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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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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憲府監察鄭公墓壇碑 [역문]羅州鄭公(나주정공) 勳(훈)의 字(자)는 子馨(자형)이오 號(호)는 棄齋(기재)니 文靖公(문정공) 可臣(가신)의 六世孫(육세손)이다. 建文(건문) 辛巳生(신사생)으로 司憲府監察(사헌부감찰)로서 天順(천순) 丁丑(정축)에 端宗(단종)이 世祖(세조)에게 遜位(손위)하고 寧越(영월)로 물러날 때를 당하여 禍(화)를 장차 예측하지 못한지라 錦城大君(금성대군) 瑜(유)와 順興府使(순흥부사) 李甫鈂(이보침)으로 더불어 端宗(단종)의 復位(복위)를 圖謀(도모)하려고 檄文(격문)을 가지고 湖南(호남)으로 가던 중 갑자기 父親喪(부친상)을 당하여 일이 누설되어 걸려들어 南海(남해)로 流配(유배)되었다. 元昊(원호) 金時習(김시습)과는 氣味(기미)가 서로 合(합)하여 元昊(원호)에게 주는 詩(시)에 『同是上王臣 忍生乙丙辰 (동시상왕신 인생을병진)』(똑같이 端宗(단종)의 신하로 참고 乙丙(을병)의 해를 사네)이 이것이다. 成化(성화) 壬辰年(임진년)에 卒(졸)하니 羅州(나주) 道林面(도림면) 熊谷村(웅곡촌) 뒷 艮坐原(간좌원)이라 配(배)는 寶城盧氏(보성노씨)로 縣監(현감) 石崑(석곤)위 딸이니 公(공)보다 먼저 卒(졸)하니 公(공)과 同原(동원)인 上下(상하)에 葬(장)하였는데 兵亂(병란)후로 碣誌(갈지)를 잃어버려 또한 고증이 없어 上下(상하)를 區分(구분)하지 못함으로 이에 壇(단)을 만들어 合祭(합제)하니 墓(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이에 분별하지 못하니 이 碑(비)를 어찌 그만두리오. 이는 실로 義(의)에서 일어난 것이다. 어찌 禮(예)에 나타나지 않음을 論(론)하리오 이제 글을 請(청)한 이는 遇植(우식)과 謹兌(근태)니 두 사람은 秀士(수사)다. <註>
上章涒灘暮春 通政大夫行全羅道巡按使 完山 李承旭 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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