述先裕后 :조상을 계승하고 자손을 잘되게 함.先世記錄들을 奉讀하십시요. image(gif) 만듬:문정공24세손 병선

대종회장25대-27대
창주공15세손

광훈(光勳)


만든 후손
발전연구위원
간사.25대∼
일헌공15세손

병선(昺璿)


GO BACK

 

1991 辛未譜
第四編 先世遺稿
行狀및 墓碣銘

 

 

 

遺天朝毛龍書
(유천조모룡서)

[역문]朝鮮(조선)의 累臣(누신) 鄭如麟(정여린)은 頓首百拜(돈수백배)하여 皇朝(황조) 大都督(대도독) 毛公麾下(모공휘하)에 上書(상서)하나이다. 毛爺(모야)는 當今(당금)의 第一忠節(제일충절)입니다. 그 이름은 본래에 들었으며 그 德(덕)을 感服(감복)한지 오래입니다.

이제 書字(서자)를 奉見(봉견)하니 貞忠(정충)의 지극함을 더욱 느끼며 또한 惶懼(황구)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平日(평일)의 품은 바를 줄거리만 대강 陳述(진술)하겠아오니 엎드려 생각건데 垂察(수찰)하소서.

戎狄(융적)의 憂患(우환)은 옛부터 있으니 三代盛時(삼대성시)에도 또한 능히 그 朝廷을 義(의)롭게 하고 그 巢穴(소혈)을 쓸지 못했으며 萬曆初(만력초)에 이르러서도 摠兵李爺(총병이야)께서 王果(왕과)를 斬殺(참살)하고 宗廟(종묘)에 捷奏(첩주)하여 皇帝(황제)의 威嚴(위엄)이 크게 떨쳤으나 醜徒(추도)가 멀리 도망쳐 四十年來(사십년래)에 邊方(변방)에 警戒(경계)가 없어 ⑧覆巢(복소)의 아래 危卵(위란)이 尙存(상존)하여 怨恨(원한)을 기르고 兵士(병사)를 養成(양성)하며 禍心(화심)을 包藏(포장)하여 遼廣(요광)의 사이를 出入(출입)하며 中國(중국)의 虛實(허실)을 엿보아 不脩(불수)한 때를 타서 忽然(홀연)히 일어나니 遼東兵士(요동병사)로서도 女眞(여진)의 孰賊(숙적)을 當(당)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王師(왕사)가 ①左次(좌차)한 것은 勢(세)가 진실로 그러한 것입니다. 楊爺(양야)나 柳喬且(유교차)도 一代名將(일대명장)으로 거느린 바가 모두 州蜀(주촉)의 奇才(기재)와 遙燕(요연)의 健兒(건아)로서 이 大衆(대중)으로서 길을 나누어 進討(진토)함이 正(정)이 泰山(태산)을 들어 鳥卵(조란)을 누른 것과 같아 破竹(파죽)의 氣勢(기세)로 날로 쫓아 잡을 것을 期待(기대)했는데 아깝게도 그 兵士(병사)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⑩師徒(사도)가 輕進 (경진)하여 十萬生靈(십만생령)이 一朝(일조)에 魚肉(어육)이 되니 至今(지금)에 追思(추사)하면 心膽(심담)이 찢어질것 같은데 하물며 우리 小邦(소방)이 上國(상국)에 이르러서는 어린 자식이 慈母(자모)를 우러름과 같은지라 편안하고 위태롭고 살찌고 괴로움이 慈母(자모)에게 달렸으니 지난 壬辰(임진)에 있어 ②涅齒肆毒(열치사독)으로 三京(삼경)을 屠陷(도함)하니 三韓人物(삼한인물)이 거의 오랑캐의 풍속을 免(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우리 萬曆皇帝(만력황제)께서 兵士(병사)를 出動(출동)시키고 軍糧(군량)을 싫어하고 群凶(군흉)을 물리쳐 ③殷師舊域(은사구역)이 今日(금일)에 得保(득보)하니 秋毫(추호)라도 帝力(제력)이 아닌 것이 없으니 갚고자 한 德(덕)이 昊天罔極(호천망극)인데 西賊(서적)이 일어나 우리나라 君臣(군신)이 하늘을 이고 살면서 부끄러운 뜻이 간절하여 고생을 참으면서 창을 들고 칼을 울리면서 기다렸습니다.

어찌 감히 義(의)를 저버리겠습니까? 富車(부차)의 싸음으로 연유하여 數萬精銳(수만정예)가 ⑪沙磧(사적)에 盡沒(진몰)하여 이로부터 후로 ④石壕(석호)의 軍士(군사) 調達(조달)하기가 어려워 南畝(남무)의 백성을 括出(괄출)하여 荷戈(화과)의 軍卒(군졸)로 만들어 비록 부지런히 操練(조련)을 시키나 緩急(완급)을 믿기 어려운데 賊(적)은 全遼(전료)의 勢(세)를 의지하고 險阨(험액)에 布置(포치)하여 그 凶秘(흉비)를 치니 그 형편을 말한다면 저쪽이 强(강)하고 우리가 弱(약)하여 그 勢(세)를 말한다면 저쪽은 主人(주인)이오. 우리는 손님인데 馬步(마보)의 勢(세)가 또한 심히 懸殊(현수)하니 이 小邦(소방)이 發兵(발병)하여 盡勦(진초)하더라도 輕擧(경거)하기 쉽지 못할 것입니다.

어찌 감히 德(덕)을 배반하고 坐視(좌시)하여 觀望(관망)히겠습니까? 저들 오랑캐가 이미 中國(중국)의 城池(성지)를 얻었고 또한 中國(중국)의 兵民(병민)을 두었은즉 그 勢力(세력)이 富强(부강)하여 눈에 中原(중원)이 없고 遼東(요동)에 雄據(웅거)하니 감히 兵士(병사)를 關上(관상)에 더하지 아니한 것은 ⑥密兵(밀병)으로 그 뒤를 議論(의논)할까 두려워서입니다.

嗟乎(차호)라. 옛날 義(의)를 짚고 賊(적)을 물리쳐 功(공)을 社稷(사직)에 둔자 많치 않은 것이 아니로되 韓文公(한문공)이 巡遠(순원)으로 江湖(강호)를 蔽遮(폐차)함으로써 天下(천하)를 막았다고 하니 무엇 때문인가 대개 江湖(강호)를 蔽遮(폐차)함으로써 賊勢(적세)를 막는 고로 天下(천하)가 亡(망)하지 않음으로써 功(공)이 巡遠(순원)에게 돌아갔으니 진실로 確論(확론)입니다.

우리 毛爺(모야)께서는 功(공)이 巡遠(순원)과 一轍(일철)하되 神謀秘略(신모비략)인 즉 이에 더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 때문인가 遼廣(요광)의 失守(실수)를 當(당)하여 城(성)을 버리고 偸生(투생)한가. 가히 셀 수 없을 것이로되 한낱 孤忠(고충)을 힘입어 危鋒(위봉)에서 솔선하고 才智(재지)가 훌륭하게 뛰어나 東(동)으로 鴨綠江(압록강)을 건너니 그 蒼黃(창황)하고 顚沛(전패)한 정상을 어찌 찾아 말 하리오, 흩어지고 도망한 군사를 徵召(징소)하여 비록 兵士(병사)를 용서하고 진정시켜 賊(적)을 보이고 포로를 사로잡더라도 冬天(동천)의 氷結(빙결)할 때 인즉 군사를 海島(해도)에 移動(이동)하니 먼저 가히 이기지 못할 것이오.

隱然(은연)히 虛(허)를 찔러 뒤를 교란하는 形便(형편)이니 오랑캐가 東(동)을 돌아보고 감히 西(서)쪽으로 가지 못한 것은 누구의 功(공)인가 어찌 督府(독부)의 一動一靜(일동일정)이 족히 써 賊(적)을 두렵게 한 것이 아니며 또한 어찌 小邦(소방)의 贍仰(섬앙)이 아니리오. 天子(천자)가 들으시고 가상히 여겨 大都督(대도독)으로 褒加(포가)하니 藩邦(번방)의 草木(초목)도 또한 威名(위명)을 알거늘 어찌 진실로 景仰(경앙)의 지극 함이 아니겠습니까 반드시 威嚴(위엄)을 기르고 機會(기회)를 기다려 大兵(대병)을 齊集(제집)하여 前後(전후)에서 挾擊(협격)한즉 腥塵(성진)을 掃蕩(소탕)하기를 日月(일월)로 可期(가기)할 것이니 어찌 다만 僚佐(요좌)의 廓淸(곽청)이겠습니까?

또한 小邦(소방)의 安堵(안도)니 督府(독부)의 佐集大功(좌집대공)을 나는 날로 바랄 것이오. 不然(불연) 즉 皇帝(황제)께서 장차 그 머뭇거린 罪(죄)를 다스릴 것이니 小邦(소방)도 그 景仰(경앙)하는 바램을 自失(자실)할 것입니다.

또 땅을 침노하고 奪畧(탈략)하는 것은 이 督府(독부)의 正大(정대)한 일이 아니며 天子(천자)의 畿內(기내)가 아닌 것이 없으니 내 살을 베어 내배를 채우기를 어찌 참아 하겠습니까? 僣越(참월)의 罪(죄) 스스로 도망키 어려움을 아나 자세하고 간곡하게 늘어놓은 것은 실로 至誠(지성)에서 나온 것이니 진실로 송구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註>
①左次(좌차):兵法의 單語로 山의 左側에서 지키는 것
②열치사독(열치사독):검은이와 방자한독 즉 외놈을 가리킴

③殷師舊域(은사구역):은나라 스승의 옛지역으로 箕子가 朝鮮을 建國하였기 때문에 하는 말

④閭左(여좌):貧民, 奏代 里內의 왼쪽에 살며 免稅(면세)를 받은 사람 富豪는 오른쪽에 살았다 함.

⑤石壕(석호):鎭名이니 河南省 陜縣의 東南에 있음. 唐나라 杜甫가 이곳을 지날 때 官吏가 徵兵하는데 壯丁이 不足하니까 老弱을 急促한것을 보고 石壕吏詩를 지었음.

⑥密兵(밀병):감추어둔 병사

⑦梗槩(경개):대강의 줄거리

⑧覆巢(복소):둥우리를 뒤집어 엎음.

⑨措日可俟(책일가사):날로 쫓아 잡을것을 기대함.

⑩師徒(사도)군대, 士卒

⑪沙磧(사적):沙原 사막

⑫沮遏(저알):막아서 못하게 함.

 

아래와 같이 계보를 파악함

系  譜 : 2卷 707      계보보기

4대파

少尹公諱佶派

 

중조(中祖)

滄洲公諱詳  

 파계(派系)

諱派

  21世

고조(高祖)

증조(曾祖)

諱觀

조(祖)

諱念祖

고(考)

諱詳

  

13世如麟(여린)

得而

 

終慕齋

 

 

中宗癸未

正月15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