한 것이 恨(한)이 되어 어른이 되자 草幕(초막)을 先塋(선영)곁에 짓고 이름을 思禮堂(사례당)이라 하고 항상 居處(거처)하였으며 비록 불같은 더위나 氷雪(빙설)의 추위에도 날마다 省墓(성묘)하였으며 손에 물병과 호미를 가지고 호미로 惡草(악초)를 除去(제거)하고 어린 소나무에다 물을 주니 材木(재목)을 求(구)하고자 한 사람이 이러한 것을 보고 참아 입을 열지 못했다.

觀察使(관찰사) 張晩(장만)은 이에 監察公(감찰공)의 外孫(외손)이다. 管內(관내) 巡察次(순찰차) 이곳에 와서 省墓(성묘)하고 公(공)에게 이르기를 솔이 그늘지니 繁昌(번창)한 것이 나쁜 것인데 무엇 때문에 동이로 물을 주어 더하기를 求(구)하는가 하니 公(공)이 이르되 ⑧桑梓(상재)가 비록 微弱(미약)하나 반드시 父母(부모)가 심은 것이기 때문에 공경할 것이니 하물며 이 墓木(묘목)이 울타리가 되어 산소를 護衛(호위)함이랴 자라기를 求(구)한 까닭은 나의 ④風樹(풍수)의 생각을 부친 것이라.

어찌 이미 繁盛(번성)했다고 해서 내가 敬養(경양)하는 功(공)을 태만이 하리오 하니 張公(장공)이 歎服(탄복)해 마지 않았다. 父母喪(부모상)에 가난하여 禮(예)를 갖추지 못한 것으로서 終身(종신)의 아픔을 삼았으며 항상 세 아들에게 경계하기를 내가 죽으면 삼가 厚葬(후장)하지 말라 하였으니 그 考思(고사)가 衰退(쇠퇴)하지 않음을 볼 것이다.

큰 아들은 科擧(과거)를 포기하고 父母奉養(부모봉양)한 것으로 직업을 삼아 집이 비록 가난하나 끼니때면 반드시 두 가지 맛있는 반찬을 드렸으며 다음 두 아들들은 모두 科擧(과거)에 及第(급제)하여 어버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積善(적선)한 나머지에 그 갚음을 받는다고 하였다.

公(공)의 나이 六十六歲(육십육세)에 비로소 將仕郞(장사랑)의 品階(품계)로 延恩殿(연은전) 參奉(참봉)에 任命(임명)되었으며 宣祖(선조) 癸未年(계미년 1583년) 二月二十四日(2월 24일)에 卒(졸)하니 享年(향년)이 八十六歲(86세)였다. 宣祖朝(선조조)에 ⑤卞誣推恩(변무추은)으로써 宣武郞(선무랑) 司贍寺(사섬시) 主簿(주부)에 贈職(증직)되었다.

<註>
①素履醇朴(소리순박)
②濂洛(염락):濂溪(염계)에 살았던 周敦頣(주돈신)와 洛陽(낙양)에 살았던 程顥(정호)와 程頣(정신)의 學文(학문) 즉 周濂溪先生과 伊川(윤천)과 明道先生(명도선생)의 學文(학문)임 곧 宋學(송학)
③四勿(사물):論語(논어)에서 금하는 네가지 일 즉 非禮勿視(비례물시) 非禮勿聽(비례물청) 非禮勿言(비례물언) 非禮勿動(비례물동)
④風樹(풍수):父母(부모)를 오래도록 奉養(봉양)하지 못한것에 비유함
⑤卞誣推恩(변무추은):억울함에 대하여 변명함
⑥丘木(구목):무덤가에 있는 나무 苗木(묘목)
⑦世業(세업):대대로 물려내려온 직업
⑧桑梓(상재):故鄕(고향) 또는 故鄕(고향)의 산소

 

아래와 같이 계보파악 및 참고자료 붙임

系   譜 : 2卷 701    계보보기

4대파

少尹公諱佶派

부모님을 오래도록 모시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공이 26세 때 부친이, 30세 때 모친이 각각 별세했다.부모님이 돌아가시니 전후 6년을 여묘(廬墓)를 살았으며 시인(時人)이 그 집을 사례당(思禮堂)이라 했다.

중조(中祖)

  

 파계(派系)

  

  

  

고조(高祖)

諱自新

증조(曾祖)

景武公諱軾

조(祖)

諱承賢

고(考)

直長公諱觀

  

12世諱念祖

述之
 

思禮堂

諡號

 

成宗17丙午  1486年

宣祖4辛未  1571年2月24日

字述之 號思禮堂 成宗丙午生 官宣務郞司瞻寺主簿公素履淳朴하여學識精明하니忠孝는其庭訓이요詩禮는其世業이라學究濂洛하고孝符曾閔하다四勿之則이요百行之原이라不惟爲一家則이요鄕黨是式이라少失怙恃에以未及養으로爲恨하고及喪에築盧于塋側하니時人이名其堂曰思禮堂이라考妣喪에賓不能具禮하여爲終身之痛하고常戒三子曰我死에愼無厚葬也하다其孝思不衰를可見矣라事見狀錄明宗癸亥除參奉宣祖癸未二月二十四壽八十六日卒墓는多侍面雲峰里白龍山監察公墓下亥坐配宜人慶州李氏成宗乙巳七月四日生己卯名賢芽山蟹女訓導斗平孫生員克勤曾孫修義校尉河東鄭緖外孫明宗戊午五月十六日卒墓合窆有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