述先裕后 :조상을 계승하고 자손을 잘되게 함.先世記錄들을 奉讀하십시요. image(gif) 만듬:문정공24세손 병선

대종회장25대-27대
창주공15세손

광훈(光勳)


만든 후손
발전연구위원
간사. 25대∼
일헌공15세손

병선(昺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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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辛未譜
第二編 屢經大同譜

 

 

 

麟山鄭氏舊譜 草案 序 (乙酉譜)

宗兄士碩氏俁君聖氏値共修合宗大譜上自初祖軍器監公下至于今叙次內外宗派旣底法語珪曰吾欲叙先世之歷仕若年壽事蹟之記聞以便閱視且圖不朽於後世而久廢鉛槧似不能善事君則能涉古今亦事文墨其爲我成之珪謂此爲先事遂不以才劣辭二兄又曰敘事欲備記聞欲慱惑恐備與慱佛爲譜牒之例也珪曰事患不傳後聞患不通古所以修譜不徒明世孫也求  先祖事蹟之傳後也且譜牒世謂之家乘乘字雖僣取其記載之義耳嘗見東萊鄭氏及帶方盧氏及他士大夫家譜牒審矣事之可記述則雖累六七紙未嘗嫌其繁吾何獨不然凡欲夸耀而虛記述非孝也嫌其累紙而不記其可記亦非孝也  先祖揚歷之終始當時  敎牌在字字皆  恩敬依而叙之事蹟之載於舊錄者亦必參以父兄之耳提皆爲之記載使後世得有羹墻之見如何哉二兄同應曰諾鳴呼珪於是感也自吾曾高上至  始祖文靖公有  敎牌有家錄 雖踈略皆有可示後而自  光祿公至  初祖軍器監公世遠而無聞  文靖公二子位俱通顯而無後  三不義軒父子亦官兩府累世鼎貴而微其嗣使其名蹟遂泯沒不傳可奈何可奈何  先祖事蹟亦多泯沒而未暇遍攷其所記述緣珪辭拙未能審悉而滅烈者多矣觀之者宜怒而勿罪云

               肅宗朝三十一年乙酉十月七日 後孫 珪 謹序

 

麟山鄭氏舊譜 草案 序
(乙酉譜 을유보)(인산정씨구보 초안 서 을유보 1705年)

[역문]宗兄(종형) 士碩(사석)俁(우)君聖(군성)値(치)께서 大同譜(대동보)를 共修(공수)하되 위로는 初祖(초조) 軍器監公(군기감공)부터 아래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內外(내외) 宗派(종파)를 차례로 펴내기로 이미 內定(내정)해 놓고 珪(규)의게 말하기를 우리가 先世(선세)의 지내온 벼슬과 年壽(년수)와 事蹟(사적)의 記聞(기문)같은 것을 펴내서 보기에 편리하게끔 또 後世(후세)에 不朽(불후)를 도모하려고 하나 文筆(문필)을 廢(폐)한지가 오래되어 능히 일을 잘하지 못할 것 같고 그대는 능히 古今(고금)을 涉獵(섭렵)하였으며 또한 文墨(문묵)을 일삼으니 우리를 爲(위)해 成就(성취)시키라 한지라 珪(규)가 말하기를 이는 爲先(위선)하는 일이라 하고 드디어 용렬한 재주로서 사양하지 아니했다. ☆士碩(사석) 俁(우):昺璿의 十代祖

二兄(두형)이 또 말씀하시기를 일을 펴냄에 記聞(기문)을 갖추고자 하고 많이 하고자 하면 혹시 갖추고 넓히는 것이 譜牒(보첩)을 만드는 凡例(범례)가 아닐까 두렵다고 하였다. 珪(규) 가 말하기를 일이란 傳(전)하지 못할까 근심하고 뒤에 들리는 소문에 通(통)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을 근심할 것이니 옛날의 修譜(수보)한 까닭은 한간 世系(세계)를 밝히는 것만이 아니오 先祖(선조)의 事蹟(사적)이 後世에 傳(전)하기를 求(구)하는 것이다.

또 譜牒(보첩)을 세상에서 家乘(가승)이라 이르니 乘字(승자)가 비록 외람되나 그 記載(기재)하는 뜻을 取(취)한 것이다. 일찍 東萊鄭氏(동래정씨)와 帶方盧氏(대방노씨)며 다른 士大夫家(사대부가)의 譜牒(보첩)을 살펴보았다. 事蹟(사적)을 가히 記述(기술)할 만한 것은 비록 六 ,七枚(육칠매)가 되더라도 일찍 그 繁多(번다)함을 꺼리지 아니했으니 우리라고 어찌 홀로 그렇지 아니 하리오 무릇 자랑하고 빛내고자 하여 헛되게 記述(기술)한것은 孝道(효도)가 아니오 종이가 많이 드는 것을 꺼리어 가히 기록할만한 한 것을 기록하지 않은 것도 또한 孝道(효도)가 아니다.

先祖(선조)의 事蹟(사적)을 始終(시종) 明白(명백)히 할 것이니 當時(당시)의 敎旨(교지)가 있다면 글자마다 모두 임금의 은혜를 입은 것이니 공경하게 敍述(서술)할 것이요, 事蹟(사적)이 舊譜(구보)에 收錄(수록) 된 것도 또한 반드시 父兄(부형)들께서 多情(다정)하게 參與(참여)하여 만들었을 것이니 모두 記載(기재)하여 後世(후세)로 하여금 우러러 사모하는 정을 보게 함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二兄(두 형)께서 같이 좋다고 승낙하시었다. 아! 珪(규)가 이에 감동하였다.

우리 曾祖(증조) 高祖(고조)로부터 위로 始祖(시조)에 이르니 文靖公(문정공)은 敎旨(교지)가 있고, 家錄(가록)이 있어 비록 踈略(소략)하나 모두 後孫(후손)에게 보일 수 있겠고 光祿公(광록공)으로 부터 始祖(시조) 軍器監(군기감)에 이르기까지는 世代(세대)가 멀어 들은 것이 없고, 文靖公(문정공) 二子(이자)는 다 같이 벼슬이 높았으되 後嗣(후사)가 없고, 三不義軒(삼불의헌) 父子(부자) 또한 官(관)이 兩府(양부)에 여러 代(대) 높은 벼슬을 하였으되 그 嗣孫(사손)이 미약하여 그 名蹟(명적)이 드디어 없어져 傳(전)하지 아니하니 가히 어찌하며 가히 어찌 하리요, 先祖(선조)의 事蹟(사적)이 또한 많이 없어졌으되 두루 고증할 겨를이 없고 그 記述(기술)한 바가 珪(규)로 연유한 바니 말이 졸렬하여 능히 모두 살리지 못하여 滅裂(멸렬)한 것이 많은지라 보는 이는 마땅히 용서하시고 罪(죄)주지 마옵소서.

                                                                                      後孫 珪 謹撰
                                                                                                                             후손 규 근찬

아래와 같이 계보(系譜) 파악 및 붙임

系  譜 : 4卷 318  계보보기   

4대파

少尹公 諱 佶派





      

중조(中祖)

滄洲公 諱 詳

 파계(派系)

從仕郞公 諱 如龜

  12世

諱 念祖

고조(高祖)

滄洲公 諱 詳(상)

증조(曾祖)

諱 如龜(여구)

조(祖)

諱 瀯(영)

고(考)

諱 寅佑(인우)

  

17世 璛(숙)

特敏  初諱 珪(규)

 

 

 

 

孝宗己亥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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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値 字君聖通德郞 孝宗庚寅生乙亥卒/逸軒公(諱諶)5世孫,司宰監公(諱如海)曾孫
17俁 字士碩號松齋 仁祖丙戌生肅宗乙未卒/逸軒公(諱諶)5世孫,將仕郞公(諱如漢)曾孫홈페이지 管理者 昺璿의 十代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