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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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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皇朝請禪位表 聖德齊日月之明無幽不燭卑情絶絲毫之隱有故必陳伏念臣跡遠守東心 성덕제일월지명무유부촉비정절사호지은유고필진복념신적원수동심 [역문]上皇請禪位表(상황청선위표) 盛德(성덕)이 日月(일월)의 밝음과 같이 하여 어두운데 까지 비치지 않는 곳이 없으며 卑情(비정)은 絲毫(사호)의 숨김도 끊어 일이 있으면 반드시 아뢰었습니다. 업드려 생각컨대 臣(신)이 거리가 먼 東(동)쪽을 지키되 마음은 오로지 北(북)을 받드니 일찍 至元年(지원년) 乙巳(을사)에 世子(세자)로 入朝(입조)하였다가 돌아와 ①婆娑府(파사부)에 이르러 權臣(권신) 林衍(임연)이 마음대로 廢位(폐위)함을 듣고 朝廷(조정)으로 還赴(환부)하여 情狀(정상)을 陳告(진고)하여 드디어 官軍(관군)으로 더불어 舊都(구도)를 來復(래복)하였고 8年 辛未(8년신미)에 宿衛(숙위)에 入參(입참)하여 여러 해를 지나 ②釐降(리강)을 입음에 이르러 더욱 藩職(번직)에 부지런하였고 18年 辛巳(18년 신사)에 官軍(관군)이 日本(일본)을 出征(출정)함에 무릇 船艦米糧(선함미량)과 軍卒(군졸)의 밥짓는 물과 나무까지 一切物件(일체물건)을 모두다 힘을 합하여 副應(부응)하였으며 24年丁亥(24년 정해)에는 車駕(차가)가 乃顔(내안)을 親征(친정)한다고 듣고 몸소 五天軍(오천군)을 引率(인솔)하여 가서 助征(조정)하였는데 半途(반도)에서 大捷(대첩)의 詔書(조서)가 傳(전)해지고 인하여 還軍(환군)을 命(명)하였으며 28年 辛卯(28년 신묘)에 乃顔(내안)의 남은 종자 哈丹賊軍(합단적군)이 우리 東土(동토)에 들어옴에 臣(신)이 乃蠻瓦 薜闍于(내만와 설도우)등으로 一心同力(일심동력)하여 蕩滅(탕멸)하여 남음이 없으니 臣(신)에게 이르기를 勞效(노효)가 있으니 功臣名分(공신명분)을 더한다 하시고 30年 癸巳(30년 계사)에 公主(공주)와 入朝(입조)하여 親(친)히 聖人(성인)의 지으심을 보고 第一(제일) 먼저 慶集(경집)에서 배알하여 특별한 은총을 입어 이미 ③殊遇(수우)의 隆眷(융권)함을 얻어 終始(종시)토록 정성을 바쳤으나 이에 閨室(규실)의 相離(상리)로 因(인)하여 哀傷(애상)이 심하고 그 위에 나이 늙고 病(병)이 드니 一朝(일조)에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면 그 庶務(서무)를 剖裁(부재)하기를 누구에게 맡기리까 가만이 臣(신)이 世子(세자)인 謜(원)을 보니 幹局(간국)이 夙成(숙성)하고 皇庭(황정)에 入衛(입위)할 때 荷恩(하은)이 이미 皇支(황지)에 짝하였으며 일을 알아 宗祀(종사)를 堪勝(감승)할 수 있으니 臣(신)이 장차 位(위)를 잇게 하고 물러나 攝生(섭생)하여 憂勤(우근)을 免(면)하고 ④千鈞(천균)의 무거운 짐을 놓아 조금 쉬면서 四海(사해)의 太平(태평)함을 보려 하고 이에 간절히 호소 하노니 矜察(긍찰)하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註> ①婆娑府(파사부):九連城林衍(구련성임연)이 집권하면서 살던 집 ②釐降(리강):公主(공주)를 臣下(신하)에게 시집 보내는 것을 말함 ③殊遇(수우):특별한 대우 ④千鈞(천균):一鈞(균)은 30斥(척), 무거운 무게
아래와 같이 계보 파악 및 참고자료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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