述先裕后 :조상을 계승하고 자손을 잘되게 함.先世記錄들을 奉讀하십시요

 

1991 辛未譜
第二編 屢經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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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譜序(甲戌譜 1934年)(구보서 갑술보 1934년)

[역문]氏族(씨족)에게 族譜(족보)가 있는 것이 나라에 史記(사기)가 있는것과 같다. 또한 堯舜時代(요순시대)의 ①惇叙(돈서)와 春秋時代(춘추시대)의 謹嚴(근엄)함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니 어찌 공경하고 또한 重要()하지 아니하리오.

그윽히 생각건대 우리 宗親(종친)이 雪齋(설재) 文靖公(문정공)으로 부터 高官大爵(고관대작)이 赫赫(혁혁)하여 爵(작시)와 勳號(훈호)며 忠孝(충효)와 文學(문학)이 代代(대대)로 끊어지지 않고 史記에 글이 끊어지지 않으니 진실로 海東名族(해동명족)이다.

지난날 中葉(중엽)에 있어서 戶判公(호판공) 은 一世(일세)의 名卿(명경)이오. 永慕亭(영모정)과 景武公(경무공)의 豐功(풍공)과 偉蹟(위적)은 後世(후세)에 照耀(조요)하였고 思禮堂公(사례당공)의 行義(행의)는 特箸()하여 後孫(후손)에게 가르침을 남겼고 逸軒(일헌)과 滄洲(창주) 兩公(양공)의 文學(문학)과 忠節(충절)이며 慶源公(경원공)의 倡義立功(창의입공)과 棄齋公(기재공)의 絶義(절의)가 그 뒤를 이어 一門五忠(일문오충)이 先後( 후)로 서로 이었으니 아름답고 盛(성)하도다.

다만 世代(세대)가 더욱 내려오면서 친한 붙이가 점점 멀어지고 派(파)마다의 後孫(후손)들이 各郡(각군)에 흩어져 살아 五服(오복)이 다하여 情(정)이 다함에 길가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으니 그 祖上(조상)을 높이고 겨레를 거두어 드리는 길은 昭穆(소목)을 분별하고 派系(파계)를 밝히는 것이니 大同譜(대동보)를 修譜(수보)하는 것만 같음이 없다.

우리 일가 譜牒(보첩)이 비로소 英祖(영조) 辛亥年(신해년)(7年 西紀1732年)으로 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다섯 차례 修譜(수보)하였으되 혹은 完帙(완질)이 되지 못했고 혹은 波譜(파보)에 이르니 慨然한 追憾(추감)이 없지 안했다.

다행이 甲戌年(갑술년)봄에 宗議(종의)가 一致(일치)되어 刊行場所(간행장소)를 景武公(경무공) 墓下 祭閣(묘하제각)에 設置(설치)하고 널리 單牒(단첩)을 거두어 다음해 乙亥年(을해년) 봄에 印刷(인쇄)를 끝마치니 비록 몇 군데 闕單(궐단)한데가 있으나 또한 어찌 後日(후일) 合譜(합보)할 때가 없으리오.

規模(규모)와 凡例(범례)를 모두 舊章(구장)을 따라 겹침을 용납지 않했으며 다만 一說(일설)을 두니 가히 써 서로 도운 것은 이번의 이 大同譜(대동보)는 그 惇叙(돈서)한 倫理(윤리)와 謹嚴(근엄)한 書法(서법)에 가까웠으며 그 德(덕)을 닦기를 생각하여 더욱더 일에 힘썼으니 마땅히 先祖(선조)의 仁(인)을 쌓고 義(의)를 行(행)했음을 본받아 永世(영세)토록 착한 일을 하여 나온 바를 더럽힘이 없으니 다행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보통 사람의 子孫(자손)되기는 쉬워도 어진 선조를 따라가지 못하고 조그마한 나쁜 짓이라도 마침 족히 선조를 더럽힌다는 것이다.

돌아 보건데 이 좁은 소견으로 외람이도 敎正(교정)의 대열에 있어 한마디 말이 없을 수 없는 고로 간략하게 느낀 바를 表現(표현)하여 책 끝에 쓰니 後孫(후손)들은 힘쓰고 힘쓰기를 바라노라.

<註>

①惇叙(돈서):親愛하고 秩序를 세워서 平和롭게 함

                                                                             後孫 來浩謹序

系  譜 : 4卷 344 /  http://www.najujeong.com/aro243/njhome/nj02/ch134/naju2318.htm    click

4대파

少尹公諱佶派

高宗壬辰慶基殿參奉陞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
墓永安山卯坐

중조(中祖)

滄洲公諱詳

 파계(派系)

從仕郞公諱如龜

 世

고조(高祖)

諱彦甲

증조(曾祖)

조(祖)

諱達喆

고(考)

諱國容

  

22世 來浩(래호)

鶴弼(학필)

 

錦圃(금포)

 

 

哲宗8年丁巳 1857年

倭政27年丙子 1936年02月26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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